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릿한 철봉의 맛, 그 불량한 감각의 대지
좋은 시를 마주하는 일은 이성의 독해를 앞질러 육체가 먼저 앓는 하나의 사건이다. 시의 서늘한 진동과 잔향은 어느 심연에서 출발하여 우리에게 당도하는 것인가. 시가 우리 곁에 도착하는 찰나, 시는 세상의 모든 길을 지우고, 미지의 영토로 우리를 초대한다. 시가 훑고 지나간 대지 위에는, 삭제되고 소거된 이들의 낮은 목소리가 파동으로 남는다.
나에게 시란 유년기 운동장 구석, 차갑게 녹슬어 있던 철봉의 맛과 냄새와 닮아있다. 그 아릿한 금속의 맛과 땀 냄새가 뒤섞인 눅눅하고 차가운 질감은 우리를 단숨에 어떤 실존적 도약의 지점으로 밀어 올린다.
그 지점은 바로 불량한 눈빛으로 시가 우리의 영혼에 스며들 때이다. 영혼 속에서 반짝이는 시의 눈동자는 견고했던 세계의 질서는 붕괴시키고, 은폐된 틈을 들춘다. 글을 쓴다는 것, 시를 쓴다는 것은 은폐된 틈에 감추어진 얼굴과 삭제된 목소리를 지금 여기로 호출하는 것이다. 슬픔의 기원을 질료로 복원하는 작업이다.
문장의 갈피마다 진실의 서늘함과 폭력의 통증을 욱여넣으며, 나는 이 ‘불량한’ 책을 만들었다. 출간을 앞두고도 많이 망설였다. 이 평론집은 정제되지 않은 ‘나쁜 문장’들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시를 성실히 독해하려 분투했으나, 매끄러운 논리와 인과적 문장은 끝내 내 것이 아니었다. 비평의 언어와 시적 텍스트가 서로 다른 벡터로 탈주하고 있다. 부디 그 파편의 문장들이 눈 밝은 당신에게 안착하기를 소망할 뿐이다.
시는 이론보다 앞서 존재하고, 이해보다 뒤늦게 파동으로 도착한다. 나는 ‘도착’이라는 단어가 머금은 그 번져가는 물결의 형상을 사랑한다. 시는 개인의 상처만을 다루지 않는다. 시대의 은폐된 폭력과 일상의 미세한 균열을 흡수하며, 의미를 고정하려는 모든 권위적인 손길로부터 기어이 탈주한다. 이 평론집은 바로 그 불안정한 시의 실체—혹은 그 실체가 무너지는 자리—를 서툰 시선으로 쫓으며, 틈새에 거주하는 존재들의 숨결에 귀를 기울인 기록이다.
본 평론집은 총 4부의 여정을 통해 이 이론적 사유와 시의 육체와 접하는 현장을 조망한다. 1부 「타자와 육체」에서는 역사적 참사와 개인의 상흔이 남긴 감각적 잔류물을 좇는다. 제노사이드의 현장에서 장소의 혼(Genius Loci)을 불러내고, 소외된 존재들이 상호주체성의 몸을 회복하는 과정을 추적하며 타자의 육체가 지닌 숭고함을 복원하고자 했다.
2부 「B급 문화와 비주류의 전복성」은 중심에서 밀려난 것들이 지닌 전복적 힘에 주목한다. 유희적 언어와 진동에 기반한 타자 인식이 어떻게 기존의 위계를 뒤흔드는지 이를 추적하며, 제주 4·3과 예멘 난민이 겹쳐지는 지점에서 폭력의 재생산과 윤리적 책임을 새롭게 질문한다.
3부 「아카이브적 육체와 전시되는 감정」은 물과 색채의 변용을 통해 기억을 저장하는 신체의 아카이브적 기능을 분석하며, 감정이 개인 내부에 머물지 않고 사회적·역사적 조건 속에서 어떻게 재배열되는지 고민했다.
4부 「새로운 육체의 방식」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미래적 신체의 가능성을 타진해 보았다. 식물적 상상력과 파편화된 몸이 보여주는 해체와 생성의 역학을 통해, 몸이 고정된 실체가 아닌 지속적으로 재배치되는 ‘열린 장(場)’으로 해독해 보았다.
이 책은 서투른 문장들이 만든 못난 집이다. 완성된 지도 대신, 세계를 지나간 뒤 남은 몸의 흔적, 말로 붙잡히지 않는 감각을 더듬는 작은 목소리이다. 시를 읽고 타자의 고통을 이해하는 일은 곧 공존의 다정한 세계를 건설하는 일이기도 하다.
『타자와 감각의 변주』라는 제목은 규범과 갈등을 넘는, “불량함’이다. 그것은 질서를 깨뜨리는 혼란이 아니라, 견고한 세계의 틈새를 발견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길어 올리는 유연한 힘이다.
팔순을 넘기신 사랑하는 어머니와 함께, 건강하고 즐겁게 다정함의 세계를 오래도록 거닐고 싶다.
2025년 12월 양재천에서
서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