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쓴다는 것은 몸과 마음을
수련하는 힘든 일임을, 시를 쓰기 시작한 지 10년,
시집 출간 10권쯤 되어서야 겨우 깨달은 듯싶습니다
시의 주제가 나와 꼭 한 몸으로
일체가 되어 몸속에 같은 피가 흐를 때까지
수행하고, 기도 해야되는 것 임을 깨달았습니다
마음의 수행이 힘들다 하여
어찌 중도에 그만둘 수 있겠습니까
목숨이 붙어 있을 때까지 닦고, 또 닦아야 할
내 삶의 큰 업보임을 통감합니다.
등산길 위에 상수리가 떨어져 길바닥에 굴러다녔다.
눈에는 밟혔지만 상수리묵을 쑤어먹을 줄 모르니 발길에 밟혀 들어도 못 본 척 그대로 밟고 다녔다.
늦가을에 불어온 비바람 때문에, 며칠 동안 발 묶였다가 등산을 하려니, 그렇게 많이 보이던 상수리가 한 개도 눈에 띄지 않는다.
비바람 불어치는 동안 누가 주워간 것일까?
불현 궁금한 생각에 참나무 가랑잎을 들추어내자 빗물에 반질반질 씻겨진 야물찬 열매가 튀어나왔다. 나무의 이파리들은 가을바람 소슬해 질 때 누렇게 변색 한 가랑잎 되어 공중 한 바퀴 유회하며 땅에 떨어지고 나면 이파리의 목숨은 끝나는 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뭇잎들의 목숨은 끝날 지언정 역할은 이제부터 시작임을 알게 되었다.
가랑잎은 자신보다 먼저 떨어진 상수리 위를 두껍게 덮어 줌으로써 청설모나 다람쥐 등 산 짐승들의 피해를 막아 주고, 사람의 눈을 피해 겨울을 무난히 날 수가 있는 것이었다. 이듬해 봄이 오면 열매에선 싹이 나서 성장할 때 가랑잎은 썩어져 걸음이 된다는, 무서우리만치 빈틈없는 자연의 법칙이 있음을 새롭게 알았다.
가을은 단풍이 붉게 물들고, 보름달은 하늘 가까이 내려앉아 더 둥글고 더 커 보이는 계절이라, 사람들은 닳고닳은 감성으로 단풍을 노래하고, 둥근 달을 노래하고, 계곡에 흐르는 맑아진 물소리를 노래하는 것으로, 자연을 그리는 시가 부쩍 늘어나는 계절인가 싶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올가을부터는 눈에 뵈는 이들 자연만을 그릴 것이 아니라, 땅속에 묻히는 상수리 같은 눈에 뵈지 않는 자연을 그려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처녀 시집을 낸 지가 정확히 9년이 지났다. 그때를 돌이켜 보건대, 내 이름이 쓰여진 시집 한 권만 쥐고 죽으면 여한이 없겠다던, 전생全生의 소원을 이루었다는 기쁨이 넘쳐, 거의 일 년 동안 입 끝을 귀에 걸고 다녔었다.
이제, 9년 동안 9권의 시집을 출간하게 되었으니, 평생 소원을 9번이나 이루고 살았다는, 산술적 셈법은 가능하다 하겠지만, 그 기쁨보다는 첫 무대에 나가는 배우처럼 여전히 떨리기만 한다. 부끄러운 마음 또한 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
쪽방에서
가을은 무언가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부족한 감성으로 읽어 줄 상대가 없어도 편지를 쓰고 싶어지는 계절인가 봅니다. 글쟁이들 또한 가을에 쓰는 글들은 외로운 감성으로 붉게 물들어 가기도 합니다.
