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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신박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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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성매매 뿌리 뽑기>

우리가 희망하고 상상하고 행동한 23년

대구 반성매매운동의 계보를 이어가기 위해 오래 미루어두었던 일이었다. 여성운동 활동가들은 현장이 늘 우선 순위이고, 그 현장은 멈추는 법이 없기에 우리가 해왔던 기록 따위, ‘언젠가 하겠지’라는 막연한 기대와 핑계에 맡겨 버린다. 그렇게 시 간이 흐르면 기억은 희미해지고, 서류와 사진 같은 자료도 사라진 다. 대구에서 처음 반성매매운동을 시작했던 그때, 그게 뭔지도 모 르고 불나방처럼 뛰어들었던 그때로부터 23년이 지났다. 이제 더는 미룰 수 없게 된 건, 초창기 활동가들이 상근 활동을 마무리하고 떠 나며, 정말 기억조차 남지 않을 것 같은 절박함 때문이었다. 많은 것들이 변화해왔다. 2002년에 우리는 두툼한 부피의 모니터와 플로피디스크를 사용하는 컴퓨터가 책상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인 터넷 메일이 있어도 회원들에게 소식지와 행사홍보지를 소포와 편 지, 엽서 형태의 우편으로 보내던 때였다. 사진은 인화해서 보관하 던 그때, 유선 전화와 팩스가 중요한 통신 수단이던 그때의 기록물 은 이제 고고학자의 자세로 발견해야 하는 것들이 되었다. 다행히 언젠가 쓰일 우리의 역사를 위해 활동가들은 총회자료집과 그 외 발간물, 사진 등 자료들을 새로운 저장형태에 맞게 이전하고, 보관하려 노력해왔다. 이 책을 준비하면서 그 노력을 헛되게 하지 않을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던지. 많은 것을 얻었고 이루어냈다. 2002년 성매매방지법 제정 운동과 함께 성매매여성의 상담 지원 활동이라는 생소한 영역에 들어서면 서 어리바리했던, 그리고 두렵고 무서웠던 그때로부터 지금 2025년, 정말 우리는 많은 것을 이루어냈다. 한계는 있지만 2년여 만에 성매매방지법이 제정되었고, 이후 우여곡절은 많았지만, 상담소, 쉼터,그룹홈, 자활지원센터라는 통합지원시스템까지 마련이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말로 많은 당사자 여성들을 만나왔다. 당사자 여성들이 우리를 불러주고, 필요로 했기에 우리는 존재할 수 있었다. 또 당사자 활동가들이 자조적 모임 ‘예그리나’에서 출발해 전국적 당사자 운동 조직을 만들고 활동하며, 우리의 반성매매 운동의 동지이자 동료로 함께하게 되었다. 아마도 우리가 이 기록을 미루고 또 미룰 수밖에 없었던 건, 그녀들과 함께 한 모든 순간을 아쉽거나 부끄럽지 않게 전부를 다 담고 싶은 욕심 때문에 쉽게 시도할 엄두를 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상담소가 2005년부터 2024년까지 실인원 2472명을 만났고, 2006년 부터 2024년까지 52,176건의 상담을 했다. 쉼터는 2004년부터 2024 년까지 입소자와 이용자 400명이었다. 자활지원센터는 2009년부터 2024년까지 실인원 434명이 참여했다. 언젠가 국회에서 모 의원이 상담 인원보다 실인원이 적은 게 아니냐며 비난하고, 예산과 인력을 감축하라는 요구를 했다. 현장을 모르면서 자신이 아는 세계로 우리를 재단하는 이들이 정말 많았다. 우리가 경험한 성매매 피해지원시설은 단지 전화를 받고 정보를 전달하거나, 통화나 메신저를 통한 일회적 만남에서 끝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대부분 실제로 만나, 안전을 확보하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상담과 지원 활동이 오랜 시간 지속된다. 야간과 주말, 명절까지도 반가운 마음에, 또는 염려와 걱정으로 뛰어나가야 했던 현장의 치열함이 있었다. 그 구구절절한 내용이 이 책에 정말 일부의 일부가 담겼다. 우리가 만난 여성마다 한 권의 책으로도 부족할 이야기가 쌓이고 역사가 만들어졌다. 