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을 넘어서는 순연한 이야기의 힘
2018년 8월 14일, 평생 야생동물을 연구해온 한 과학자가 일흔이 가까운 나이에 첫 소설을 출간했다. 미국 남부의 노스캐롤라이나주 아우터뱅크스의 해안 습지를 배경으로 한 소녀의 성장 이야기가 출판계에 불러올 어마어마한 파장을 이때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하지만 얼마 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헬로 선샤인 북클럽> 운영자인 할리우드 스타 리즈 위더스푼Reese Witherspoon이 이 책을 발굴해 북클럽 추천작으로 소개하자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단번에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순위 9위로 뛰어올랐다. 뜻밖의 행운이었다. 그러나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정말 이상한 일은 그때부터였다.
보통 무명작가의 데뷔작은 운 좋게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더라도 하위권에서 몇 주 머물다 소리 없이 사라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입소문을 타고 계속, 계속, 계속 무섭게 순위가 뛰어올랐고, 아마존의 독자 리뷰 수가 1만 2,000개를 넘어서는 상황에서도 별점 5점을 유지했다. 출판계 관계자들의 예상을 뒤엎고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리스트와 아마존 판매순위에서 결국 1위를 차지한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치열한 봄철 신간 경쟁을 뚫고 무려 40주 간 1위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다. 2019년 3월 4일, 작가 델리아 오언스는 웹사이트를 통해 백만 부 판매로 밀리언셀러에 등극했음을 알렸다. 전자책과 오디오북을 망라하면 이제는 250만 부(2022년 10월 기준 1,500만 부)를 훌쩍 넘어선다. 전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 쓰여지고 있다.
이 소설이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남아프리카를 여행하며 야생동물을 벗 삼아 평생을 떠돌며 살아온 작가의 특이한 경험, 가볍지 않게 인간성을 바라보는 융합 학문적 시각, 성장소설+오해와 엇갈림으로 점철된 러브스토리+살인 미스터리+법정 스릴러라는 대중소설 형식들의 유려한 황금배합, 정신없이 책장을 넘기게 만드는 흡입력, 신비로운 배경과 살아 움직이는 듯한 인물……. 하나하나 짚어보면 깜짝 히트작이라 부르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장점이 많은 책이다. 무엇보다 이 모든 요소가 어우러져 선사하는 ‘클래식한 읽는 재미’야말로 가장 특별하다. 아무 잔재주도 부리지 않고 고전적인(말하자면 구식의) 스토리텔링으로 우직하게 밀고 나가는 순연한 이야기의 힘이 주는 충만한 만족감이 있다. 게다가 이 소설은 강력한 페이지터너에 머물지 않고 시의적절한 화두들을 예리하게 던진다. 여성의 독립, 계급과 인종, 자연과 인간의 관계, 진화론적으로 바라보는 인간의 본성, 과학과 시 그리고 외로움.
작가 델리아 오언스는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 ‘외로움’에 대한 책이라고 단언했고 처음부터 ‘고립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그리고 싶었다고 했다. 카야가 느끼는 쓰라린 외로움의 정서는 현대의 독자들에게 굉장한 호소력을 갖는다. 습지의 판잣집에서 혼자 살아남으려 분투하지 않더라도 이 시대의 우리는 각자 빌딩 숲이란 정글에서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며 하루하루 ‘외롭다.’ 타인을 믿고 진정성 있는 관계를 맺기란 어렵고도 무서운 일이다. 카야는 사람에게 기대를 걸었다 버림받고 또 사랑을 주었다 배반당하며 대자연의 동물처럼 혼자 서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비로소 ‘두려움 없이’ 사랑하고 사랑받는 법을 깨우친다. 다만 주목해야 할 것은 카야의 ‘외로움’을 다루는 작가의 시선이다.
