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내용은 16~17세기 '소쇄원 사람들'의 역사적 활동을 밝히는 데에 초점을 두었다. 그러한 내용을 밝히는 과정에서 호남의 역사도 함께 다루어지게 되었다. 따라서 이 책은 제목과 부제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소쇄원 사람들'에 관한 것이면서, 그들을 통해서 본 호남의 역사에 관한 것이다.
친구는 정년을 눈앞에 둔 나를 여전히 ‘김교수’라 부른다. 머쓱하기도 하지만, 여러 대의 모니터 앞에 앉아서 책을 쌓아놓고 글을 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역사 연구와 교육으로 강단에서 살아온 책임감을 책상에 쪼그려 앉아 있는 것으로 이어가고자 한다.
역사란 사료로만 얻는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료 속 글귀로 과거를 구성하고 해석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전통과 현실에서 직접 얻기도 하고 감각적으로 체득할 수 있다는 점을 놓친 결과이다. 선배들이 늘 했던 말, 주변에 흔하게 있는 조형물, 땅 위에 새겨진 이름, 그리고 청소년이 꿈꾸는 미래까지 이 모든 것이 역사의 일부라는 점에 주목하여 이 책을 구상했다.
이 책은 우리 역사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350년 ‘왜구 시대’를 고발한 6부작 왜란 이야기 가운데 제1권이다. 1223년부터 1555년까지를 다룬 것으로, 이를 통해 도발과 응징, 폐쇄와 재개, 단절과 복원이 반복되는 한일 관계의 특징을 발견했다. 그 가운데 을묘왜란은 조선 건국 이래 최대 충격이어서, 그 흔적이 실낱처럼 지금까지 남아 있다. 갈등은 풍선에 묶어 하늘 높이 날려버리고, 평화가 온 누리에 널리 퍼지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2025년 8월
전쟁은 민족사의 전개에 직간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필자는 그 동안 14세기 고려 말기의 왜구 침략에서부터 17세기 조선 중기의 병자호란에 이르기까지, 전쟁이 전라도 지역사에 남긴 흔적을 찾아보았다. 그 결과 이미 학술지에 게재한 논문이 있는가 하면, 학술대회나 강연에서 발표만 한 글이 있고, 집필하다 중단된 원고도 있었다. 그것들을 수정·보완하여 『전쟁과 전라도 지역사』라는 이름으로 출간하려고 한다.
전라도는 한반도의 서남부에 위치하여 중국과는 떨어져 있고 일본과는 다소 비켜나 있지만, 전쟁의 영향을 적지 않게 받아왔다. 그 결과 전쟁이 남긴 흔적이 인물·유적·저술·기념일·지명 등의 형태로 오늘날까지 전라도 지역사회 곳곳에 많이 남아 있다. 이런 사정으로 인해 외부의 요청에 의해 관련 글을 쓸 기회가 잦았다. 그리고 청탁 글을 쓸 때마다 새로운 주제가 떠올라 그것도 틈틈이 써놓았다. 그러한 글들을 모두 모아 일정한 틀을 갖춰 이렇게 출간하게 된 것이다.
머쓱한 면도 없지 않지만, 감히 용기를 내어 출간의 결단을 내렸다. 그 동안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고 투고와 강연을 주선해주신 지역 어르신들과 선후배님에게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길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가정에 등한한 필자를 늘 감싸준 아버님, 어머님, 장모님, 그리고 아내와 아들·딸의 격려도 결단에 큰 힘이 되었다. 지금은 저 세상에 계시는 장인어르신도 필자에게는 항상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원고를 읽고 꼼꼼히 지적해준 광주전남연구원 김만호 박사, 조선대 대학원 배은유 학생에게도, 그리고 생애 첫 저서 때부터 지금까지 늘 신세만 지고 있는 도서출판 선인의 윤관백 사장님과 편집진 여러분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빠뜨릴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