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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인문/사회과학

이름:백년어서원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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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8월 <부산에 삽니다>

과학기술과 영화 그리고 인문

영화는 가장 대중적인 예술이다. 삶과 죽음, 사랑과 전쟁, 기후와 환경, 현재와 미래 이러한 모든 것들을 영화는 다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자율적 형식들 하에서 표현한다. 우리는 이러한 모습들을 영화관에서 편안히 마주하지만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유기적 신체를 상정했던 정신적이고 고전적인 모습에서 탈피하여 현대 영화는 다양한 기관 없는 신체와 탈유기적 신체를 곳곳에서 보여주고 있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장면은 우리의 모습을 가장 많이 닮았다. 때문에 우리는 영화와 함께 어쩌면 눈을 찡그리기도 코를 씰룩거리기도 귀를 쫑긋거리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영화 속에서 위대한 거장들의 메시지와 담론을 읽어내고 영화와 역사를 끌어안으면서 사유와 질문을 던진다. 영화는 비언어적 기호들로 가장 많은 것들을 시사하고 있다. 때론 파생적 공간과 근원적 세계의 모습들을 드러내고 때론 실재계의 모습을 현재화하기도 하고 때론 선과 악이 싸움을 벌이기도 하고 때론 가상공간에서 현재와 미래, 과거의 모습이 중첩되기도 한다. 들뢰즈의 말을 빌리면 영화는 얼굴 또는 그 등가물에 표현된 특질-힘이 있고, 불특정한 공간에 노출된 특질-힘이 있다. 우리는 세계에 존재하는 많은 사물, 존재자들을 이용할 때 항상 스스로를 은폐하도록 강요되며, 또 그렇게 운명지어져버린다는 것을 알고 있다. 들뢰즈의 사유에 따르면 그들은 그들을 더 이상 포함하지 않는 집합 속에 나타나며, 배척되지 않기 위해서는 그들이 집합과 공유하는 공통적 특성들을 제시해야 한다. 사물의 본질은 애초에는 결코 드러나지 않다가 중간쯤에서, 그 전개의 와중에서 그것의 힘이 견고해질 때 드러난다. 베르그송은 생의 새로움이 초기에 나타날 수 없는 이유를 처음에는 생이 물질을 모방하도록 강요당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영화도 이와 다르지 않다. 영화도 처음에는 자연적 지각을 모방하도록 강요되어 시간은 단조롭고 추상적인 것이 되었다. 영화의 진화, 영화의 본질 또는 새로움의 정복은 촬영의 해방을 통해 이루어지게 되었다. 공간적 범주이기를 멈추고 시간적 생성이 되는 것이다. - 서문

굴참나무, 기후위기를 걷다

생명을 위협하는 극단적이고 이례적인 여름은 올해뿐만이 아니다. 사하라의 온도가 51도를 넘은 2018년 여름도 114년 만에 닥친 최악의 여름이라고 했고 지난 5년간의 여름도 기록적인 날씨의 연속이었다. 수련의 시기도 앞당겨지고 있다고 한다. 기후위기에 개체들도 저마다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이다. 수련이 올해도 무사히 다른 개체의 꽃가루를 묻히고 자신을 찾아오는 곤충을 품었을까, 이대로 간다면 더 혹독해질 여름에 수많은 존재자들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무거운 책임감이 어깨를 짓누른다. 내년 여름과 그 이후의 여름은 얼마나 지독하게 무더울지 상상만 해도 무섭다. 이것이 기후변화의 현재 얼굴이다. 10층에서 지구가 떨어지고 있는데 받지 않을 수가 있는가! 세계적인 수중탐험가 실비아 얼의 이 말은 가장 적절히 현재의 지구를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구는 현재 추락하고 있는 중이다. 몇 년 전부터 심각한 증상들을 드러내고 있는데 우린 너무나 태연하게 에어컨을 켜고 자가용을 몬다. 불편함을 감수하지 않으면 옛날의 아름다운 여름은 회복불가능하다. 그레타 툰베리의 시위를 기억한다. 툰베리의 시위가 수많은 사람이 동의하는 사회운동을 이끌어 냈듯이 기후운동은 전 세계 여러 사회로 확산될 때 형성되며 올바른 청사진을 제시할 수 있다. 추락하는 지구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생각했다. 여기에 모인 이 글들은 지구온난화라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되었다. 추락하고 있는 지구를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지 않은가.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며 지구를 점령한 우리를 호명하고 있다. 그래서 기록해야 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의식을 자극하고 연대적 의식을 이끌어내는 길이 될 것이라 믿으며 이 글들을 기록했다. 대중적 기후운동은 우리 사회에서 보편적 지지를 얻는 가치가 기후의식과 연결되었을 때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서로 닮은 것 같지만 다른 개체인 연꽃과 수련이 물에서 함께 너울대며 살아가듯이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공생을 위한 인류의 행동과 실천이 지구와 동행하는 길이다. ―서문, 「우리의 여름을 기억합니다」 중에서

