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첫 번째 순례 이야기인 강화편, 『경계에 선 사람들』이 출판된 지 4년이 지났습니다. 당시에는 놀랍게도 출판과 동시에 강화의 기독교 역사 기념관이 함께 준공되었습니다. 책의 출판일 또한 기념관의 준공일과 맞추어 2022년 2월 28일로 정하였으나 기념관이 한 달 정도 늦게 준공되어, 책은 기념관보다 조금 먼저 출판되었습니다.
이제 이러한 놀라운 일이 다시 한번 더 주어졌습니다. 바로 군산편을 담고 있는 네 번째 순례 이야기인 『7인의 선발대 1』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군산선교역사관이 준공 예정인 것을 알게 되었고, 역사관의 공사와 함께 집필 또한 나란히 이루어졌습니다. 집필이 늦쳐질 때에 준공 또한 미루어져서 마치 보조를 맞추는 것과 같은 은혜로운 시간들이었습니다. 이제 역사관도 이미 준공되었고, 글도 마무리되어 출판을 앞두니 모든 것이 감사할 뿐입니다.
지난 4년간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강화 순례를 중심으로 현장 가이드를 지속하였고, 강화편, 제주편, 조선편이 연달아 출판되면서 국내 순례에 대한 메시지들은 더욱 정리 되고 국내 순례를 인도함에 있어서 인천 순례, 강화 순례, 제주 순례 등이 프로그램으로 갖추어졌습니다. 국내 성지 순례는 어느 한 지역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닌 각 지역의 이야기들이 서로 얽혀있고 이것을 함께 풀어가고 추적해 갈 때에 그 의미를 알 수 있는데 순례집이 한 권 한 권 나올 때마다 이러한 실타래가 풀리고 전체 이야기가 더욱 풍성해지고 있습니다.
또한 성지 순례 전문 여행사가 되는 ‘에벤에셀’과 함께 국내 성지 순례 협력이 이루어지면서 앞으로 좀 더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순례가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출판에는 ‘장원 인쇄’가 큰 도움을 주고 있고, 순례 사역에 있어서는 ‘에벤에셀’이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네 번째 순례집 군산편, 『7인의 선발대 1』의 제목은 특별히 독창적인 표현은 아닌, 모두가 인정하고 알고 있는 주제임에도 이를 직접적으로 제목으로 다룬 책이 없었기에 감사함으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7인의 선발대’라는 용어는 미남장로교의 첫 번째 개척자들에게 주어진 영예로운 호칭입니다. 미남장로교회의 일곱 선교사로부터 우리나라 호남 선교가 시작되었고 그 출발점이 바로 군산입니다. 거의 같은 시기에 전주에서도 함께 사역이 시작되었고, 일곱 선교사들이 두 지역에서 동시에 사역했던 만큼, 『7인의 선발대 2』 는 전주편으로 이어질 것을 기약합니다.
언더우드로 대표되는 미국 북장로교의 선교에 언더우드의 역할 가운데 미국 남장로교가 함께 동참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군산편의 1장은 언더우드의 내쉬빌 강연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언더우드의 강연 중에 특별히 그가 남긴 일성은 깊이 있게 남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하늘을 열고 보여주실 것이라 기대하십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 눈앞에 죽어가는 세상을 보여주십니다.”
이와 같은 언더우드의 초청에 응답하여 20대의 젊은 시절을 바친 청년들이 이 땅을 밟았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많은 이들에게 아직은 익숙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이름들입니다.
윌리엄 전킨과 그의 아내 메리 레이번 전킨, 레이놀즈와 그의 아내 팻시 볼링, 테이트와 그의 여동생 매티 테이트, 그리고 마지막으로 데이비스까지—이 일곱 명의 선교사들이 바로 호남 선교의 ‘7인의 선발대’입니다.
군산 선교는 수덕산 시대에서 궁멀 스테이션 시대로 옮겨가며, 다시 네 개의 공동체로 확장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복음의 발걸음은 만경강을 남쪽으로 건너 김제로, 만경강을 따라 동쪽으로 익산으로, 금강을 북쪽으로 건너 서천과 부여로, 마지막으로는 가장 늦은 시기에 바다를 건너 고군산군도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비록 고군산군도는 가장 늦은 시기에 복음을 받았으나,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말씀처럼 앞으로 새만금 사업과 서쪽 개발을 통해 군산과 그 인근 지역에 큰 영향력을 끼칠 것으로 기대합니다.
