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희곡에 쓰이는 ‘사이’라는 말을 좋아하는 것 같다. 어떤 상태나 감정보다 시간과 관계의 어떤 틈. 공간성. 벌어진 틈은 그릇이 되어 만든 이의 손을 떠난다. 사이를 제대로 적어넣을 때 그리고 무대에서 사이가 무너질 듯이 쌓일 때 느껴지는 전율이 있다. 현실의 나는 해내지 못하는 그런 극적인 순간. 이 책에 실린 희곡들은 편당 80분에서 100분가량을 공연했다. 그런데도 어떤 극은 말이 많고 어떤 극은 말이 적다. 모두 ‘사이’가 하는 일이다. 그간 연극으로, 내가 쓴 것을 나의 속도로 전해 왔다. 이제 이렇게 남의 손에 남기게 되었으니, 이번 희곡집은 독자들이 자신의 속도로 읽어볼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 서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