詩, 詩는 읽어 줄 상대가 많으니, 세상에 나 혼자뿐이라는 고독감에서는 벗어날 수가 있어서 좋습니다. 그러나 세상 모두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에 조심성이 요구되고 부끄럼이 선행되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서평을 써 주시겠다는 문단의 석학, 신익선 박사님 댁을 단걸음에 달려가 원고를 드린 나의 용기는 어디서 나온 것인지? 회초리 맞을 것을 각오하고 떨리는 가슴으로 테이블 위에 원고 파일을 꺼내놓자, 쭈욱 한 번 훑어보시고, 詩 몇 수 들춰내어 잘 썼다고 하셨는데, 아마도 출판을 코앞에 두었으니 시간적 여유가 없어 그러신 것으로 알고 있지만, 후유! 하는 안도의 숨이 절로 나왔습니다.
시집을 내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서평을 청탁 드릴 때 맨 처음 부끄러움이 오고, 시집을 지인들께 직접 넘겨 드릴 때, 두 번째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그러나 그 부끄럼이 부끄럼으로만 생각되지 않기 때문에 또다시 도전할 힘을 얻어 가을의 외로움을 달래어 가나 봅니다. 어쩌면 이런 사유가 있어서 저에게 가을은 행복한 계절이 되곤 하는가 봅니다.
2023년 10월 어느 날
세월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다. 하지만 나이에 비례하여 그 속도는 점점 빨라진다는 것을 나이 든 사람이면 똑같이 느끼는 감상感傷인 듯 싶다. 나에게 세월은 상전벽해가 무색하리만치, 열차 속 선잠처럼 금세 지나가고 말았나 보다.
첫 시집 『얼굴』을 선보였을 때부터 본 시집 『무재봉 연가』를 출간하기까지 정확히 십 년이란 세월이 빠져나갔다. 처음 『얼굴』을 내면서, 앞으로 10권이 출간될 때까지만 詩를 써야겠다 하는 목표 같은 것이 있었는데, 이토록 빨리 올 줄은 몰랐다. 그러나
여기서 詩쓰기를 멈출 수는 없다.
애당초 詩의 분량으로 기준 삼았던 것이 그릇된 설정이었다. 詩쓰기의 한계는 詩의 양이 아니라 詩人 감성의 양이 아닌가 싶다.
바꾸어 말하면 감성이 다 할 때까지 詩를 쓰겠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란 생각이다. 그럴만한 이유는 詩는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 줌으로써 감성과 생각을 공유한다는 것이 그 지향점이라 하겠으나, 본질로 본다면 모두가 詩人 자신을 위해서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넘쳐나는 그리움, 생태적인 사랑과 고독, 처절한 슬픔 등을 당면했을 때, 詩가 아니면 무엇으로 위무해주고 잠재울 수 있겠는가? 시집 10권쯤 썼으면 그 뒤에 오는 삶은 아무런 감성도 없이 빈 영혼으로 살아갈 자신이 있겠는가?
이희영의 詩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 나이와 詩의 분량과는 전혀 무관하게, 감성이 전부 고갈되어, 마른 나뭇가지 될 때까지 쓸 것이다. 아니 바싹 마른 장작에 불이 당겨 활활 타오를 때까지 쓸 작정이다.
2025년 正月 보름
五岩 이희영
아이를 낳는 고통이 두려워 이제는 그만 나야겠다, 고 마음 먹었다가도, 아이를 낳고 나서 또다시 임신 하게 되는 여인네들의 마음이 우리 시인들 마음과 똑 같지 않을까?
출판 기념이 끝나자, 임신한 여인네가 몸을 푼 것 처럼 일단은 몸도 마음도 후련 해졌다
희열 속에 고통은 고통이 아니다. 고통이 커질 때가 희열도 커지는 것 아니었던가? 그러나
아무리 고통이 커지는 일이라 해도 시 쓰기를 여기 서 멈출 수는 없다.
나는 더 큰 아픔을 반기려는 마음으로, 책상 앞에 앉았다
보고 느끼고 생각만 해도 터질 것 같은 이 감정 들을 굳이 억누르며 살아갈 이유는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