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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번역공동체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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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2월 <일본인 '위안부'>

마을을 불살라 백치가 되어라

<불편함>이야말로 당연시하는 것을 되묻게 만드는 힘이다. 이토 노에는 당대의 자본주의, 사회주의, 페미니즘이라는 다양한 이즘(ism)의 입장에서 어느 누구 하나 반기지 않는 ‘불편한’ 존재였다. 그러나 그 ‘불편함’이야말로 우리가 당연시하는 것들을 되묻게 만든다. 노에는 누가 자격이 있는가의 문제보다는, 이 사회가 무엇을 기준으로 여성, 남성 혹은 인간다움이라는 범주를 정하고 통제하는가의 문제, 즉 권력의 작동방식을 문제 삼았다. 남성들의 지배로부터 자유로워진다 하더라도, 그 시점에서 다시 사람들을 계속 특정한 범주 안으로 집어넣고 규정지으려 하는 새로운 권력과 담론이 생겨난다. 노에는 이에 대해 거침없는 비판을 쏟아 부으며 새로 짜인 판까지도 뒤흔들었다. 한편, 규정할 수 없고 포섭되지도 않으면서 법과 제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던 그의 아나키스트 친구들은 일하지 않는 자들이라는 점에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양측 모두에게 쓸모없는 자들로 치부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쓸모-없음’이야말로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세계의 토대를 의심해 볼 수 있는 계기일 수 있지 않을까? 그들의 존재 자체가 ‘불편하게’ 느껴지는 건 바로 우리의 토대가 흔들리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왜 쓸모 있어야 하는가?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 노에가 이런 소리를 듣는다면 우리가 왜 이렇게까지 일해야 하는지를 되물었을 것이다. 노에는 보란 듯이 쓸모없는 자들과 함께 밤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요리로 만찬을 즐겼다. 백 년 전 어느 여름 밤, 노에 일당이 웃고 떠들었을 왁자지껄한 밥상을 떠올려본다.

일본인 '위안부'

일본군과 국가의 법적 책임을 면피하지 않으면서도, 여성에 대한 성 착취와 노예화를 지탱해 온 이들의 군상을 면밀히 들여다보는 작업은 사회적 책임과 더불어 제도로서의 위안소가 어떠한 정치·경제·사회적 그물망 속에서 가동하고 있었는지 되물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일본인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새롭게’ ‘문제화’해 나갈 수 있을지, 역사적 사료와 현재적 담론을 오가는 섬세한 물음이 던져져야 할 때다. 나가이 가즈는 두 개의 통첩, 그와 관련된 경찰 보고서, 결재문서 등의 분석을 통해 공문서 간의 관련성과 인과관계를 밝히고 ‘위안부’ 징모와 이송 관련 문서에서 드러나는 일본군, 일본 정부, 경찰, 업자들의 증언을 통해 드러난 여러 행위자의 ‘공모’를 규명했다. ‘위안부’ 모집은 은밀하게 이뤄져야만 했고 군과의 관계를 언급해서는 안 되었다는 사실이 공문서에 대한 나가이의 면밀한 독해를 통해 드러났다. 이 통첩은 한편으로는 ‘위안부’ 모집과 도항을 용인하면서도, 군과 국가가 위안소와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해서는 은폐할 것을 업자에게 의무화했다. 이것이 요점이다. 이러한 ‘공인’과 ‘은폐’의 이중적 태도가 당시 경보국의 방침이자, 일본 정부의 방침이었다. 본국, 식민지, 점령지 여성들의 전쟁경험과 성폭력 피해는 이 여성의 경험과 저 여성의 경험을 비교하며 피해의 위계를 만드는 방식이 아니라, 이 제도와 저 제도를, 이 정책과 저 정책을 비교하면서 여성들을 분리하며 억압하는 갖가지 권력이 어떻게 맞물려 작동하는지에 착목하여 다뤄져야 한다. ‘하찮은’ 존재들로 자리매김되어 온 이들이 서로를 더 낮은 하위의 위계로 밀어내며 자신의 피해를 입증하는 일은 바로 그 위계의 선을 그은 권력의 구조를 강화하며 자기도 모르게 그러한 구조의 유지에 기여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하찮다고 여겨지는 존재들이, 존엄이 박탈당한 바로 그 자리에서 서로를 밀어내거나 지우지 않고서 서로의 존재를 비출 수 있는 ‘다른 이야기’는 어떻게 가능할까. 후지메 유키가 지적했듯이 전후의 역사학은 근대 국가의 지배구조 분석이나 지배계급에 대한 인민투쟁사를 주요 연구대상으로 삼아 왔지만, 성과 생식의 자기결정권을 쟁취하기 위해 싸운 인민의 저항과 사회운동은 역사학에서 정통적인 연구대상으로 간주되지 못했다. 일본인 ‘위안부’를 둘러싼 논의는 일본에서도 여전히 신중함 속에 있고, 한국에서는 아직 본격적으로 논의되는 공론장이 드물다. 일본인 ‘위안부’ 여성들이 놓여 있던 사회적·경제적 취약성의 근간에 군국주의, 제국주의, 자본주의, 가부장제, 계급성,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등이 버티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성적 재생산권리에 대한 침해’라는 섹슈얼리티에 대한 적극적인 관점으로 일본인 ‘위안부’ 문제를 바라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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