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나와 달님은 남미 배낭여행을 계획했다.
초짜인 주제에 하필 어려운 여행지를 골랐다. 떠나기로 결정하고도 나는 계속 질문했다.
떠날 수 있을까? 정말?
여행지에서는 모든 것이 서툴렀다.
지도 보는 것, 목적지를 결정하는 것, 숙소 고르는 것, 심지어 서로의 감정을 살피거나 유대감을 유지하는 것에도
서툴렀다. 고되고, 지치고, 힘들고 그래서 싸우고. 그러기를 매일 반복했다. 아슬아슬했다.
하지만 뇌는 간사하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여행의 기억은 ‘추억’이라는 필터를 통해 아름답게 편집되었다.
여행하면서 느꼈던 불확실한 설렘과 분명한 불안감을 토대로 《밤버스》를 만들었다.
그리고 작품을 마치고 나서야 여행이 끝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나는 새로운 여행을 시작하려고 한다.
숲과 공
무언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것만 같아, 정신없이 찾아 헤매던 때가 있었다.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고, 마음은 늘 산만했다.
그때의 나는 야생동물처럼 불안하고 긴장된 눈빛으로 늘 두리번거리며 살았다.
내면의 숲 어딘가에서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 하나가 이리저리 튕겨 다녔고,
그 공을 따라 낯선 동물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공은 작고 사랑스럽다가도, 어떤 날엔 너무 거대해졌다.
나를 사로잡았던 수많은 감정과 욕망이 공의 형상을 바꾸어 놓았다.
동물들은 공을 툭 건드리고, 장난을 치다가 흘려보내고
무심히 밀어내거나, 질겅질겅 씹어 입안에 숨기기도 했다.
공을 따라 내 안의 수많은 동물들과 마주했고
그럴수록 내 마음은 점점 더 소란스러워졌다.
나는 문득, 그토록 찾아 헤매던 것이 무엇이었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애초에 공을 잃어버린 적이 없었다는 것을. 내가 그토록 찾고 있었던 건
다름 아닌, 내 안의 ‘나’였다는 것을 말이다.
‘나’를 만나면 숲은 고요해진다.
내 안의 불안과 결핍은 여전하지만, 더 이상 초록색 공을 찾아 헤매지 않는다.
초록색 공은 곧 나 자신이며, 늘 내 안에서 조용히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당신은, 초록색 공을 본 적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