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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오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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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9월 <노자적 인간>

노자적 인간

노자는 누구인가? 공자가 제자들을 데리고 주나라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노자의 이름을 익히 들어 알고 있던 공자는 노자를 찾아가 예禮에 대해 물었다. 공자의 질문을 들은 노자는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대가 말하는 그 성인들의 말은 낡고 시들었소. 군자가 때를 만나지 못하면 바람에 굴러다니는 쑥처럼 떠돌 뿐인 것을. 그대는 어찌하여 남을 이기려는 교만과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오?” 숙소로 돌아온 공자는 긴 침묵을 이어가다 이윽고 입을 열었다. 제자들이 마른 침을 삼키며 공자의 입에 시선을 모았다. “나는, 새가 하늘을 잘 날고 물고기가 물에서 잘 헤엄치며 짐승이 땅에서 잘 달린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용이 어떻게 바람과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오르는지는 알지 못한다. 노자는 마치 용과 같았다.” 바람 한 점이 휙 지나가자 검은 대지 위에 잠들어 있던 흙먼지들이 깨어나 허공에서 춤을 추었다. 허름한 행색의 노인이 눈을 감고 먼지가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맑아진 시야 너머의 밤하늘을 별들이 꽉 채우고 있었다. 잘 먹지 못해 초췌한 얼굴과 달리 노인의 눈은 맑고 깊었다. 별빛이 떼로 날아와 그의 눈에 박히고 있었다. 노인의 이름은 이이李耳. 자가 담이어서 노담老聃이라고도 불렸던 노자는 오랫동안 주나라 왕실 도서관 사서로 일하던 공무원이었다. 어느 날, 노자는 더 이상 속세에 머무를 이유와 의지를 상실했다. 세상은 어지러웠고 나라는 날로 쇠락했으며 도덕은 무너지고 있었다. 도성을 떠나 서쪽으로 향했던 노자는 국경의 요새 함곡관에 당도한 것이었다. 평소 노자를 흠모하고 있었던 문지기 윤희는 노인의 정체를 단박에 알아보았다. 노자가 세상 밖으로 떠나고 있음을 알아챈 그는 깊이 허리 숙여 간청했다. “부디 선생님의 가르침을 글로 지어 주십시오.” 노자는 생각에 잠겼다. 세상을 버리는 마당에 부질없는 글자들을 남기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그러다 문득 노자는 봇짐을 풀어 붓을 꺼내 들었다. 윤희가 함박 미소를 지으며 벼루에 먹을 갈기 시작했다. ‘이 사람처럼 나의 뜻을 알아주는 이들을 통해 이 글이 전해진다면 백성들의 삶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겠지. 인간은 조금이나마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겠지.’ 마음을 굳힌 노자는 일필휘지로 글을 써 내려갔다. 『도덕경』은 이렇게 탄생했다. 이후 그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마천의 『사기』, 「노자한비열전」에 수록된 내용을 재구성하여 노자가 어떤 인물인지 간략히 소개했다. 이 책은 다른 『도덕경』 해설서와 무엇이 다른가? 『도덕경』은 5천여 글자로 이루어진 운문 형식의 짧은 글이다. 전체 81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37장까지를 도경, 나머지를 덕경이라 부른다. 도경은 도에 대한 형이상학적 탐구를 중심으로 무위의 원리를 강조한다. 덕경에서는 도에 순응하는 삶의 자세와 덕의 실천 방법을 역설하며 현실 정치에 대한 비판적 조언으로 나아간다. 노자 사유의 정수를 담고 있는 이 압축적인 책은 내용의 모호함과 난해함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 동안 연구되고 사랑 받아 왔다. 