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검색
헤더배너
상품평점 help

분류

이름:김미숙

최근작
2023년 12월 <작가는 어떻게 몰입하는가>

난무

그림에 마치 자석이라도 달린 듯 황토색 그림은 내 심장을 끌어당겼다. 심장은 출렁 아픈 소리를 내며 그림 쪽으로 움직였다. 나는 휘청했고 그림에 끌려가는 내 가슴은 아렸다. 변시지 화백의 황토색 그림을 처음 보던 날의 기억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나는 그림을 잘 모르는 사람이었다. 모네나 마네 같은 인상파 화가의 강렬한 그림을 보면 가끔 가슴이 두근거리기는 했어도 내 심장을 온통 끌어당기지는 못했다. 그림 앞에서 내가 휘청거리고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느낄 거라는, 그래서 그림을 떠나와서도 잊지 못해 허공 속에서 다시 그림을 떠올릴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변시지 화백의 그림은 나에게 그렇게 다가왔다. 그의 아픔이 내게 왔고, 그의 예술혼이 내 영혼을 두드렸으며 그의 고독이 나를 울게 했다. 많이 울고 난 다음 제주도 곳곳을 훑으며 그의 삶의 자취를 더듬더듬 찾기 시작했다. 내가 몇 년만 더 일찍 변시지라는 화가를 알았다면 그와 마주 보고 이야기하면서 웃고 울었을 것을, 그래서 그의 삶을 온전히 내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나를 매혹시킨 그 화가의 삶을 더 잘 그려냈을 것을, 그러지 못한 것이 한스러웠다. 그래서인지 그에 관한 시나리오를 집필하기 위해 그의 삶의 흔적을 찾아가던 그해 가을, 제주도에는 유난히 비가 많이 왔었다. 변시지 화백의 그림이 심장을 후벼파는 아픔을 주면서도 깊은 위로가 되는 건 그의 그림이 오롯이 우리 삶을 재현해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환희와 고통, 기쁨과 절망이 버무려진 인생길에서 어디 아프지 않고 삶을 살아내는 사람이 있을까. 변시지 화백은 자신이 아팠던 만큼, 자신이 고독했던 만큼 예술 속에서 행복했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의 그림을 보는 우리도 아픔과 고독을 넘어 위로를 느끼고 행복을 꿈꾸게 되는 것이 아닐까. 우리나라 화가 중에 가장 일본을 잘 알면서도 가장 일본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던 극일주의 화가 변시지, 그래서 그는 제주화라는 독특한 화풍을 구축하기 위해 그토록 몸부림쳤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극복한 것은 일본만이 아니다. 그의 아픈 다리, 잘 보이지 않는 눈, 처절하게 외로웠던 이방인의 삶을 극복했다. 아니 단순한 극복이 아니라 온통 신비로 싸여 있는 우리 삶을 꿰뚫어 보는 경지에 올라선 것이 분명하다. 변시지 화백의 삶을 뒤쫓으면서 나는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단순하게 살아라. 그것이 행복이다.” 나는 이 책이 삶의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인생의 동무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어지러운 춤(亂舞)을 추더라도 절망하지 않고 주눅 들지 않고 당당히 살아갔으면 좋겠다.

작가는 어떻게 몰입하는가

이 책은 그 거친 길에서 작은 등불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집필하게 되었다. 평생 ‘글을 팔아서’ 먹고살아 온 작가로서, ‘글을 팔아서’ 먹고살고 있는 작가들과 작가 지망생에 대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해온 연구자로서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묶었다. 글로 성공한 사람들도 많고 훌륭한 작품을 세상에 내놓은 사람들도 많지만 내가 굳이 이 책을 쓰려고 했던 것은 나 스스로 누구보다도 많이 실패해보았고 글 때문에 많이 좌절하고 주저앉았던 사람들을 만났으며 그들을 연구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글을 쓰는 데 실패해본 사람들에게 더 요긴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예술성과 작품성을 우선에 두는 순문학이 아니라 상품성을 추구하며 ‘글을 파는 사람’이 되겠다고 작정한 사람들에게 조금 더 공감이 가는 글이길 바란다. (중략)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쓰지만 깊은 데로 들어가서 쓰지 않는다. 몰입하지 않는다. 얕은 물가에서 깨작깨작 그물질을 한다. 그곳에 쓸 만한 물고기가 있을 리가 없다. 문제는 자신이 얕은 물가에서 그물질을 한다는 사실도 모른다는 것이다. 나는 그물을 던지고 물고기가 잡히기를 기다리고 있으니 어부이고 글이라는 것을 쓰고 있으니 작가라고 생각한다. 얕은 물가에 큰 물고기가 없듯이 얕은 수준의 글쓰기에서 성과물이 나오지 않는다. (중략) 글을 쓰는 일도 똑같다. 재능으로만 글이 써지지 않는다. 더구나 문화상품의 콘텐츠로 글은 급변하는 문화 트렌드를 면밀하게 살펴야 한다. 근면함과 성실함을 가지고 깊은 곳, 몰입에 들어가서 글을 써야 경쟁력이 있는, 상품성이 있는 글을 쓸 수 있다.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작가로 살면서, 작가 연구를 하면서 ‘돈이 되는 글’을 쓰고 싶은데, 글 쓰는 게 돈이 되지 않는 사람들을 아주 많이 만났다. 그런 이들의 경험과 나의 경험, 그리고 연구 과정 속에서 만난 많은 작가들의 이야기를 담으려고 노력했다. - 책머리에 중에서

가나다별 l l l l l l l l l l l l l l 기타
국내문학상수상자
국내어린이문학상수상자
해외문학상수상자
해외어린이문학상수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