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이 흩어져버리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시인의 눈은 솔잎 끝의 물방울이 된다. 고도의 집중력과 파인더는 닮아 있다. 피사체는 아무런 예고 없이 몸을 돌려 누워버린다. 바다는 그렇게 모로 누워 지느러미나 수평선이 세계를 방관하며 흘러가고 있는 것을 다시 방기하고 있다. 때문에 몸을 돌리기 직전의 바다를 찍을 수 있는 집중력과 기다릴 수 있는 애정이 요구된다.
일기를 쓰듯 북한산에 올랐다. 늦여름의 매미를 보는지 잠자리 날개를 보고 있는지 알 수 없었던 사팔뜨기의 그 저녁부터 물소리가 다시 살아나 흐르던 새벽까지 매일 산에 올랐다. 비가 오면 우산 아래에서 눈이 쏟아지면 눈보라가 켜는 해금 속으로 미끄러지며 설움이 북받치면 그 설움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물소리가 이끄는 대로 산에 올랐다.
상선약수(上善若水), 노자를 공부하지 않았으나 물을 가득 싣고 흘러가는 말을 듣고 싶었다. 물빛, 물소리, 나른한 물길을 잠깐 재워 주는 화강석 빛깔의 물의 침대, 진폭이 넓은 그늘의 시간. 빽빽한 아침의 숲을 만났지만 뜻은 알 수 없었고 파인더가 나를 두고 혼자 물과 출렁거렸다.
사진집을 정리하면서 지나온 시간들을 읽었다. 내가 그늘로 살았고 밤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 그늘 속에 남아 있기를 원해서 그대로 내버려둔다.
제1부는 꼭대기에서 울린 말이 물에 튕겨 흐르는 것을 받아 적은 기록이다. 제2부는 세상을 떠돌 때 내가 피사체와 자리를 바꾸어도 무난한 사진으로 채웠다. 사진과 시는 쓸쓸함과 왜, 라는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이 담겨 있는 소쿠리다. 세상 풍경 속에서 가장 귀한 것은 살아있는 모습이고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아프고 모자라고 짧은 영육 또한 오늘만큼 거대하고 무겁다.
2019년 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