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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경

최근작
2026년 5월 <>

달루에 걸린 직지

좁은 마당에 핀 온갖 꽃들이랑 살다 보면 일 년이 후딱 지나간다. 매화, 목련, 목단, 라일락, 장미, 백합, 능소화, 수국, 수련, 목백일홍, 땅백일홍, 상사화, 샤프란, 칸나, 국화 그 외에 이름 모를 꽃들까지도 모두 가족이다. 제집인 양, 마당을 어슬렁대는 길고양이도 가족이 된 지 오래다. 빛바랜 생각 주머니에서 기억을 꺼내 가위로 오리고, 바늘로 꿰매고, 휴지통에 미련 없이 버리기를 수없이 반복하다가, 버려진 글도 긁어모아 덧대고 보태어 누더기를 겨우 만들었다. 그것에 사랑과 증오가 함께한다는 뇌 한 조각을 떼어와 능청스럽게 글 속에 심었다. 나는 잡초처럼 살아왔다. 그래서 밟혀도 아프지 않다고 말했다. 남이 뭐라든 말든 괘념치 말라며 수없이 주문을 걸었다. 그런데 이번에 누더기를 출간하고는 조금은 아플 것 같다. 그래서, 퍽 다행한 일이다. 2023년 여름

나는 오래도록 ‘사라진 것’이 아니라, 사라졌다고 믿고 있는 것들에 대해 써왔다. 완전히 없어졌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그것은 다른 형태로 남아 우리를 붙잡고 있다는 사실을 믿어왔다. <숨>은 그 믿음에서 시작된 이야기다. 이 소설의 중심에는 한 자루의 검, ‘새우검’이 있다. 임진왜란이라는 거대한 역사 속에서 한 번 끊어진 인연이 세대를 건너 다시 이어지고, 또 다른 형태로 반복되는지, 나는 그 흐름을 따라다녔다. 그리고, 이 소설에는 세 개의 시간이 겹쳐져 있다. 검을 되찾아온 할아버지의 시간, 그것을 지키려 했던 아버지의 시간, 그리고 그것의 의미를 의심하는 아들의 시간들이다. 나는 그 연결의 방식에 오랫동안 주목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의무라는 이름으로, 혹은 설명할 수 없는 끌림으로. 리코와 메이 그리고 린으로 이어지는 여성들의 존재 또한 그러한 연결의 또 다른 얼굴이다. <숨>을 쓰는 동안, ‘소유’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 검은 누구의 것인가. 가문에 속한 것인가, 역사의 것인가, 아니면 그것을 붙잡고 살아가는 개인의 것인가. 나는 이 소설을 통해 말하고 싶었다. 역사는 과거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현재의 몸속으로 스며들어,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계속해서 작동한다고. 그리고 이 소설의 마지막에 ‘숨’이라는 단어를 남겼다. 그것은 끝이 아니라, 계속되기 위한 가장 최소한의 움직임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이 이야기가 누군가의 마음에 닿는다면, 그것은 아마 거창한 해답이 아니라 하나의 감각일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2026년 5월 작약꽃이 ‘숨’처럼 터진 그 밤에….

탈의 꽃

풍경소리가 요란한 밤입니다. 대웅전 뜰 앞에 서서 밤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수십 수억 개의 영혼을 품고 있다는 별이 총총히 떠 있습니다. 소설이란 가시가 목구멍에 걸려 삼키지도, 뱉지도 못한 처지에 놓여 있어 숨이 끊어질 듯 마음이 병들어 갔습니다. 처음 탈 이야기를 쓰려고 자료를 정리하기 시작했던 게 언제였던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만큼 까마득합니다. 느려도 너무 느리게 왔습니다. 누군가 이를 앙 물고 서 있으란 벌을 내린다면 누구 못지않게 참아낼 자신이 있습니다. 참 미련스럽기까지 합니다. 창자가 끊어질 듯이 기도한다면 모든 게 이루어진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간절하게…… 정말 간절하게…… 이 책을 정리했습니다. 제가 이 글을 쓰기 시작했던 그때의 하늘과 지금의 하늘은 사뭇 다릅니다. 물론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도 분명 다릅니다. 다르기 때문에 희망이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안동하회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국보 121호로 소장되어 있습니다. 현재는 양반, 선비, 중, 할미, 초랭이, 백정, 이매, 각시, 부네, 주지 가면 2개가 있습니다. 이외에도 총각탈, 별채, 떡달이탈이 있었는데, 일본인 미나미센키치라는 사람이 가져갔다는 풍문이 있습니다. 잃어버린 세 개의 탈을 복원하기 위해 몇몇 전문가들이 모여 궁리를 짜보았는데, 끝내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하회탈은 마을의 안녕을 위해 허도령이 제작한 탈입니다. 오직 신탁을 받은 사람만이 가능했고, 그 비법 또한 알려진 바 없습니다. 어쩌면 신탁을 받은 사람만이 가능한 일이었을 겁니다. 그랬기에 더욱 신비롭고 매력적인 탈입니다. 이제야 겨우 탈에서 빠져나온 기분이 듭니다. 어쩌면 아직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영혼을 담고 있다는 하늘의 별처럼 저는 책속에 영혼을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도움을 주신 모든 분께 감사의 큰절 올립니다. 2016. 9 이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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