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 날들의 모든 결과를 간추려보면 그저 반반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반반이라는 너무도 당연한 그것을 깨닫기까지 나는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한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이 2,30대에 이미 통달해 있을 문제도, 일상의 서투름으로 주춤거리고 있는 사이 나는 놓쳐버리고 만다.
얻은 것과 잃은 것, 장점과 단점, 호감과 혐오감, 이렇게 큰 획으로 그어보면 모두가 반반인 것을, 저울질에 기우뚱거릴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회의에 사로잡히게 된다. 지금 내 심정이 그러하다. 어떤 색깔도 채색되지 않는 담담함이라고 할까...
전혜린, 그가 살아냈던 서른 몇 해, 맨발로 자갈밭을 걷는 나날이 아니었을까? 막말 프레임에 갇혀 그는 단 하루도 편안하지 못했다. 때로는 수긍했고 때로는 격한 반응으로 곁을 뿌리치기도 했다. 솔직 명쾌한 그의 성품을 두고 세상은 꼬고 비틀었다. 그래서 주저앉은 건 아니다.
그가 건재했다면 올해 25년 1월, 92세 생일을 맞이했을 것을. 서른셋의 요절은 억울하고 안타깝다.
하지만 그의 삶이 헛발질로 마감된 건 아니다.
문화 불모지였던 이 땅의 젊은이들 가슴에 자명종을 울려준 젊은 지성, 그의 고요한 외침을 담아낸 몇 편의 서사가 아직도 우리들 책꽂이에 건재하다는 것을 그는 알까?
마침표를 찍으면서 저자는 그의 부랑하는 영혼에 부쳐 한마디를 당부한다.
부디 평안하소서. 그대는 꺼지지 않은 촛불이요.
그는 응시했다. 식물이나 동물, 이웃한 모든 생명들을 자신과 같은 눈높이로 끌어당겨 그는 어루더듬고 아끼며 숨길을 나누었다. 그는 스스로 화공이라며 자신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비록 객석에 앉아 동료화가들에게 마음 빚을 지고 살았지만 늘 웃는 얼굴에 온기를 지펴냈고 술이 넘쳐도 주사를 몰랐으며 여자의 옷을 벗겼어도 기품을 잃지 않았다. 그의 그런 모든 제스처 가운데서 가장 순정한 모습은 수줍게 움츠리는 나직한 미소일 것이다.
그는 응시했다. 식물이나 동물, 이웃한 모든 생명들을 자신과 같은 눈높이로 끌어당겨 그는 어루더듬고 아끼며 숨길을 나누었다. 그는 스스로 화공이라며 자신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비록 객석에 앉아 동료화가들에게 마음 빚을 지고 살았지만 늘 웃는 얼굴에 온기를 지펴냈고 술이 넘쳐도 주사를 몰랐으며 여자의 옷을 벗겼어도 기품을 잃지 않았다. 그의 그런 모든 제스처 가운데서 가장 순정한 모습은 수줍게 움츠리는 나직한 미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