집필을 마무리하던 즈음, 추명순 전도사님에 대한 박사학위 논문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반가운 마음으로 그동안 정리해 온 내용을 다시 점검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과정이 선물처럼 느껴졌습니다. 또한 김용은 목사님께서 개척하신 중동교회에서의 귀한 사역을 마치시고 은퇴와 더불어 군산선교 역사관을 위해 헌신하시고 계신 서종표 목사님께 추천사를 받을 수 있었던 일은 큰 감사와 감격이 됩니다. 아무쪼록 이 작은 책자가 쓰임을 받고 순례자들에게 귀한 동행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2026년 1월 집무실에서 - 서문
구원에 관한 교리로서 갈라디아서와 로마서는 각기 다른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로마서는 논증적인 접근임에 반해 갈라디아서는 변증적으로 접근합니다. 로마서는 로마에 있는 교회에게 구원에 대한 바른 지식을 전하고자 하였으나 갈라디아서는 이미 바울에 의해서 복음이 전하여진 곳에 율법주의로 말미암아 복음이 왜곡되고 변질되는 위기 가운데 기록된 서신이기 때문입니다. 다소 격앙된 표현들은 이러한 위기 상황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구조를 이해할 때에 보다 선명해집니다. 갈라디아서는 서론과 결론을 제외하면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첫 번째 부분은 1장11절-2장이며, ‘바울의 행적’을 바탕으로 기록되었으며 바울이 전한 복음의 신적 기원을 통하여 이신칭의의 교리를 전합니다. 전혀 복음에 외인이었던 사도 바울의 부르심과 두 번의 예루살렘 방문, 게바 책망 사건입니다. 특별히 두 번의 예루살렘 방문 중에 그가 가졌던 예루살렘의 사도들과의 관계는 복음의 신적인 기원을 잘 증거합니다.
두 번째 부분은 3-4장이며, 첫 번째 부분이 주로 바울의 행적을 바탕으로 하였다면 두 번째 부분에서는 ‘성경적인 예’로 이신칭의의 교리를 잘 정리합니다. 비록 갈라디아서는 변증적인 성격이 있고 격앙된 표현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 구체적인 내용은 매우 논리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갈라디아 사람들에 대한 책망으로부터 시작하여 논리적으로 아브라함을 통한 이신득의, 율법과 약속을 통한 이신득의, 유대인에게 있어 믿음 이후의 변화, 갈라디아 사람들에 대한 염려와 칭찬과 권면, 마지막으로 하갈과 사라를 통한 교훈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부분은 5장1-6장10절로, 이번에는 ‘이신칭의 적용’으로 믿음 이후의 삶에 관하여 전합니다. 흔히 갈라디아서는 자유의 대헌장이라 합니다. 율법의 종노릇하였던 유대인이나 하나님 없이 하나님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하였던 이방인에게나 복음은 자유를 선포합니다. 그러나 그 자유는 사랑으로 종노릇 할 것을 요구합니다. 믿음의 삶은 자유자의 삶, 성령으로 말미암는 삶, 사랑과 용서의 삶, 나눔과 심음의 삶으로 이신칭의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성도의 새로운 삶입니다.
오늘날 갈라디아서는 복음에 희미해진 교회에 책망의 목소리를 전합니다. 사도가 자신의 생명과 같이 여겼던 구원에 관한 복음을 오늘날 교회가 무관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갈라디아서는 다른 복음을 전하는 복음에 대한 왜곡에 관하여 강력하게 경고합니다.
갈라디아서는 십자가의 메시지로 마무리합니다. 십자가는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를 주었으나 또한 기억하여야 할 것은 참된 십자가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세상에 대하여 못 박히는 것입니다(갈 6:14).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4) - 서문
꿈꾸는 가좌, 이루시는 하나님
과거를 잃어버릴 때에 과거는 죽게 되나 과거를 기억하고 소통하고 대화할 때에 과거는 현재의 이야기가 됩니다. 과거는 현재를 돌아보게 하는 거울의 역할을 하기도 하고, 미래를 밝혀주는 등불의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 가운데 일어난 일들을 남기고, 기록하는 일은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의 아름다운 의무입니다.
지난 50년의 가좌제일교회의 역사 가운데 크고 작은 일들이 많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의미 있는 일은 바로 성전 건축입니다. 이 일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심과 인도하심 없이는 이룰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일은 온 교우들이 협력하고 일심 하지 않고는 이룰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일은 지난 50년의 가좌제일교회의 복음의 결실이 되며, 앞으로의 50년을 향한 발판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 가운데 귀한 선물과 같은 성전 건축의 이야기를 함께 나눔으로 이 일이 주는 역사적인 사명에 관하여 밝히고자 합니다.
성전 건축 이야기를 정리함은 여러 가지 이유와 목적이 있습니다.