현장에서 활동하며 각각의 사건과 지원을 할 때마다 우리는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 고발하고 싶어서, 도움을 받고 싶어서, 자랑하고 싶어서, 억울해서, 막막해서, 무수히 많은 감정과 욕구들이 있었지만, 그 무엇보다 ‘알아달라는 마음’이 크지 않았을까. 성매매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여성들이 어떤일을 겪고 당하는지, 또 우리가 여성들과 함께 무엇을 이루어냈는지를.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그동안의 우리 염원과 한을 조금이나마 풀어내는 작업이다. 담고 싶은 이야기는 많은데 능력은 부족하다. 언제나 절실히 깨닫게 되는 현실 자각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할 이야기를 마무리 지어야,다음의 이야기가 시작될 것이기에 여전히 남는 아쉬움과 부족함은 미래의 활동가들이 더 훌륭하게 잘 해낼 것이라 믿으며 이 책의 작업이 이루어졌다. 많은 부분 기록이 부족한 초창기 활동이 아무래도 많이 담겼고, 각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중심으로 정리하다 보니 무언가 구멍 숭숭 뚫린 그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기획단계에서부터 시간에 쫓겨 함께 논의하는 시간이 적었고, 필자 개개인에게 많은 부분을 의지해서 쓰일 수밖에 없었다. 오직 ‘쓰여져야 한다.’라는 화두만 붙잡고 작업이 마무리되었다. 그럼에도 이렇게라도 정리되고 책이 나올 수 있어서 감사하다. 퇴직한 선배 활동가들의 부족함을 현직의 활동가들이 채워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생각나는 이름들이 너무 많았다. 대구여성회에서 이 활동을 최초로 시작했을 때 함께했던 대구여성회 활동가들과 성과인권위원들, 성 교육강사 모임원들과 회원들이 정말 큰 힘이 되었었다. 사진 속에 남아있는 그들의 얼굴을 마주하며, 모두의 안부를 묻게 된다. 또 후 원과 지지 활동으로 힘을 보태주었던 분들이 많다. 인터뷰하지 못한분들, 법률과 의료, 그 외 전문적 지식과 능력을 나누어주셨던 분들도, 물적 지원과 자원봉사로 응원해주셨던 분들도,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을 비롯해 지역사회에서 함께 활동하며 중요한 이슈마다 힘을 모아 대응해주셨던 분들, 그리고 적게는 1년에서 10여년이 훌쩍넘게 활동하다 떠나간, 또는 지금도 함께하는 활동가, 회원 모두를포함해, 그 감사한 이름의 목록은 끝이 없을 것 같다. 그 감사한 이름들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 넘치는 아쉬움은 어떻게 해도 해소되지않을 것이다. 그저 그 감사한 이름들에 부끄럽지 않도록 대구여성인권센터의 활동을 이어나갈 것을 다짐해본다. 표지의 이미지는 근우회의 창립총회 모습이다. 근우회는 1927년 일 제강점기 만들어진 여성단체이다. ‘근우(槿友)’는 조선 여성의 연대 를 의미한다. 이들의 강령은 여성노동권 확보와 여성 차별적 사회 제도와 규범의 타파 등 지금 보아도 진취적이고 시대를 앞서는 것이었다. 그리고 인신매매와 공창제 폐지가 주요 강령이었다. 반성매매운동의 시초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근우회 창립 당시 중앙집행위원으로 함께 한 ‘정칠성’이 있다. 그녀는 대구 출신으로 어린 나이에 기생이 되었고, 3·1 만세운동 이후 본격적으로 독립운동과 여성해방운동에 나섰다. 당시 기생들은 ‘예기’로 관리되며 일제에 의해 ‘성매매여성’으로 취급되었다. 많은 기생이 자신들의 예속적이고 착취적 상황을 식민지 조국의 현실과 동기화하여 이를 자각하였고, 가부장적의식과 문화 안에서 속박받던 여성들의 삶을 비판적으로 볼 수 있었다. 정칠성은 그 대표적 인물이다. 성착취를 경험하고, 당사자로서식민조국과 여성 해방을 위해 열정적으로 활동하였다. 대구의 반성매매운동의 시초는 23년 전이 아니라 바로 일제강점기 정칠성과 그녀의 동료들로부터이다. 그 선배들이 있어, 우리는 역사에 부끄럽지않은 활동의 계보를 이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의 이 기록집이 그 계보를 잇는 작지만 귀한 디딤돌이 되기를 소원한다. 2025년 11월 27일 신박진영, 최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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