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경찰이 하는 일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다수의 사람은 범인을 잡는 일, 즉 ‘수사’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영화, 드라마를 넘어 예능, 심지어 교양 프로그램까지 앞다투어 경찰 수사의 극적인 모습만을 다루고 있으니, 경찰이라는 말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미지가 수사인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하지만 사실 수사는 경찰이 하고 있는 많은 일 중 하나일 뿐이고, 수사경찰관은 전체 경찰관의 1/4에도 미치지 못하는 등 그 비중도 생각만큼 크지 않습니다. 이는 시도경찰청이나 경찰서의 조직도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일반적으로 경찰서에는 수사과와 형사과 외에도 경무과, 생활안전과, 경비과, 교통과, 외사과, 보안과, 112 상황실, 청문감사관실 등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3/4의 경찰관, 즉 10만 명에 가까운 경찰관이 하고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교통정리나 음주단속을 하고 있는 경찰관이나 순찰을 돌고 있는 경찰관을 단 한 번도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겁니다. 뉴스를 통해 자살을 하려는 사람을 구한 경찰관, 가출청소년이나 독거노인을 적극적으로 보호한 경찰관과 같은 미담을 들을 기회도 종종 있고요. 이처럼 대다수의 경찰관이 일선 현장에서 하는 일은 국민이 안전하고 평온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위험한 일이 애초에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고, 위험이 실현되어 장해가 발생하면 이를 제거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경찰의 작용을 “위험방지”라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위험방지는 수사처럼 극적인 면이 없기에 눈에 잘 띄지 않고 사람들로부터 큰 관심을 받지도 않지만, 어쩌면 수사보다 더욱 중요한 일일지 모릅니다. 최고의 수사는 범인이 죗값을 치르게 하는 데 그치지만, 최고의 위험방지는 애초에 피해자를 존재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니까요.
이 책은 독자가 경찰관직무집행법을 중심으로 위험방지와 수사라는 경찰의 양대 권한을 전반적으로 이해하고, 경찰작용의 적법성을 평가하는 능력을 배양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특히 현장 경찰작용과 직결되어있는 위험방지와 수사, 즉 경찰관직무집행법 제3조 내지 제7조 및 영장에 의하지 아니한 체포·압수·수색에 대해 필수적인 이론과 판례를 망라하여 철저하게 분석하고 간결하게 정리함으로써, 다양한 경찰작용의 실제를 명확하고 세세하기 풀어내고자 하였습니다. 그림으로 비유하자면, 이 책의 제1부는 경찰의 권한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와 위험방지와 직결되어 있는 강제수사를 집중적으로 다루어 경찰작용의 이해를 위한 밑그림을 그렸고, 제2부는 경찰관직무집행법 각 조항과 관련 특별법의 조문 해석이라는 세부적 표현을 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현장 경찰관의 위험방지 권한과 수사권을 입체적으로 고찰할 수 있을 것으로, 이 그림의 채색은 독자들에게 맡기고자 합니다.
늘 그렇듯 조금 더 쉽고 명확하게 책을 쓸 수는 없었는지에 대해 반성하며, 이 책이 법률전문가와 일선 경찰관은 물론 일반 시민들이 자신의 권리와 의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 이를 통해 적법한 경찰작용이 뿌리내려 조금 더 나은 국가가 되는 데 티끌 만큼이라도 기여하기를 기대합니다.
2022년 2월
제 2 판 머리말
이 책의 초판 발행일로부터 2년이 지났습니다. 저자는 초판의 원고를 작성하며 성폭력 범죄와 관련된 문제를 모두 담아 가급적 개정판을 내지 않겠다는 생각이었지만, 그간 성폭력범죄와 관련하여 다양한 추가 입법이 이루어졌고, 법원의 태도에도 큰 변화가 있어 개정판을 내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특히 촬영물에 대해 소지·구입·저장·시청죄 및 이를 이용한 협박죄와 강요죄가 신설된 점, 강간죄, 유사강간죄 및 특별법상 강제추행죄에 예비죄가 신설된 점, 의제강간죄의 범위가 만 16세 미만의 피해자까지 확대된 점, 다수의 성폭력처벌법 법정형이 크게 상향되고, 공소시효 배제 범죄가 확대된 점 등은 실무상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입니다. 제2판은 이러한 새로운 입법에 대한 판례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실무자들에게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저자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경우를 상정하고 이를 빠짐없이 검토하였습니다.