첫째, 먼저 이 모든 과정이 사람의 계획과 힘으로는 이룰 수 없는 과업이었음을 밝힘으로 우리들 가운데 성전 건축을 허락하시고 이루신 하나님께 감사하기 위함입니다. 때때로 계획된 일들이 어긋나기도 하고, 멈추기도 하였으며, 모든 상황이 좌절스럽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들 속에서 고백할 수밖에 없는 것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인도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더 겸손해야 하며, 더 낮아져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등에 모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였던 어린 나귀처럼 오직 주님만을 높일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을 높이기 위하여 기꺼이 자신을 낮추는 아름다운 선택을 하였던 세례 요한처럼 진정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마라의 쓴 물에 원망하였던 자들이 엘림을 경험하였던 것처럼, 우리의 길이 막힐 때에 오히려 더 감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들을 예비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신 8:17-18)
둘째, 성전 건축 이야기 속에 담긴 여러 교우들의 헌신과 기도를 남김으로 이들의 신앙과 믿음을 계승하기 위함입니다. 출애굽 세대의 믿음과 신앙은 광야 세대를 거쳐 가나안 세대까지 전수되어야 했습니다. 믿음의 타락과 탈선은 바로 앞선 세대의 믿음과 신앙을 계승하지 못한 데서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성전건축이라는 대업을 이루는 과정 속에서 참여한 여러 교우들의 헌신과 기도의 이야기를 남김은 다음 세대에게 믿음을 전수하며, 신앙의 계승에 매우 중요한 일이라 할 것입니다.
홍해를 건넜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쫓기던 마음에 분주하였고, 갈 길을 재촉하였기에 홍해를 건넌 후에는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요단강을 건넌 후에는 그들의 마음이 여유가 있었으며, 이 일을 기록하고 남겼습니다. 여호수아는 요단 가운데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선 곳에 돌 열둘을 세우고, 또한 요단에서 가져온 열두 돌을 길갈에 세웠습니다. 이는 사람의 생각과 계획이 아닌 하나님의 계획이시며 명령이었습니다.
셋째, 성전 건축 이야기가 보여주는 것은 가좌제일교회의 대업은 어떠한 성취와 업적이 아닌 시작이며 사명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러한 귀한 일들을 허락하심은 믿음의 자긍심을 주나 자랑으로 멈추어서는 안될 것이며, 어려운 시기에 앞서 이 일을 이루심으로 우리들에게 주신 귀한 사명이 있음을 인지하여야 합니다.
우리 시대는 거대한 파도 앞에 놓여 있습니다. 코로나라는 거대한 파도는 기존의 가치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절대로 과거로 회귀할 수 없는 역사적인 사명 가운데 다음 세대를 준비해야 합니다.
넷째, 섬겼던 사람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나눔을 통해서 공동체 가운데 위로와 하나됨을 위한 것입니다. 무엇을 더 자랑하고 나타내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서로의 수고를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와 힘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나눔과 격려는 우리 가좌 공동체로 하여금 더욱 하나됨으로 굳게 하여 줄 것입니다.
다섯째, 가좌제일교회의 성전 건축 이야기를 남기는 이유는 이 일을 이루는 전 과정을 소상하게 기록함으로 또 다른 역사를 준비하며, 이루는 여러 교회들에게도 귀감이 되며, 도전과 용기를 줄 것입니다.
1부에서는 건축 위원장으로 섬겼던 이현우 장로의 증언을 바탕으로 성전 건축의 과정을 소상히 밝힐 것이며, 2부에서는 건축 위원장을 도와 함께 섬겼던 여러 건축위원들의 간증문들을 통해 성전 건축의 여러 가지 의미를 다양하게 조명할 것이며, 3부에서는 가좌제일교회를 섬기는 김명서 목사를 통해서 당면한 현 상황과 새로운 비전을 보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 4부에서는 가좌제일교회 새 성전 건축과 관련된 여러 사진자료들을 정리하였습니다.
가좌제일교회는 반백년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는 중년의 시기가 될 것이며 교회적으로 볼 때에는 새로운 전환점과 도약의 중요한 시점입니다. 아무쪼록 이 작은 책자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며, 교회의 새로운 전기의 마련이 되며,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에게 놀라운 도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집필사
신명기의 히브리어 성경의 제목은 ‘엘레 하드바림’입니다. 히브리어 성경 첫 두 글자로 ‘이것이 말씀들이다’라는 뜻입니다. 히브리어 전통을 따른 첫 두 글자임에도 불구하고 신명기 주제를 가장 잘 표현하였습니다. 한편, 책 내용의 중심 사상이 담긴 단어를 책의 제목으로 삼는 칠십인역에서는 신명기 17장18절의 ‘등사본’을 ‘두 번째 율법’으로 번역하였습니다. 곧 토라의 복사를 칠십인역에서는 ‘두 번째 율법’이라는 뜻으로 ‘도이테로노미온’이라 하였고 이것이 불가타와 영어 성경에 이르고 오늘날 한글 성경은 칠십인역 성경을 중국식으로 의역한 것을 따라 ‘명령을 거듭 말하는 책’이라는 ‘신명기(申命記)’라 하였습니다.
