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위 허위 달려온 삶이었다. 뒤돌아볼 사이도 없이 흘러간 시간들을 생각해 본다. 너무도 많은 사건들 사연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참 많은 굴곡과 희비가 교차한다. 그저 주먹구구식으로 스스로를 평가해 그 중간쯤은 가지 않을까 자위해 보지만 그렇지 못한 것 같다. 100명쯤 줄을 세운 가운데 몇 번째나 될까 생각해 보는 것인데 후반 저 뒤쪽에서 까마득한 앞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최근 초등학교 동문회에 참석했다가 조회 때 줄을 서던 순서를 알게 되었고 중간쯤 서 있던 기억을 되살릴 수 있었다. 그나저나 다 죽고 산 사람이 몇 안 되었다. 6 . 25 나던 해 졸업을 했는데 난리 통에 많이 죽고 뿔뿔이 다 헤어졌었다.
살아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무얼하며 살았느냐 어떻게 살았느냐 마음에 드는 삶이었느냐 따져 볼 때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그래도 뭘 쓴다고 하며 자신이 주인공이 됐든 단역이 됐든 이러구 저러구 이야기할 수 있어 많이 미화되었던 것 같다. 작품, 소설이라는 이름으로 문학예술이라는 미명 아래 고양이 뭣 끌어묻듯이 많이 덮어버린 것 같다.
「그들은 누구인가」「만남」「미완의 편지」 3편의 소설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본다. 장편소설 단편소설 꽁트를 한 편씩 선택하였다는데 이상한 조합인대로 제재가 같다면 같을 수 있다는 것 외에 다른 이유는 없다. 내게 있어서 작품은 긴 것이 됐든 짧은 것이 됐던 밤을 새고 산통을 겪는다. 다 고고의 소리를 지르며 태어난 내 분신들이다.
살고 있는 지역의 노근리사건 이야기를 여러 각도로 써 봤는데 농민 학살이라는 측면에서 그 백배 천배도 넘는 규모의 보도연맹원 학살 사건을 몇 번이고 다시 들추어 보지만 너무도 어이가 없다. 그것이 다른 사람도 아닌 바로 우리 동족끼리 벌인 일이라는 데는 말문이 막힌다. 이 천인공로할 사건이 전국 곳곳에서 벌어졌는데 그로부터 70년이 지나도록, 정확히는 76년이지만, 누구 하나 잘했다 잘 못했다 책임 있는 말 한 마디 하는 주체가 없다. 이것이 말이 되는가. 우리는 누구이며 그들은 누구인가. 누구였던가.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아직 매듭짓지 못한 현재진행형 사건이다.
전쟁으로 모든 것이 파괴되었다. 마을이 뒤집어지고 체재는 실종되고 옆치락 뒤치락하다 나라는 동강이 나고 말았다. 그 어두은 흑역사 속의 여기 가냘픈 세 가족 얘기가 무슨 의미가 있을 지 모르겠다.
「그들은 누구인가」「만남」은 북에 있는 아버지와 자식을 만나는 얘기이다. 「그들은…」은 딸이 아버지를 만나고 「만남」은 아버지가 아들을 만난다. 얼굴도 모르는 혈육을 처음 상봉하는 것이다. 철조망을 쳐 놓고 가지도 오지도 못하는 우리 민족만의 비극이다. 왜 편지 한 장 전화 한 통도 못 하는가. 누가 그것을 막고 있는 것인가. 「미완의 편지」에서는 북에 두고 온 아들을 끝내 못 만나고 눈을 감는다.
작년 이맘때 낸 벽돌책 「뿌리 끝에서 만나리」도 그런 것이었다. 아직 별 반응이 없는데 다시 한번 추가해 본다. 무모한 대로 최근 나의 경향인지 모르겠다.
언제부터인가 등산할 때 가지고 다니던 지팡이를 짚고 다닌다. 보기가 안 좋은 대로 안정감이 있다. 텃밭에 여기 저기 자라고 있는 명아주로 지팡를 만드려고 한다. 안수길 선생님의 「명아주 한 포기」가 생각난다. 1963년 나의 작품을 심사 추천해 주시고 1973년 첫 작품집 서문을 써 주셨는데 그로부터 몇 년 몇 해가 되었는가. 그동안 뭘 하였는지 부끄럽고 죄스럽기만 하다.
사죄를 하며 다시 시작한다.
2026년 6월 하순
귀경재에서
저자 - 서문
단군은 나의 오랜 화두이다. 여러 가지 형식으로 주제화하여 보았지만 늘 미흡하고 아쉬웠다. 공감을 얻지 못하였다. 그러나 계속 들켜쥐고 있는 이 이야기 보따리를 이제 내려놓을 때가 되었다. 시간이 그렇게 되었다.
남과 북이 변함없이 선호하고 거부감이 없는 것이 있다면 쌀과 술이다. 그것을 누구라도 동의할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있는 것을 아는지 모르겠다. 단군이다. 단군! 그것을 깨달으면서 소리를 질렀다. 너무도 귀중한 우리의 꿈이다. 이 시대 최대의 명제이다. 이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전환의 시기마다 새벽잠을 깨웠다. 광복과 분단 80년 그리고 6. 25 한국전쟁 75년의 해를 맞아 새 각오와 구도로 이야기를 다시 시도해 본다. 계속되는 단군 테마의 누가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