길의 안부를 묻다

길 너머를 볼 수 있는 눈, 그 눈이 필요하다. 모든 길의 끝은 늘 아슴하다. 하지만 길의 끝자락을 대충 짐작하는 자들이 있다. 책을 읽는 자, 글을 쓰는 자, 삶을 몸으로 겪는 자, 환대를 꿈꾸는 자, 타자를 배려하는 자들은 길을 스스로 선택한다. 때문이다. 사랑을 믿기 때문이다. 소명을 알기 때문이다, 하여 넓고 편안한 길에 쉽게 속지 않는다. 좁고 불편하고 느린 길, 그 길에서는 별 게 다 보인다. 달개비꽃도 보이고 풀거미도 보인다. 좁은 길에서야 우리는 우주가 얼마나 소소한 것들로 구성되는지 이해한다. 생명의 신비를 체험하고 관계의 비의를 감지하는 일이야말로 영적인 자산이고, 더 큰 삶으로 진화하는 비결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극단적인 물질주의와 소비사회는 일순 넓고 편안하고 빠르다. 하지만 지구의 모든 빙하가 녹고, 태평양 한가운데 살던 고래 뱃속에서는 프라스틱 조각이 쏟아져 나온다. 모든 두려움을 쾌락으로 덮어버리고 외면한다. 인간이 인간일 수 있음은 길을 선택하는 능력에 있다. 많은 길이 우리 앞에 펼쳐져 있다. 좁고 느리고 불편한, 타자를 향한 길도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반려바다

다시 바다를 꿈꾸다 오늘도 우리는 태평양을 마주합니다. 부산 앞바다가 태평양이란 사실을 문득 깨닫고 소스라쳤던 어린 시절이 떠오릅니다. 수메르 문명에서 출발해 지중해와 에게해를 거쳐 대서양에서 펼쳐진 인류문명사는 이제 태평양 시대로 접어든다고 합니다. 광막한 수평선과 아득한 심연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진정한 바다가 있었는지 생각해봅니다. 바다는 우리에게 언제나 대상에 그치지 않았는지 반성합니다. 수메르 문명도 물의 신화에서 시작했듯, 모든 문명사는 항상 바다를 향하여 펼쳐졌습니다. 인간이 극복해야 할 한계로만 여겨 바다는 개척과 도전의 상징이었지요. 하지만 바다는 삶과 꿈이 움트는 존재의 근원으로 우리는 바다에서 경외와 경이를 다시 배워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지구라고 부르는 이 별도 기실 대륙보다 바다가 더 많은 넓이와 깊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전 영도 산복도로에서 바다 위의 큰 기선들을 바라보며 성장했습니다. 어느 날 큰 배가 도착하고, 며칠 후엔 그 배가 떠나고 다른 배가 도착해 있곤 했지요. 가난한 시절이었지만 그때 제 문학의 혼도 같이 성장했고, 큰 여행을 꿈꾸는 법도 배웠습니다. 삼면이 바다이지만 해양문화에 익숙하지 못한 우리는 다시 바다를 배웁니다. 6,70년대 경제개발을 이끄는 중요한 고삐였던, 원양어선을 타면서 우리는 다시 바다를 만났는지 모릅니다. 찬찬히 바다의 심연을 응시할 수 있을까요. ‘물고기가 사는 곳에 사람이 삽니다.’ 백년어서원이 출발하면서 내건 모토입니다. 바다는 쓰레기와 미세플라스틱으로 오염되어 우리를 두렵게 합니다. 이제 우리는 다시 바다를 생명의 근원으로 만나야 합니다. 대상이 아니라 존재로서 만날 수 있을 때 인간도 삶도 회복이 가능합니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에 갇힌 개똥벌레들은 바다 앞에서 열리는 무한한 상상력을 읽는 시선을 함께 나눕니다. 바다의 상상력과 감수성은 언제나 우리에게 어머니였습니다. 우리를 낳고 기르는 우주였습니다. 태평양은 아침마다 우리와 마주합니다. 날마다 우리를 기다립니다. 2020년 늦은 가을 김수우 두손 모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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