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내는 마음은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 가 닿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 일은 조용한 투쟁이다. 개념 투쟁이고, 생각 싸움이다. 개념 투쟁과 생각 싸움은 서로 다른 존재들 사이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투쟁이자 싸움이다. 이 거리를 좁히는 개념으로 나는 자본주의체제보다 가부장체제라는 개념 사용을 선택한다. 이 모든 전쟁과 경제와 생산을 주도하는 힘에 ‘자본주의’가 아니라 ‘가부장체제’라는 이름을 붙여본다. 내가 말하는 ‘가부장체제’는 성종계급 모순과 자본주의-군사주의-제국주의가 작동하는 체제다.
기후위기를 말하고 생태위기를 말하는 자리에서 페미니즘은 계속 미끄러진다. 설 자리를 찾지 못한다. 동물권을 말하는 자리에도 페미니즘이 설 자리가 없다. 전쟁을 보도하는 미디어에도 페미니즘은 빠져있다. 경제와 거래와 해협을 통과하는 유조선과 폭격의 언어 속에는 페미니즘이 들어설 자리가 없는 듯하다. 그래서 새삼 ‘적녹보라적 생산론’ 이전에 ‘페미니즘 생산론’이란 책을 내기로 마음먹었다.
착취와 수탈을 기반으로 하는 생산이 지구행성 곳곳을 파괴한 그리고 그 파괴를 많은 사람들이 깨닫게 된 지금, 『페미니즘 생산론』을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생산중심주의를 멈추라고 이야기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나는 멈추라는 말 대신, 다른 생산을 생각하자고 한다. 여전히 차별에 기반하고 마치 보편적 가치인 것처럼 이상화하면서 여성들의 일을 ‘재생산’이라 부르지 말고, ‘상품생산’을 중심으로 하는 생산을 넘어, 여성도 자연도 동물도 식물도 모두 생산자/생산하는 존재라고 간주하는 다른 생산의 시대를 만들어 보자고 나는 이 책에서 제안한다. 생산개념과 생산을 탈환하자고 제안한다. 생산체계를 바꿔보자고 제안한다. 재생산권리나 사회(적)재생산이론으로는 여전히 여성들이 ‘제2의 성’을 벗어나기 어렵고 동물해방도 노동해방도 어렵다. 노동은 늘 임노동 밖의 여성들과 동물들과 자연과 물질을 배제한 인간/남성/자본중심적 노동에 여전히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이 생산체계를 뒤집을 수 있어야 하지만, 현재 노동은 ‘자본주의-가부장체제적’ 생산을 받치고 있기 때문이다. 생산론을 페미니즘 틀에서 다시 쓴다는 것은 기존 경제학,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마르크스주의/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과 그리고 대부분의 페미니스트들과 정면으로 대결해야 함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