출애굽의 세 사람의 주역이 되는 모세의 누이 미리암은 출애굽 40년 첫째 달에 가데스에서 죽고(민 20:1), 형 아론은 같은 해인 출애굽 40년 다섯째 달 초하루에 호르 산에서 죽었습니다(민 20:22-29, 33:38-39). 이제 남은 모세는 출애굽 40년 11월 첫째 날에 그의 마지막 사역으로 세 편의 설교를 시작합니다(신 1:3). 이는 자신의 죽음을 앞둔 유작으로서 세 편의 설교가 됩니다. 모세는 출애굽 40년 11월 이후 어느 날 느보 산에서 죽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기력이 다하거나, 병들어 죽지 않았습니다(신 34:7). 그는 자신의 사역을 마치고 죽었으며, 그의 죽음조차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사역이 되었습니다.
신명기의 중심 내용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곧 모세의 세 편의 고별 설교로 신명기 1장1-4장43절은 출애굽 이후 지금까지의 과거를 회상하며 말씀 준수를 촉구합니다. 다음으로 신명기 4장44-26장은 십계명을 시작으로 하여서 율법의 원리와 목적(4장44절-11장)과 더불어 세부적인 율법의 내용들에 관하여 전합니다(12-26장). 마지막으로 27-30장은 미래적으로 축복과 저주를 선포하며 말씀에 대한 순종을 다시 한번 촉구합니다. 곧 신명기는 그 히브리어 제목이 밝히는 바와 같이 첫째도 말씀이요, 둘째도 말씀이요, 셋째도 말씀인 것입니다. 이는 과거 현재 미래적인 말씀이며 모든 시대에 관하여 말씀에 관하여 강조하는 것입니다.
신명기의 직접적인 독자들로서는 출애굽 이후 세대인 광야 세대를 대상으로 합니다. 출애굽 한 세대와 맺은 언약이 시내산 언약이라면 광야 세대와 또 다른 언약인 모압 언약을 맺게 됩니다. 이는 두 번째 율법이라고 말한 칠십인역의 해석과 같이 신명기는 새로운 세대와 새로운 언약을 맺는 것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언약은 이전의 언약에 대한 ‘등사’나 ‘복사’와 같은 의미의 두 번째 언약일 뿐이며 더 나아가 이 언약은 그들 광야 세대뿐만 아니라 모든 세대와 맺은 언약이 되는 것입니다.
곧 ‘시내산 언약’은 과거 출애굽 세대와 맺은 언약이 아닌 지금 광야 세대와 맺은 언약입니다.
“이 언약은 여호와께서 우리 조상들과 세우신 것이 아니요 오늘 여기 살아 있는 우리 곧 우리와 세우신 것이라”(신 5:3)
더 나아가 ‘모압 언약’은 지금 광야 세대와만 맺은 언약이 아닌 이후의 모든 세대와 맺은 언약이 됩니다.
“내가 이 언약과 맹세를 너희에게만 세우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우리와 함께 여기 서 있는 자와 오늘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한 자에게까지이니”(신 29:14-15)
광야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 진입을 앞선 이 새로운 세대는 변화 앞에 서 있습니다. 그들은 이 광야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의 풍요로운 삶을 맞게 될 것입니다. 이전의 삶의 방식과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광야 생활 동안 하늘의 만나를 먹으며 하늘의 은혜를 받으며 살았으나 이제 가나안에서는 이 땅에 풍요로움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는 또 다른 위기가 됩니다. 곧 그들 가운데 있는 풍요로움으로 하나님을 잊을 위기가 되는 것입니다. 참된 복은 세상의 부요함이 아닌 말씀을 붙듦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말씀을 붙들 때에 하늘의 신령한 것과 땅의 기름진 것에 대한 약속이 있는 것입니다.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곧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신 30:15-16)
복은 세 관계 가운데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첫째, 복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그분의 뜻이 이루어질 때 복된 삶입니다(신 28:1). 아무리 부요하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과 반한다면 이는 복된 삶이 될 수 없습니다. 둘째, 복은 자신과의 관계에서 자족할 때에 복된 삶입니다(빌 4:11-12). 아무리 부요하고 할지라도 자족하지 못한 자는 늘 탐욕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습니다. 셋째, 복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다른 사람을 복되게 할 때에 복된 삶입니다(창 12:3). 아무리 부요하다고 할지라도 다른 사람을 어렵게 하는 자의 삶은 복된 삶이 될 수 없습니다. 보다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시며, 우리들을 자족하게 하며, 섬김을 배우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들을 축복된 삶으로 이끕니다.
신명기(申命記)를 신명기(神命記)로 알고 있는 사람들, 왜 신명기의 영어 제목이 Deuteronomy인지 알지 못하는 이들, 신명기를 정글로만 여겨졌던 이들에게 이 작은 책이 신명기 안에서 ‘축복’을 발견하는 보물섬이 될 것을 기대합니다.
