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서 예기치 않게 맞닥뜨리는 수많은 어긋남을 생각한다. 그로 인해 다시 일어설 수 없을 참혹한 스러짐도 있었을 테다. 그건 지독한 결핍이 되고 이루어질 수 없을 간절한 향망으로만 떠돌지 모른다.
이번 책에는 그렇듯 쓰러져버린 이들을 소환했다. 긴밀한 관계에서의 죽음 때문에, 혈연이 아니기에 받아야 하는 제도와 사회적 분리의 내침 때문에 또는 풀어내지 못한 갈등으로 영원히 교통할 수 없기 때문에, 생물학적 장애로 다르다고 금기시되어야 하기 때문에.
그런 사정이 타인에게는 제 손에 박힌 가시보다 못할 남의 일이라 일별되겠지만, 당사자에게는 주저앉은 폐허일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쓰며 아린 마음을 다독여야 했다. 감정을 누르려고 키보드에서 움직이던 손을 놓고 자주 창밖의 먼 곳을 바라보았다. 시선을 돌리면 모니터의 커서는 계속 써나가라고 깜박이며 재촉했다.
이야기를 마치고 나서도 그들을 향한 안쓰러움의 강도는 덜하지 않다. 그래도 참담하고 쓸쓸한 궤적들을 풀어내 줄 수 있어 다행한 일이다. 이렇게나마 작은 위안이 되길 바란다.
여기, 그들의 어긋난 삶을 아프게 부려놓는다.
마무리 된 이 책 속의 많은 바람들이 제대로 형상화됐는지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굳이 규정하고 싶진 않다. 그저 다양한 개체들이 품었던 각기의 바람들을 밖으로 끄집어내려고 했다는 사실만 오롯할 뿐이다.
다시 또 한 해의 마지막 달에 와있다. 봄을 시작으로 여린 순을 피워내고 실한 이파리로 키웠던 나무들은 이제 그 잎을 떨구고 가장 본질인 몸통과 가지만 남겼다. 그 모습은 무채색의 옷을 걸치고 고요히 침묵하며 무애無碍를 향하는 수도자 같다. 오후가 이울어 갈 무렵이면 하루의 어느 때보다 크고 붉은 해가 서편에 자리한다. 잠시일 테지만 그 해가 퍼트리는 햇발의 찬란한 광휘는, 수식하던 모든 것들을 떨쳐내고 본질만 남은 무채색의 나무들 사이 사이에 강렬한 배경으로 채색된다.
그 풍경이 담긴 초겨울의 차가운 대기는 바람결 없이 차분하다. 그 속으로 세상 처처의 만물들이 내뿜는 가볍고 무거운 순간순간들이 쌓이거나 스러짐을 반복한다.
-작가의 말 중에서
이 여름, 우리가 속한 자연에 기대어 소설 문학으로 형성한 누군가의 ‘한 세계’를 세상에 내어놓았다. 비단 소설 속에서만이 아닌, 현실의 어딘가에도 그런 세계는 충분히 존재할 것이다. 소설은 결국 인간사의 실사 양태를 반영하여 현상화하는 것이므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편하고 쾌적하게 유순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많다. 무수한 유해有害가 난무하며 안온을 보장하지 못한다. 이 계절을 지나면 자연계의 섭리로 청명하고 쾌청한 가을이 다가든다. 그처럼 부당한 유해의 폭력에 부려진 거칠고 황폐한 시간 들에 부디 순한 정결의 복원이 다가들기를 바란다.
안개가 짙다. 사위는 거의 분간되지 않아 불안정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안개는 서서히 걷혔다. 일상에서의 활동 반경 가시거리는 확보되었으나 쨍하게 청명하지는 않았다. 미진함처럼 아주 미세한 연기가 퍼진 듯했다. 둘러싼 산자락 멀리 눈길을 건네면 여전히 흐릿한 윤곽이 아스라했다.
자동차를 타고 그런 날의 어느 공간을 달렸다. 길가 양쪽으로 서 있는 나무들 우듬지가 맞대다시피 울창했다. 그곳으로 햇살 무리가 집중 조명처럼 가닥가닥 비쳐 들었다. 나무들이 벗어내는 가을 색 물든 많은 이파리가 그 속을 춤추듯 날았다. 사분사분. 팔랑팔랑. 일시에 후르르 가 아닌 천천히, 꿈결같이 유영했다. 그 정경이 가슴 아리도록 쓸쓸하면서 아름다웠다.
<푸른 환영>의 도영과 여자를 생각했다. 글을 쓰는 동안 나는 글 속의 그들과 하나가 되었다. ‘도영’이었으며 ‘여자’였다. 각기 다른 그들의 세계를 오가며 함께 했던 날들은 아슬한 생의 조각 조각으로, 흐릿한 안개 속 어딘가에 켜졌을 희미한 불빛을 찾는 일이었다. 그 속에서 같은 곳을 순연하게 갈망하며 공역의 접점으로 향하기를 바랐다.
이제 내 몫을 마친 나는 그들에게서 분리된다. 그들이 서로에게 어떤 의미와 무게로 남을지는 그들 몫이다. 만약… 어느 때 우연히 그들을 다시 만난다면 나는 심상해질까. 아마 잘 지내냐는 담백한 인사말 한마디를 툭 건네고 스치듯 그저 지나치게 될지도.
지금, 현실의 나도 꿈결처럼 떨어져 날리는 나뭇잎들 속을 그저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