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백 년 전 연암 박지원이 쓴 글을 읽으며 나는 때때로 그가 살았던 시대에 머물곤 했다. 그렇게 머물다 나도 모르게 연암의 세계에 빠지고 말았다. 처음엔 좋아하다 나중엔 사랑하게 되었다. 연암과 내가 글로서 하나가 되고 싶었다. 학교에서 배운 것 말고는 연암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내가 오늘 같은 글을 쓰기 위해선 사랑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았다. 한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 상대의 마음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랑하면 세상은 달리 보인다. 사람들 속에서 늘 부대끼며 살던 내가 연암의 글을 통해 만들어진 창으로 지금 사는 세상을 바라보게 된 것이다. 전과는 전혀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었다. 연암의 집으로 들어가기 전 현관 앞에서 먼저 글 세 편을 쓴다. 짧은 서문에 덧붙이는 작가의 말로 대신하고 싶다. 셋으로 나눈 것은 중국을 연행할 때와는 달리 조선에서 쓴 글을 읽을 때는 전과 또 다른 모습이었다. 다소 지루할지 모르나 내가 왜 연암을 사랑하게 되었는지를 알게 해주고 싶다. 그러면 읽는 사람도 나처럼 연암을 사랑하게 될지도 모른다. 나의 간절한 바람이다.
살면서 어쩌다 한 번씩 울고 싶을 때가 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실컷 울고 나면 속이 후련해진다. 시원한 울음에는 일종의 배설과도 같은 쾌감이 함께 하듯, 속에 있던 많은 이야기를 쏟아낸 글이 책으로 나오는 일도 이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동안 내 안에 정체되어있던 것들이 바깥으로 나오는 순간은 오랜 시간 막혀있던 터널이 뚫려 시원스레 빠져나가는 자동차 운전자의 마음과 같을 것이다.
똑같은 처지가 될 수는 없겠지만, 산모가 아이 낳고 난 기분이 이랬을까. 아마 전부는 아니더라도 한 권의 책이 나온다는 것은 산고(産苦)와 다름없을 것이다. 산모는 오랜 고통 뒤에는 꽃 같은 아기를 품에 안는다. 책을 출간하는 것도 그런 시간과 같지 않을까 싶다. 나 역시 임산부가 된 심정으로 책을 만들고, 책이 세상 밖으로 나오는 기쁨을 느끼는 것은 산모의 기분과 매한가지다. 이제, 산모가 아기를 키우듯 책이 나온 다음에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있던 것이 빠져나간 빈자리를 어떻게 채워나갈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이다. 첫아이를 낳고 둘째를 준비하는 산모의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나는 물체가 아닌 사람의 생각에도 관성의 법칙이 있다고 믿는다. 생각도 하면 할수록 생각에 가속이 붙는다는 걸 요즘 들어 깨닫는다. 내 안에 쌓인 것을 쏟아내고 난 다음 해야 할 일은, 관성의 힘으로 빠져나간 빈 곳에 새로운 것이 들어올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드는 일이다. 그것도 아주 조용히 소리 내지 않고 준비해야 한다. 말할 필요가 없을 때 입을 열지 않는 사람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의미를 알고 있는 사람이다. 나뭇잎을 다 내려놓고 봄을 준비하는 겨울나무처럼.
이 책은 내가 보고 듣고 느낀 사람들의 정신세계와 갖가지 사람풍경을 보며 그때그때 쓴 글을 모은 것이다. 나 역시 이 같은 이야기를 글로 쓸 만큼 남에게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안다. 다만 글쓰기를 통해 다른 사람과 함께 내가 느끼고 체험한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을 뿐이다. 하고 보니 사람과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참 많이도 썼다. 앞서 말 한대로 살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며 인간의 희로애락과 팔고(八苦)에 관한 감정표현의 모습은 하늘에 별 만큼이었다. 가까운 곳에나 아니면 바로 곁에서 사람들의 온갖 모습을 살펴보는 과정에서 때로는 어! 그게 아닌데 하는 일도 있었고, 아! 하며 감동한 일도 있었다. 나 역시 그들의 처지나 상황에 따라 내가 가진 모든 감정이 글속에 그대로 드러나고 말았다.
우리 누구나 나 자신이 먼저 나를 믿어야 남도 나를 믿어주는 법이다. 자기를 믿는 자신감이야말로 나 자신을 내가 원하는 곳으로 끌고 가는 힘의 원천이다. 그리고 나는 글 쓰는 동안 이 말을 수시로 떠올렸다. “우리는 꾸준한 마음, 무엇보다도 스스로 믿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재능은 어떤 일을 완성하라고 하늘에서 내려준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우리에게 맡겨진 일을 해내야 한다.”라는 퀴리 부인의 말이다.
책의 모든 글이 제목처럼 사람과 사람에 관한 일이라 정말 조심스러웠다. 자연이나 계절의 변화 주변 사물에 관한 사유가 아니고 사람에 관해 이야기한다는 게 남의 눈에는 어떻게 비칠지 알 수는 없다. 행여 내가 쓴 글이 작가의 사명감이든 내 호기심이든, 욕심이든, 아니면 무엇이 되었든, 넘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도 정말 걱정스러운 것은 그를 통해서 하는 말이 한낱 글 쓰는 재주만 믿고 주인 없는 집 마당에 강아지처럼 혼자 나부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만에 하나라도 내가 쓴 글이 나의 허세나 치기가 아닌지, 몇 번이라도 되돌아보는 일을 이 땅에 사는 동안에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201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