서문
히브리 성경의 제목에 있어, 앞선 모세 오경의 말씀들은 첫머리의 말들을 책의 제목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의 말씀은 중심인물이 되는 여호수아의 이름을 책 제목으로 삼습니다. 그 이름은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입니다. 곧 그의 이름은 단지 한 사람의 개인적인 이름이 아닌 그 이름이 가진 뜻으로 우리들에게 교훈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그의 이름은 바로 그의 이름의 뜻입니다. 인생의 승리는 하나님을 나의 구원으로 삼는 자의 삶입니다. 그분은 창조주가 되시고, 구원주가 되시고 장차 심판주가 되실 것입니다.
여호수아 한 인생의 시작은 미미합니다. 그는 주역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모세의 수종으로서 시작하였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는 ‘여호와의 종’ 모세를 섬김에 충성하여 여호수아의 마지막에는 모세와 같이 그 자신 또한 ‘여호와의 종’이라는 거룩한 칭호를 받게 됩니다(수 1:1, 24:29).
여호수아는 크게 정복과 분배로 나뉩니다(정복: 1-12장, 분배: 13-24장). 기업을 얻기 위한 정복 전쟁과 기업의 분배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는 우리들에게 주어진 기업을 보게 하실 것입니다.
이제 여호수아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집니다.
첫째, 여호수아는 성취의 책입니다. 모세 오경을 지나 여호수아는 모세 오경의 성취로서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모세 오경의 약속이 여호수아에 이르러서 비로소 성취되며 이러한 성취는 온전하며 완전한 것이 아닌 예표적인 성취로서 영원한 약속과 그 성취를 소망 중에 바라보게 하는 것입니다. 애굽의 종 되었던 이스라엘을 애굽으로부터 이끌고 나온 이스라엘의 영적 지도자 모세의 뒤를 이은 여호수아의 출현은 변함없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보이며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에게 안식을 줍니다. 그러나 이 안식은 영원한 안식이 아니며 참되고 영원한 안식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하늘 도성을 소망 중에 바라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둘째, 여호수아는 믿음의 책입니다. 여호수아는 믿음의 여러 단면을 우리들에게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에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미정복지가 있으며, 개척해야 할 바가 있으며, 그림을 그려야 할 바가 있습니다. 갈렙의 요구와 요셉 지파의 요구에 여호수아의 가르침과 실로에서의 7지파의 그림은 믿음이란 무엇인가를 보여줍니다. 또한 요단 동편 지파의 역할은 ‘믿음의 책임’에 관하여, 기업 분배(13-21장) 이전에 이루어진 정복 전쟁을(1-12장) 통한 ‘믿음의 싸움’에 관하여 알게 하십니다.
셋째, 여호수아는 기념의 책입니다. 신앙은 기념하는 것입니다. 곧 잊지 않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요단 강 가운데에 언약궤를 맨 제사장들의 발이 선 곳과 그들이 유숙한 길갈에 세운 열 두 돌은 그들이 요단을 건넘을 기념하고 기억합니다(4장). 또한 모든 정복 전쟁을 마치고 요단 동편으로 돌아가던 요단 동편의 지파들이 요단 가에 세운 제단은 요단 서편과 동편 지파의 하나됨을 증거하는 기념이 됩니다. 여호수아는 마지막으로 세겜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맺고 돌을 세우고 증거로 삼습니다. 성만찬으로 주의 죽으심을 기념하고 기억하듯 신앙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념하고 또한 기억하는 것입니다. 은혜의 상실이야 말로 진정한 기억 상실증이 됩니다.
넷째, 여호수아는 실전의 책입니다. 여호수아는 모세 오경의 전체적인 조망으로 보아야 합니다. 여호수아는 모세 오경의 연속이며, 결론이며, 성취이기 때문입니다. 애굽에서 떠나는 이스라엘과 시내 산에서 떠나는 이스라엘은 각각 믿음의 시작과 과정을 보여준다면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이스라엘은 믿음의 절정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세상의 배움에도 초급과 중급과 고급의 과정이 있듯이 믿음의 여정에도 이러한 성숙된 과정이 있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에는 그들의 불평함에도 불구하고 큰 책망과 심판이 없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아직 조직도 없었습니다. 시내 산에서 떠난 이스라엘은 군대로서의 편성과 하나님의 징계라는 성숙됨이 있었지만 그들에게는 아직 큰 전쟁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훈련 가운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실전의 책입니다. 여호수아는 가장 성숙된 믿음의 과정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다섯째, 여호수아는 결단의 책입니다. 여호수아는 마지막 고별사를 통하여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세겜 언약을 통해서 결단케 합니다. 여호수아는 이 결단의 장소로, 아브라함이 처음으로 제단을 쌓았던 곳인 세겜을 택합니다. 믿음은 결단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믿음의 거장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 되는 여호수아를 통한 가나안 정복과 그 분배를 살피며 자신에게 주어진 ‘기업’에 대한 눈이 떠지는 귀한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서문
요한복음은 복음서 가운데 가장 마지막으로 기록된 제4복음서입니다. 복음서 중에서도 가장 깊이 있는 복음서이며 가장 쉬우면서도 심오한 복음서, 가장 영적이며 우주적인 복음서입니다. 요한복음은 두 가지 사명을 동시에 가집니다.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동시에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예수님은 오실 메시야 곧 그리스도이시다라는 메시지는 유대인들을 위한 것이며 동시에 예수님은 하나님이 되신다는 그분의 신성에 관한 메시지는 이방인에게 유익합니다. 어느 하나 소홀히 여길 수 없는 것입니다. 이는 믿는 자에게도 믿지 않는 자에게도 동시에 유익하다 함을 알게 하십니다.
