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여백이 좋았습니다
간결해서 좋았고
뒷모습이 넓어 매력이 있었습니다
삶이 가는 길은 강물 같아서
산천을 얼싸안고 굽이 돌아
여울목마다 부대끼며 부서졌지만
웅덩이를 만나 함께 출렁이기도 했습니다
때론 바람 불고 먹구름이 성할 땐
흙탕물에 젖어 맑음을 잃었지만
영광은 시련 위에 피는 꽃
끝난 것 같아도 다시 시작입니다
메마른 갈증 적시고 다시 강으로 갑니다
늦은 시작이지만 행복한 시간
갓 피어난 연둣빛 이파리를 위하여
남은 여백 채우러 걸음을 재촉합니다
하얀 여백이 있어 생은 아름답습니다
열정으로 지도해 주신 이경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창작의 기쁨을 같이 나누던 선후배님과
늘 미소로 격려해 준 가족에게 감사드립니다
2020년 여름 용인 수지에서
윤평현
사는 날들이 시다
살아온 만큼이 시의 영역이다
주변 사람들이 나를 만들었듯
시가 외로운 시간을 보듬어 주었다
먹구름 흘러가듯 흘러간 젊음
세상은 나에게 많은 걸 베풀어 주었지만
더 많은 욕망을 향해 떠돌았다
비바람 부는 산길을 걸어 본 사람은 안다
높고 화려한 곳이 아니라
옹기종기 모여 사는 세상살이에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을
낡고 허름한 곳에 기쁨이 있고 눈물이 있고 시가 있다는 것을
작고 사소한 일에도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문득
마음을 흔드는 시를 만나면 울컥하여
착해져야 한다고
더 넓어져야 한다고 다짐하지만
난 아직 그런 감동을 주지 못했다
살아갈수록 시가 그립다
그리움 위에 쓴다
어린 시에게도 박하사탕 안겨주면서
남은 길을 가고 싶다
2023년 10월 용인 수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