델리아 오언스는 외로움이 인간 본성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심리학적으로, 생물학적으로, 사회학적으로 인간은 외로워서는 안 되는 존재다. 따라서 사회적 약자와 소외 계급을 부당하게 격리하는 차별과 편견이 문제가 된다. 카야의 고립은 사회적 정치적 불의의 소산이다. 그러니 부모형제에게 버림받은 늪지 쓰레기를 불쌍하게 여기고 거둬준 어른들이 ‘깜둥이’뿐인 것도 당연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소설의 진짜 주인공인 습지가 있다. 노스캐롤라이나 해안에 가본 적은 없지만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에는 두 번 다녀온 적이 있다. 잠시 일별한 미국 남부 습지의 풍광이 비현실적으로 나른하고 아름다웠던 기억이 있다. 거대한 참나무와 바오밥 나무가 드리운 그늘, 나뭇가지마다 유령 머리카락처럼 걸려 바람에 흔들리는 새하얀 이끼류인 스패니시 모스, 밟으면 물이 흥건히 배어나오는 무른 흙, 드넓은 늪과 못에 떠다니는 푸른 물풀, 억새와 부들, 축축 늘어져 땅을 파고드는 나무뿌리들. 한 번 보면 평생 잊을 수 없는 기묘한 풍광이었다. 습지는 숲에서 호소와 늪을 지나 개펄과 바다로 이어지는,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고 섞이는 광대한 생태계로 생물 다양성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만 인간이 살아가기에는 가혹한 환경이다. 으스스한 야생성과 마술적인 매혹을 한 몸에 지닌 카야는 완벽한 습지 생물이다.
나는 trans라는 접두사를 좋아한다. 횡단하고 초월하고 교환하는 융합의 움직임을 소환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번역하면서 좋은 소설은 세 가지 trans의 행위로 우리를 초대한다는 생각을 했다. Transport 이동, Transfix 몰입, Transform변신. 우리를 다른 세계로 데려가주고, 낯선 세계에 홀린 듯 몰입하게 해주고, 처음 책을 펼칠 때와는 다른 모습으로 마지막 책장을 넘기게 만든다. 그런 점에서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우리를 노스캐롤라이나의 습원으로 훌쩍 데리고 가서 그곳 사람들과 풍경에 몰두하게 만들고, 여정이 끝나면 처음 책장을 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더 멀고 깊은 자리에 우리를 내려놓는다.
* 인물 호칭에서 쓰이는 ‘미스’ 또는 ‘마스터’는 노예제도의 문화가 잔존해 있던 60년대 미국 남부의 독특한 언어습관으로 판단하고, 굳이 우리말로 옮기지 않았음을 밝혀둔다.
참으로 놀라운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우리 눈앞에서 걸출한 의식의 진화가 펼쳐진다. (…) 기억은 불완전하고, 우리는 한 시절 우리가 서 있던 자리의 한계 안에서만 책과 사람을, 세계를 만날 수 있다. 우리가 변하지 않으면 우리 눈에 보이는 세계도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변하며, 그래서 훌륭한 문학작품이 품은 세상의 넓이와 깊이를 만나려면 시공간의 여정을 거쳐 돌아오고 또 돌아와야만 한다. 핵심 텍스트로의 거듭되는 귀환을 통해 우리는 이야기를 다시 쓰고 의식을 새로 발명한다. (…) 이야기들은 지워지지 않고 팽창한다. 우회하고 일탈하고 방황했던 삶의 여정, 그 모든 시간이 혜안으로 화한다. 이것은 가히 감동적인 성장서사다.