복음서는 각각의 주된 특징이 있습니다. 마태복음은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왕 되심을 선포하며, 마가복음은 고난의 종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보여주며, 누가복음은 사람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들의 신앙을 견인하여 준다면 요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각함으로 그분을 향한 참된 믿음과 신앙을 가지게 합니다. 왕이시며 동시에 종이시며, 사람이시며 동시에 하나님 되신 주님의 모습을 복음서는 보여줍니다.
이제 이 요한복음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한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요한복음의 문화적이며 사상적인 특징입니다. 한 마디로 요한복음은 헬라적이며 유대적입니다. 요한복음은 표면적으로 헬라의 옷을 입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처음부터 ‘로고스’(말씀)라 하며(1:1), 어둠과 빛을 대조하며(1:5), 육과 영을 대조하며(3:6), 위와 아래를 대조합니다(3:31). 예수님을 ‘참 빛’(1:9), ‘참 떡’(6:32), ‘참 포도나무’(15:1)라 하심은 요한복음의 1차 대상이 헬라 사회인 것을 알게 합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은 철저하게 유대적입니다. 예수님을 소개할 때에 하나님의 어린 양(1:29), 메시야(1:41), 하나님의 아들, 이스라엘의 임금(1:49)으로 소개합니다. 가나의 혼인잔치는 유대교 정결 예식을 보여줍니다(2:6).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는 유대적이며(4장), 계속적으로 유대교와 대결하며 논쟁하면서도 유대교의 절기를 중심으로 진행됩니다. 곧 요한복음은 표면적으로는 헬라적인 색채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과 사상은 철저하게 유대적이며 팔레스타인적입니다. 이는 다만 유대 사회뿐만 아니라 헬라 사회를 살아가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에 유익한 것입니다. 우리는 요한복음으로부터 어떻게 유대적 배경의 복음을 헬라적 사회에 전했는지를 배워야 합니다. 이는 복음을 어떻게 이 시대에 전달 수 있을 것인가에 관하여 지혜를 얻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요한복음과 공관복음의 차이입니다. 요한복음에 대한 이해는 공관복음과의 차이 속에서 분명해집니다. 공관복음에 비해 요한복음은 제4복음서로 불립니다. 이는 마태, 마가, 누가복음과 분명히 여러 면에서 상이함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각 복음서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요한복음은 다른 복음서와 현저한 차이를 보입니다.
1.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의 차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역사적이기보다는 신학적이며, 신앙적입니다. 그는 선포자가 아닌 계시자입니다. 이적은 그의 능력이 아닌 표적이며, 그의 죽음은 속죄가 아닌 아버지께로 돌아감의 승귀이며 영광입니다. 보다 영적이며, 보다 신적입니다. 그의 시작은 공생애(마가)와 탄생(마태, 누가)을 넘어 태초로부터 기원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2. 주제의 차이입니다. 요한복음의 주제는 하나님 나라가 아닌 영생에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유대적인 배경에서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을 강조한다면 영생은 헬라적인 배경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에 관하여 강조합니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께서 인치신 자니라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요 6:27-29)
3. 구조적인 차이입니다. 요한복음은 갈릴리 중심이 아닌 예루살렘 중심입니다. 갈릴리보다는 유대지역과 예루살렘에서의 사역이 두드러집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이미 공관복음에서 기록된 갈릴리 사역에 관하여 요약, 생략, 축소하며 공관복음에서 빠진 예루살렘 사역에 관하여 보다 상세하게 전합니다.
