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종종 내가 질병으로 병상에 누워 있을 때나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 중 누군가가 고난에 처한 때를 상기하며 주어진 위치와 환경을 소중히 여기며 소소한 것들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한다. 예를 들어서 곁에있는사람, 옆에있는물건, 주위에있는사람"c"c 모두가 내가 있음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내가 없으면 이 모든 것들은 무의미한 것이므로. "e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f는 우리의 속담을 빌리지 않더라도 주어진 현실의 모든 것들은 지금 내가 있음으로 존재하는 것이니 모두가 내것이며 우리의 것이니 이 모든 것을 최대한 누리자고 말하고 싶다. "있을 때 잘해"가 아닌"있을 때 누리라"고.
자동차 소음보다 풀벌레 울음소리가 정적을 깨는 곳,
잡상인의 확성기 소리보다 바람소리가 잦아드는 곳,
아스팔트 고층 아파트 숲이면서도 자연의 숲이 우거진 곳,
가현산을 마주한 도시 속에 전원이 어우러진 나의 본거주지 아파트
풍경이다.
자동차를 몰고 서울 시내를 다닐라 치면 복잡한 도로와 빌딩숲,
다닥다닥 붙은 건물 사이로 분주하게 오가는 인파,
굉음에 가까운 소음과 매캐한 공해,
주차할 곳을 먼저 염려해야 하는 주차전쟁,
공해와 소음으로 찌든 이런 곳에서 어찌 살 수 있을까 한참을 생각에
잠기곤 한다.
한때는 도시의 공해와 소음 속에서 다람쥐 쳇바퀴 도는 생활을 했으
면서 그런 환경으로부터 탈피하고픔이 너무 컸던 까닭일까
아득한 옛날처럼 느껴지는 것은.
말은 태어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옛말을 역
설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서울에 집중된 정부 부처가 수도권 외곽으로 이전되고,
세종시라는 복합도시가 탄생되어 행정 중심 기능을 담당하고,
첨단산업 단지, 대학 유치 등으로 인구 집중을 분산시켜
수도권 중심권을 개혁하는 시대이니 말이다.
시인은 자연에게 빚진 자라 했던가.
자연을 소재로 인애를 일구어 자연을 닮은 사랑을 노래하는 시인,
자연은 있는 자체가 순수이다.
순수는 거짓이 없는 그야말로 이슬 머금은 산소 같은 것이어서
자연을 벗 삼아 노래하는 시인의 시는 맑고 깨끗하다.
맑고 깨끗한 시를 담는 영혼 또한 순수하지 않으면 닮을 수 없는 것,
그리하여 나는 끊임없이 자연을 닮고자 한다.
풀잎 하나에 머무는 시선,
들꽃 한 잎에서 엿보는 그리운 얼굴,
길가의 가로수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내 안에 심어진 녹음의 향기를 품고
자연에서 비롯된 인간의 심성을 키워 우거진 가지를 뻗어나가며
내안에서 키워 낸 순수한 시어를 낚고 싶다는 핑계 아닌 핑계를 빌미로
아파트 숲을 벗어나 강화도에 소재한 작업실, 당신의 숲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