번역가의 일에서 톤을 포착하는 작업만큼은 AI를 포함해 그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습니다. 원전 텍스트가 동일하게 주어져도 번역가마다 전혀 다른 해법을 찾아내기 마련이고, 따라서 번역본의 ‘톤’은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어요. 텍스트는 그대로이나 언어의 지형이 바뀌면 그 ‘톤’은 무한대로 달라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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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번역본은 클래식 음악 연주처럼 다양하면 다양할수록 좋습니다. 복수의 판본이 하나의 절대 왕좌를 놓고 경쟁하는 게 아니라 서로 대화하고 겹치면서 독자의 독서 경험을 점점 풍부하게 쌓아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고갈되지 않는 원본의 뉘앙스들을 끊임없이 발견해 고전을 동시대적으로 끊임없이 되살려낼 길이 열리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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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위상은 오랜 시간을 거침으로써, 즉 시대적·문화적 거리를 확보함으로써 획득한 것이니까, 그 거리를 확보하고 의식하고 재현하는 번역은 꼭 필요합니다. 하나 모든 고전은, 그중에서도 특히 제인 오스틴의 소설은 검증된 문학성을 중시하고 우러르는 정석적 접근만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또 다른, 아주 매혹적인 얼굴을 지니고 있답니다. 새 번역에서는, 텍스트를 읽는 체험의 동시대성에 최대한 집중하려 해요. 무엇보다도, 제인 오스틴의 ‘톤’에 존재하는 리듬감, 그 리듬감이 끌고 나가는 이야기의 속도감, 그 속도감이 형성하는 서사적 흡입력을 최대한 재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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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텍스트의 번역가가 문체를 결정하는 근거는 텍스트 속에서 깜박거리는 무수한 작은 신호들입니다. 이 번역가가 보는 신호를 저 번역가는 못 볼 수도 있고, 이 번역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신호를 저 번역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 작은 신호들에 근거한 작은 판단들이 축적되다보면 번역본마다 독특한 개성을 지니게 되지요. 저는 독자분들이 서로 다른 번역의 개성을 즐기고, 차이를 구축하는 취향과 판단의 근거를 가늠하고, 나아가 그 차이들 속에서 다채롭게 드러나는 원전의 매력을 풍요롭게 감상하는 새로운 재미를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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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성과 감성』, 『오만과 편견』의 화자를 갓 스물이 된 제인 오스틴과 크게 다르지 않은 소설 속 또 하나의 등장인물로 상정하고 입말에 가깝게 번역했는데요. 이 소설들의 화자가 편지글에 등장하는 제인 오스틴 본인과 매우 비슷할 뿐 아니라, 당대의 여러 텍스트를 비교해볼 때 이 서술이 ‘글(ecrit)’보다는 부유하는 ‘말(parole)’에 훨씬 가깝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에요. 이처럼 사람들의 연애 이야기와 뒷담화를 귓전에 속살거리는 듯한 로맨스 장르 속 숨은 화자의 전통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고요. 이제 이렇게 문체를 결정하고 나면 번역하는 과정에서 텍스트의 작은 신호들이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지 계속 점검하게 되는데, 아직은 다행히도 번역하는 과정에서 제 판단이 옳았다는 확신이 굳어지고 있어요. 특히 『이성과 감성』에서 “I”라는 일인칭 대명사가 불쑥 튀어나왔을 때는 내심 기분이 좋았답니다.
헬렌 필딩은 브리짓 존스가 아기를 낳고 가족을 꾸릴 뿐 아니라, 결국은 우리들 부모님과 같은 모습으로 늙어갈 것 같은 암시를 이 책의 마지막에 남긴다. 이런 ‘평화로운’ 엔딩으로 볼 때, 이 책에 나오는 브리짓 존스가 아마도 우리가 마지막으로 보게 되는 브리짓 존스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블루는 빛일까 색일까 관념일까 은유일까 감각일까 아니면 마음의 상태일까. 이 책에서 블루는 그 모든 것이다. 광학적 착시. 선물이자 상실, 고통과 슬픔과 죽음. 불가지론의 형이상학. 여자들만 느끼는 깊디깊은 우울. 비에 젖은 파란 방수포처럼 흔들리는 우리 삶. 슬프고 아프고 외로운 변두리의 신. 파란 신의 조각들이 독자의 피부를 물들이고 심장을 파고든다. 베고 에이고 적시고 스민다. 그리하여 넬슨의 블루는 지적인 통찰보다는 고통의 공감각을 울리고 240개의 얼음 파편처럼 비산해 독자의 눈과 심장에 박힌다.