셋째, 요한복음의 구조적인 이해입니다. 요한복음의 구조를 이해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일찍이 불트만 같은 학자는 요한복음이 서투른 편집으로 인해 잘못 배열되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는 마치 꼬인 실타래와 같이 그것을 푸는 것이 어려운 지경에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곧 앞에 나오는 성전 청결 기사는 뒤로 수난 기사 부분으로 돌아가야 하며, 예수님의 대제사장 기도(17장, 고별 기도)는 다락방 강화(13-17장)에서 수난 예고(13:1-30) 다음에 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를 ‘환치 이론’이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환치 이론은 사본상, 이론상의 어떠한 근거가 없는 자의적인 판단입니다. 환치 이론은 요한복음의 구조가 얼마나 난해한 것인가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다음으로 주제별로 요한복음의 구조를 정리한 학자는 다드로서 그는 요한복음을 크게 서론(1장)과 결론(21장), 그리고 두 개의 부분으로 나누어지는 본론으로 첫 번째 본론을 ‘표적의 책’으로(2:1-12:50), 두 번째 본론을 ‘수난의 책’이라 하였습니다(13:1-20:31). 학자마다 서론의 범위를 1장 전체로 볼 것인지, 아니면 1장1-18절을 서론 혹은 서문으로 보고 1장19절로부터 시작할지, 또한 두 번째 본론의 명칭을 ‘수난의 책’이 아닌 ‘영광의 책’으로 볼 것인지 등의 작은 차이만 있을 뿐 주제별로 요한복음을 볼 때에 다드의 견해에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는 ‘환치 이론’에서 좀 더 발전되어 요한복음의 구조를 설득력 있게 제시하였다는 데에 의미가 있습니다.
세 번째로 요한복음의 새로운 구조 이해는 게르하르트에 의한 것입니다. 그는 앞선 학자들의 견해인 요한복음 여러 편집자들의 편집 과정을 거쳤다는 주장에 반대합니다. 요한복음은 환치 이론과 같이 본문이 이탈 혹은 재배열된 것도 아닌 한 사람의 글로 주장합니다. 게르하르트가 주장하는 요한복음의 구조는 ‘교차 대구법’(키아즘)에 의한 것으로 요한복음 처음부터 끝까지를 이러한 견해 안에서 설명합니다. 그러나 게르하르트의 이러한 키아즘적인 시도의 긍정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본문을 제외시키고(간음한 여인), 주제에 대한 명확성보다는 비슷한 단어 등의 외적인 일치에 치중하였으며, 새로운 시도는 오히려 요한복음의 구조와 구성을 복잡하고 난해하게 만들었습니다.
불트만의 환치 이론은 요한복음의 구조를 설명하고자 시도한 점에 있어, 다드의 구조 이해는 요한복음의 주제 이해에, 게르하르트의 교차 대구법적 이해는 깊이 있는 요한복음의 구조 이해에 나름 의미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다드로부터 심화된 주제별 이해와 게르하르트에 의한 키아즘적인 구조를 함께 살피며 요한복음의 주제와 구조를 이해하는 것이 보다 바람직한 견해가 될 것입니다.
앞선 연구사적인 전 이해 속에서 요한복음을 다음과 같이 이해하고자 합니다. 요한복음은 앞과 뒤에 서문(1:1-18)과 후기(21장)가 있으며,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1장19-12장50절은 ‘표적의 책’이며 13장1-20장31절은 ‘영광의 책’입니다.
넷째, 요한복음의 역사적 배경입니다. 초기 기독교에 있어서는 유대교와 기독교는 분리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점차 이들은 분리되고, 기원후 90년 얌니아 회의에서 기독교는 유대교에서 이단으로 정죄되면서 회당에서 출교 됩니다. 유대교에서 매일 암송되는 18기도문에는 기독교를 저주하는 기도가 삽입되었습니다. 유대교로부터 분리와 출교, 저주라는 역사적 상황에서 그리스도 공동체는 로마로부터의 박해뿐만 아니라 유대교의 정죄와 저주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은 이러한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정체성을 가르칩니다. 요한복음이 철저하게 유대적인 이유는 한편으로는 그들이 결코 유대적인 배경과 다르지 않음을 가르치면서도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유대교에 대립적인 가르침을 통해서 참된 믿음이 무엇인지를 밝힙니다. 이는 요한복음의 기록 목적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게 합니다.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0-31)
요한 공동체가 얌니아 회의에 의해서 출교된 직후, 그리고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 유배를 가서 요한계시록이 기록되기 이전에 에베소에서 기록된 것으로 여겨지는 요한복음은 고난 가운데 있었던 인생에게 주신 하나님의 귀한 사랑의 선물입니다. 이는 생명을 주심으로 사랑하게 하시며, 사랑을 받은 자들로 하여금 생명을 전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기도를 할 때에 비로소 기도를 알게 되고, 기도를 배우게 되듯, 순례를 하며 순례를 알게 되고, 순례를 배우게 됩니다. 순례는 무엇일까요? 가장 많이 이야기를 한 것은 변화입니다. 순례는 관광도, 여행도 아닌 변화를 요구합니다. 참된 순례는 우리들에게 순종과 열매와 변화를 가르칩니다.
