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핸드폰을 사용한 뒤로 통화하기가 매우 쉬워졌다. 오랜 세월 습관처럼 이삼일에 한 번씩 전화를 드렸다. 간혹 통화가 길게 늘어질 때도 있었지만 십중팔구는 으레 묻는 안부전화였기 때문에 1분이 조금 안 되거나 조금 넘길 정도였다.
“잘 계셔요?”
“오냐, 잘 있다, 내 새끼. 오늘도 보람의 하루, 즐거움의 하루, 감사의 하루가 되시소”
통화 내용은 천편일률적이었다. 늘 똑같은 물음과 똑같은 대답이 반복되어 단순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그래도 그때가 좋았음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홀로 된 어머니가 86세가 되던 해 큰형이 어머니를 모시기 시작했다. 큰형은 자식 도리를 다하려했다. 헌데, 어머니는 생각이 좀 다르신 듯 했다.
자식 집에 얹혀 있기에는 때가 좀 이르다고 생각해서인지 아직은 당신이 주도할 수 있는 자신의 세계로 더 돌아가고 싶어 하셨다. 그 세계의 중심엔 시골집이 있었다.
시골집은 특별날 것 하나 없지만 그렇다고 단조롭지만은 않았다. 인근 교회를 오가며 목사님 설교 말씀을 듣고 형제자매들을 만날 땐 이월 초하루 가마솥에서 톡톡 튀어 오르는 콩처럼 활력소를 느끼셨던 것 같다. 눈에 익고 발에 익은 마을에서 오랫동안 지내온 지인들과의 소박한 인간관계를 일상생활처럼 그대로 지속하기를 더 원하셨던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골 도우미 아줌마와의 끈끈한 관계를 잊지 못해 큰형 집에 있으면서도 몹시도 그리워 하셨다. 어머니는 결국 시골집으로 돌아가시고 말았다.
하지만 바라시던 대로 시골집으로 돌아온 어머니는 전만 같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외숙모님께서 조심스레 돌리고 돌려서 언질을 주셨다. 어머니의 언행이 예전 같지 않으시고, 도우미 아줌마가 아무리 잘 챙겨주신다 하나 자식만 하겠느냐는 말씀이셨다.
결국 어머님의 개인적 바람도 고려해서 시골집에서 가장 가까운 작은형 댁에 모시기로 했다. 작은형 댁으로 거처를 옮긴 어머니는 얼마동안 그런대로 편히 생활하고 계시나 싶었다. 그러시더니만 이내 시골집에 대한 관리 욕구를 불쑥불쑥 드러내시곤 했다. 어머니 마음은 시골집 주인이라야 성에 차셨던 모양이다.
시골 교회와의 단절도 중요한 문제였고, 몇 그루 안 되지만 당신의 손길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과수원이 어머니의 마음을 시시때때로 시골집으로 이끌었던 모양이다.
당신의 뜻을 오롯이 담을 수 없는 자식 집에서의 생활이 사소한 갈등을 일으키고, 그 갈등이 어머님의 마음속에 조금씩 쌓여갈수록 시골집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더 간절해져만 갔다.
하지만 어머니의 마음이 그렇다고 하더라도 혼자 시골집에 계시도록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정말로 어느 한 쪽을 딱 결정하지 못하는 어머니와 우리 형제들에게 난감함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커다란 벽처럼 조여 왔다.
그러던 중 시골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는 곳에 있는 요양원을 알게 되었다. 얼마 뒤 그 곳으로 어머니를 모셨다. 이 과정에서 우여곡절 또한 많았는데 휴대폰으로 자주 연락하는 습관 때문이었는지 나는 언제부터인가 형제들에게 어머님 소식통이 되어 있었다. 형, 누나들도 환갑이 넘거나 일흔을 바라보는 분들이라 아무래도 기동력이 떨어지시기 때문에, 대신 챙겨드리는 마음으로 막내인 내가 연락병 노릇을 자청한 셈이다.
처음엔 한 분 한 분께 따로 소식을 전하다가 어머니의 상황이 심상치 않을 때가 빈번해지다보니 좀 더 편리하게 단체 문자를 통해서 소식을 전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형수님과 누나들이 쌓인 문자들을 보고는 한 권의 책으로 엮어볼 것을 권유하셨다. 처음엔 황당하게 들렸지만 그것을 계기로 지난날 우리가 주고받았던 문자들을 읽어보기 시작했다.
내용은 특별할 것 없이 빈약했지만 지나간 일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래도 책을 낸다는 것을 영 쑥스러워 하니, 가족 모두가 자신을 가지라며 용기를 주었다.
하지만 모세처럼 120세까지 꼭 채우겠다고 다짐하시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지금 글로 엮어버리면, 사후 회고문처럼 느껴져 나중에 영 마뜩치 않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 때문에 책을 낸다는 것을 차일피일 미루는 사이 서서히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서로 공유했던 많은 날들의 이야기를 어머니에게 읽을거리로 만들어드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점점 커져갔다.
‘그래 시작해보자!
우리들의 이야긴데 글 솜씨가 좀 빠지면 어떠랴.
짠하고, 안타깝고, 애타고, 때로는 뭉클했던 우리들의 지난날을 책으로 엮어 어머님께 드리자. 어머님께서는 자식의 부족함도 채워 가시며, 자식들과의 이야기를 즐거운 마음으로 읽으시리라’
이렇게 해서 책 전반부는 우리 일곱 형제자매들과 며느리 셋 등 열 명이 공유한 메시지들을, 후반부는 우리 아이들의 앨범 속에 사진과 함께 끼워 놓았던 수십 개의 쪽지와 편지 중에서 몇 개를 골라서 엮어 보았다.
표현 내용은 형, 누나들께 수시로 전했던 문자들을 그대로 옮기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필요한 경우에만 약간 수정했다. 성경을 읽으시는 것과 함께, 당신 자식들의 이야기를 틈틈이 즐겨 읽으실 어머님의 모습을 상상하며 쑥스러움을 딛고 용기를 내어 본다.
또, 우리와 비슷한 상황으로 고민하고 애태우시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글을 써 보았으니, 부족한 글이나마 어머님처럼 너그러이 이해하며 읽어 주시기를 바란다.
이 책을 쓰며 생각나는 사람들이 많다. 평생 우리 형제자매들에게 큰 나무가 되어준 어머니와 형제자매, 형수들에게 건강과 행복을 빌며 옆에서 뒷바라지 해준 아내와 딸 명진이, 아들 용준이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아울러 우리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여주고 정성스레 책으로 만들어준 ㈜컬처플러스 강민철 대표와 고혜란 이사, 그리고 이유경 실장, 음소형 주임께 심심한 감사의 말을 전한다.
2017년 초여름 김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