1983년 발표한 살만 루슈디의 세 번째 소설 『수치』는 인도어 「샤람」의 영어 번역어 shame을 옮긴 말이다. 「샤람」은 인도에서 태어나 본의 아니게 파키스탄을 모국으로 갖게 되지만 영국에서 성장한, 소위 코즈모폴리턴적 작가라 불리는 살만 루슈디에게 그 「번역할 수 없는 모국어」의 핵심으로 나타난다. 작가는 순수하고 온전한 「원래의」 형태로 이 관념을 형용할 수 없는 타락한 존재로서의 스스로를 인식한다. 말하자면 이는 더럽혀진 식민주의 지배자의 언어로 글을 써야 하는 디아스포라의 숙명이다. 「샤람」, 이 「짧은 단어지만 백과사전에 비길 만한 뉘앙스를 지닌 말」. 원죄로 더럽혀진 치졸한 역어 shame, 혹은 그 치졸한 역어를 다시 한 번 번역한 「수치」로는 차마 담을 수 없는 풍요로운 기의는 부끄러움, 굴욕, 오욕, 치욕, 창피함, 당황, 점잖음, 겸손, 수줍음, 이 세상에 신이 정해 준 제자리가 있다는 소속감을 비롯해 영어에는 해당 단어가 없는 여타 국어 어휘들의 감정들까지 포용하는 광범하고도 응축된 관념이다.
번역가의 일에서 톤을 포착하는 작업만큼은 AI를 포함해 그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습니다. 원전 텍스트가 동일하게 주어져도 번역가마다 전혀 다른 해법을 찾아내기 마련이고, 따라서 번역본의 ‘톤’은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어요. 텍스트는 그대로이나 언어의 지형이 바뀌면 그 ‘톤’은 무한대로 달라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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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번역본은 클래식 음악 연주처럼 다양하면 다양할수록 좋습니다. 복수의 판본이 하나의 절대 왕좌를 놓고 경쟁하는 게 아니라 서로 대화하고 겹치면서 독자의 독서 경험을 점점 풍부하게 쌓아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고갈되지 않는 원본의 뉘앙스들을 끊임없이 발견해 고전을 동시대적으로 끊임없이 되살려낼 길이 열리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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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위상은 오랜 시간을 거침으로써, 즉 시대적·문화적 거리를 확보함으로써 획득한 것이니까, 그 거리를 확보하고 의식하고 재현하는 번역은 꼭 필요합니다. 하나 모든 고전은, 그중에서도 특히 제인 오스틴의 소설은 검증된 문학성을 중시하고 우러르는 정석적 접근만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또 다른, 아주 매혹적인 얼굴을 지니고 있답니다. 새 번역에서는, 텍스트를 읽는 체험의 동시대성에 최대한 집중하려 해요. 무엇보다도, 제인 오스틴의 ‘톤’에 존재하는 리듬감, 그 리듬감이 끌고 나가는 이야기의 속도감, 그 속도감이 형성하는 서사적 흡입력을 최대한 재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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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텍스트의 번역가가 문체를 결정하는 근거는 텍스트 속에서 깜박거리는 무수한 작은 신호들입니다. 이 번역가가 보는 신호를 저 번역가는 못 볼 수도 있고, 이 번역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신호를 저 번역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 작은 신호들에 근거한 작은 판단들이 축적되다보면 번역본마다 독특한 개성을 지니게 되지요. 저는 독자분들이 서로 다른 번역의 개성을 즐기고, 차이를 구축하는 취향과 판단의 근거를 가늠하고, 나아가 그 차이들 속에서 다채롭게 드러나는 원전의 매력을 풍요롭게 감상하는 새로운 재미를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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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성과 감성』, 『오만과 편견』의 화자를 갓 스물이 된 제인 오스틴과 크게 다르지 않은 소설 속 또 하나의 등장인물로 상정하고 입말에 가깝게 번역했는데요. 이 소설들의 화자가 편지글에 등장하는 제인 오스틴 본인과 매우 비슷할 뿐 아니라, 당대의 여러 텍스트를 비교해볼 때 이 서술이 ‘글(ecrit)’보다는 부유하는 ‘말(parole)’에 훨씬 가깝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에요. 이처럼 사람들의 연애 이야기와 뒷담화를 귓전에 속살거리는 듯한 로맨스 장르 속 숨은 화자의 전통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고요. 이제 이렇게 문체를 결정하고 나면 번역하는 과정에서 텍스트의 작은 신호들이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지 계속 점검하게 되는데, 아직은 다행히도 번역하는 과정에서 제 판단이 옳았다는 확신이 굳어지고 있어요. 특히 『이성과 감성』에서 “I”라는 일인칭 대명사가 불쑥 튀어나왔을 때는 내심 기분이 좋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