이제 순례를 통해서 더 깊이 있게 보게 되는 것은 순례는 증거입니다. 개신교 순례지를 돌며, 더듬을 때마다 안타까운 것은 순례는 유산임에도 불구하고 눈에 보이는 유물들을 찾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보이는 종교’로서의 천주교와 개신교의 성공회가 남긴 여러 유물들과 비교할 때에 ‘듣는 종교’로서 다른 개신교에서는 어떠한 유물들을 찾기에 쉽지 않습니다. 이는 역사적으로 우상에 대한 논쟁과 신학적으로 종말론적인 사고에 기인할 것입니다. 그러나 순례를 통해서 알게 되는 것은 이는 ‘증거’였습니다. 어떠한 사건이 있은 후에 가장 중요한 것은 ‘증거’입니다. 어떠한 사건도 ‘증거’를 잃어버리면 그 사건 자체가 묻힐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많은 ‘증거’들을 우상으로 정죄하였고, 또한 왜곡된 종말론적 사고로 너무나 가볍게 여겼던 것입니다.
그동안 순례를 하며 감추어 있는 귀한 이야기들을 전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이야기 자체가 유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과거로부터 잃어버린 ‘증거’로서의 유산을 깨닫게 될 때에 아쉬움과 더불어 한국 교회에 이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 되었음을 전합니다. 선교 역사 140주년을 맞이하는 한국 교회는 이제는 보이지 않는 증거인 이야기와 더불어 보이는 증거를 더욱 귀히 여겨할 것입니다.
강화 순례 이야기인 ‘경계에 선 사람들’에 이어 제주 순례 이야기인 ‘칼 귀츨라프의 꿈’을 만 2년 만에 내놓게 되었습니다. ‘경계에 선 사람들’도 귀했지만 이번 ‘칼 귀츨라프의 꿈’이 가진 의미는 매우 깊습니다. 무엇보다도 앞선 책이 모델이 되어서 그 연속과 확장을 이루어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틀이 생겼고, 이로 말미암아 실제적이며, 구체적인 결과물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이는 앞으로 미력하나마 한국 교회 순례 이야기를 온전히 이룰 것을 기대하게 합니다.
‘칼 귀츨라프의 꿈’은 어떻게 제주에 복음이 전파되었는지를 밝히며 하나님의 섭리를 보여줍니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하면 크게 10장을 통해서 제주 선교의 여러 이야기를 다룹니다.
하멜과 귀츨라프를 통한 제주 선교의 서광과 자생적 공동체인 이호리 공동체의 김재원과 금성리 공동체의 조봉호 이야기...
두 장에 걸쳐 전하는 평양대부흥 운동과 이로 말미암은 이기풍 목사님의 입도와 그의 동역자들에 관한 이야기...
천아나를 통해서 살펴보는 조천교회, 성읍교회, 법환교회 이야기...
제주의 첫 번째 목회자와 순교자가 된 이도종 이야기...
삼우로서 교회 사랑 나라 사랑 제주 사랑을 보여준 강문호 이야기...
산남의 거점이 된 모슬포 교회에 담긴 윤식명, 김기평, 조남수 이야기...
한국 전쟁과 제주 교회 이야기...
세계 선교의 전진 기지로서의 제주 이야기...
마지막으로 제주의 문화, 역사 이야기...
이번 ‘칼 귀츨라프의 꿈’이 나오기까지는 여러 분들의 도움과 섬김이 있었습니다. 먼저 낯선 제주의 여러 만남의 다리 역할을 하여 주신 제주 신성교회의 권오형 목사님께 많은 사랑의 빚을 졌습니다. 부족한 글을 읽고 귀한 추천의 글을 담아 주신 박정환 목사님과 고창진 목사님께도 감사드립니다. 또한 한 번 가기도 힘든 제주를 재정적인 부담 없이 갈 수 있었던 것은 자원하여 비행기 비용을 후원하여 주신 성지순례 여행사인 ‘에벤에셀’의 김동진 장로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경계에 선 사람들’의 레이아웃과 디자인 편집을 자원하여 주셨던 김민정 팀장님의 수고와 헌신이 있었기에 오늘 ‘칼 귀츨라프의 꿈’에서도 결실할 수 있었고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새롭게 합류하여 디자인과 편집에 조언과 도움을 주시는 문성예 팀장님께도 늘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 다바르 말씀사역원에 지속적인 섬김을 지원해 주시는 장원 인쇄의 원병철 안수집사님과 장원의 여러 식구들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잦은 순례 일정으로 원치 않는 오랜 외박을 통해 홀로 세 아이를 돌보며, ‘남과 사는 것 같다’라는 사랑의 투정을 했던 사랑하는 아내 박신애에게 고맙고 미안합니다. 자신도 모르게 일반목회에서 특수목회의 현장이 되어 버린 주향교회를 섬기는 여러 성도님들께도 더 많은 섬김을 드리지 못함에 대한 죄송스러움과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마지막으로 변함없이 다바르 말씀사역원을 귀히 여겨주시고, 후원하며 사랑으로 섬겨 주신 다바르 말씀사역원의 회원들에게도 큰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이 모든 일을 이루시고 이끄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립니다. - 서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