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길을 걷다가
비와 바람의 얼굴을 만나는 때에는
마음이 참 순해지고 가난해졌습니다.
혼잣말을 하는 이들의 말이 또렷이 들려왔습니다.
나를 닮은 그들의 민낯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슬픔이, 고통이, 상처가, 환희가 환했습니다.
사랑함으로 자신의 의견이 없어진 사람의 가슴이 되어
그 떨림을 감응하며 셔터를 누르고
그 말들을 마음에 받아 적었습니다.
우리가 되어 함께한
끝끝내 마음자락을 붙잡고 놓지 않는
지금, 여기의 시간입니다.
2018년
가슴에
미해결과제가 쌓여갔습니다.
비좁은 책장
삐뚤빼뚤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책더미처럼.
가까스로 연명하는
사랑하는 이를 곁에 두었던 나와
영원 속에 떠나보내고 홀로 남은 나에게
소중한 것이 하나 없었고
소중하지 않은 것이 하나 없었습니다.
모순과 균열이
서로를 예속하고 결박하는 응고점
그 눅눅한 곳으로 한없이 숨고 있는
이 천둥벌거숭이, 부끄러운 나를
빛 앞에 안간힘으로 내놓습니다.
어제와 내일을 애면글면하다 놓쳐버린
오늘, 서툰 과제 하나를
천년을 하루처럼
하루를 천년처럼 흐르는 천상의 여울에
고이 놓아 보냅니다.
2020년 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