그것은 『도덕경』이 다른 책들과 변별되는 고유한 철학적 성취를 달성했고, 시대를 초월하여 독자들의 마음과 공명하는 특별한 사상적 깊이에 도달했다는 증거다. 왕필본, 하상공본, 백서본, 죽간본 등의 주요 판본이 존재한다. 이 책은 통행본(일반에게 널리 통하는 책)의 텍스트를 토대로 쓰였다. 전문 연구자들과 학자들이 쓴 다양한 해설서들을 읽었다. 나는 나의 『도덕경』 독해 과정에서 돋아난 의문들과 던진 질문들을 토대로 노자의 사유가 독자들에게 보다 명쾌하게 전달되기를 희망하며 이 책을 썼다. 『도덕경』이라는 고전 속에 녹아 있는 탁월한 사유가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는 미명 하에 겉만 핥고 지나가는 가벼운 해설로 소화되어서는 안 되며, 읽어도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답답한 문장들에 갇혀서도 안 된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 생각은 명리학적 깨달음을 얻은 후의 『도덕경』 독서를 통해 강화되었다. 읽고 사유하면 사유할수록 나는 노자의 곁으로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고, 기대하지 않았으나 나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데까지 이를 수 있었다. 나는 알았다. 내가 노자적 인간이었음을. 나는 그 사실이 뿌듯했고, 노자는 꿈속에서 내게 미소 지었다. 이 책은 도경과 덕경으로 양분된 『도덕경』의 틀에 얽매이는 대신 그것 전체를 대상으로 삼아 관련도 높은 내용들끼리 묶어 주제들을 도출했다. 그렇게 정리된 주제들은 다음과 같다. ‘도와 진리’, ‘무위와 인위’, ‘욕망과 만족’, ‘지식과 지혜’, ‘경쟁과 조화’, ‘덕과 리더십’, ‘정치와 행정’. 이 일곱 개의 주제에 따라 나뉘고 모아진 『도덕경』의 원문과 나의 해설은 노자가 자신의 사상적 자식을 통해 후대의 인간들에게 바라는 바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가리킨다. 그것은 ‘노자적 인간이 되라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것이 일상을 가장 행복하게, 인생을 가장 보람 있게 채우는 방법임을 노자는 우리에게 알려 주고 싶었던 것이다. 현실을 똑바로 응시하기 위해서는 현실 너머에서 작동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섭리를 봐야 한다. 그것이 도이고 진리이다. 그것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면 저절로 겸손하게 된다. 억지로 일을 꾀하는 대신 순리대로 살아가게 된다. 무위의 태도를 유지할 수 있다. 그것이 일을 가장 바르고 빠르게 이루어 주는 방식임을 알게 되기에 그렇다. 부질없는 욕망에 흔들리지 않고 나의 숙명과 처지를 긍정하며 지식을 연마하고 그것의 지혜로의 승화를 신뢰하게 된다. 경쟁하지 않는 삶의 양식의 아름다움에 기뻐하며, 사람과 사람을 넘어선 생명들과의 조화로움을 추구하게 된다. 내 안에서 자란 작지만 너그러운 지혜의 홀씨가 다른 사람들에게 내려앉아 더불어 사는 세상의 리더라는 알록달록한 꽃들로 피어나기를 바라게 된다. 그 꽃들 중에서 유달리 상처 입어 굽은 등을 가진 낮은 꽃이 고맙게도 나라의 리더가 되어 참으로 살만한 사회를 만들어 주기를 희망하게 된다. 책을 쓰는 나의 마음이 이러했다. 나는 독자들의 마음도 나의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을 안다. 이 책은 노자적 인간이 쓴 것이므로, 노자적 인간의 의미를 알게 된 독자라면 멀리서 고개 돌려 미소 짓는 노자의 기대에 걸맞은 삶으로 방향을 전환하게 될 것이다. 그곳으로 뻗어 있는 길이 보이게 될 것이므로, 아무 계산도 고민도 없이 무위의 걸음을 옮기게 될 것이다. 이 책은 그 걸음을 위해 세상에 나왔다. 노자적 인간이 성공한다. 노자는 우리를 성공하는 인간으로 이끌기 위해 『도덕경』을 썼고, 나는 그 사실을 알리기 위해 이 책을 썼다. 백석에서 -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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