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만나는 시간이 참 맹랑하다.
마음을 다잡고 만나자 하면 십리 밖 줄행랑을 치더니
설거지할 때나, 목욕할 때
일에 치여 눈코 뜰 새 없는 틈으로 불쑥불쑥
예고도 없이 나타나 마음을 어지럽힌다.
손이라도 내밀라치면 주위를 뱅뱅 돌며
머리를 산란하게 하니, 제발 부탁이다.
완벽함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다만,
스친 여운만이라도 남을 수 있는 시간에 다시 찾아주길.
부끄러울 따름이라며 슬그머니 비켜가기엔
죄가 너무 크다.
온 누리 출렁이는 시월의 끝자락
땀에 전 옷 벗어 걸고 왔던 길 되짚어봅니다
때로는 취하지 않고도 비틀거리며 버틴 시간들을
물들어가는 단풍 아래 쉼표로 걸어두고
가고 싶었으나 가지 못했던
나만의 길을 찾아 다시, 새벽길을 나서렵니다.
가다 보면 내 걸어왔던 흔적들이
울긋불긋 되살아와 불 밝힐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