또한 법원은 위계를 간음이나 추행 등에 대한 속임수로 한정하였던 것을 그 외의 조건으로 확대하고, 알코올성 패싱아웃뿐만 아니라 블랙아웃 상태의 피해자에 대해서도 준강간죄 등이 성립할 수 있다고 한 것을 비롯하여, 위력, 보호감독관계, 기습추행 등 다수의 구성요건에 대한 해석을 확대하였습니다. 제2판은 이러한 새로운 판례를 분석하여 그 경향을 파악하고 향후 실무자들이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기 위해 유의할 점을 제시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변화의 큰 줄기는 성폭력 범죄자가 자신의 잘못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도록 하는 것으로 매우 바람직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직도 위력이나 위계에 의한 성폭력 범죄의 피해자는 미성년자, 장애인(심신미약자), 또는 피보호자로 제한되어 있고, 특수 유사강간죄나 친족에 의한 유사강간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공소시효의 배제규정을 확대하면서 부진정소급효 규정을 두지 않는 실수가 반복되었고, 불법의 크기가 더 큰 행위에 대한 법정형이 그 크기가 더 작은 행위의 그것보다 낮은 상태로 방치되어 있는 등 입법의 미진 또한 다수 발견됩니다. 향후 더 정밀한 입법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합니다.
끝으로 부족한 이 책이 제2판까지 나오게 되는 데 큰 도움을 주신 박영사 관계자 여러분, 특히 오치웅 님, 정은희 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또한 이 책 제1판의 내용에 대해 많은 조언을 주신 민고은 님, 백윤석 님, 오상지 님을 비롯하여 성범죄의 근절과 피해자의 보호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2021년 9월
최근 미투 운동과 더불어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크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늦은 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가해자에 대한 온당한 처벌과 피해자에 대한 충분한 보호가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요구되고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복잡한 성범죄의 법체계로 인해 가해자에게 어떠한 처벌이 가능한지, 피해자는 어떠한 보호를 받을 수 있는지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은 숙련된 실무가라 해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 책은 저자가 경찰교육기관과 로스쿨에서 “성폭력 범죄 법리분석” 또는 “성폭력 범죄(특별형법)”라는 주제로 진행하는 수업 내용을 글로 옮긴 것입니다. 수사실무자와 예비 법조인들에게 성범죄의 법체계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연구하고 강의한 내용에 수강생의 피드백을 통해 많은 수정을 거친 끝에 완성한 것입니다. 저자가 제시하는 방법에 따라 학습하면 누구든지 성범죄자에 대한 처벌과 관련된 형사범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저자는 이 책에 성범죄자에 대한 형사처벌과 관련된 모든 실무적 쟁점을 담고자 노력하였습니다. 판례가 확립된 쟁점에 대해서는 실무적인 관점에서 이를 정리하기만 하면 되어 큰 어려움이 없었지만, 죄수 문제처럼 판례를 찾기 어려운 쟁점에 대해서는 통설적인 견해에 따라 합리적인 해답을 제시하고자 고민하였습니다. 저자가 미처 확인하지 못한 판례가 있거나, 저자의 의견에 대한 비판이 있다면 언제든 e-메일(cody96@hanmail.net)로 연락해주시기 바랍니다. 책 내용에 대한 질문 또는 관련 질문도 환영합니다. 2판이 나오게 된다면 중요한 내용은 꼭 반영하겠습니다.
끝으로 수사연수원에서 주요 성폭력 범죄 법리분석의 초석을 마련한 백윤석, 문성준 경감을 비롯하여 성범죄의 근절과 피해자의 보호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2019년 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