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합니다, 송혜교 !
퀸 그라스는 독일 출신의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이지요. 제가 퀸 그라스를 좋아하는 이유는 ‘짓지 않은 죄’에 대한 자기반성을 하였기 때문이에요. 나치가 유대인들을 대량 학살할 때 작가는 어린아이였어요. 그 당시 작가 자신이 어른이었다면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동조했을 거라며, 자신에게는 ‘짓지 않은 죄’가 있다고 고백했지요.
독일은 유대인 학살에 대해 철저한 반성과 사과를 하고 있어요. 유대인 학살자에 대해서는 공소 시효가 없어, 지금이라도 잡히면 처벌받게 되지요. 이러한 독일의 뉘우침은 유대인들의 철저한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검은 태양》은 일본군 ‘위안부’였던 은주와 731 부대 소속 의사였던 미오 이야기예요. 인권이 유린당하고 인간의 존엄이 무참히 파괴되었던 위안소와 731 부대의 현장을 대면했을 때 제 몸은 몹시 아팠어요. 나와는 상관없는 아주 오래된 일과의 대면이었지만 한동안 음식을 소화할 수 없을 만큼 아팠지요. 그래서 힘들고 슬프고 아픈 역사는 자꾸 외면하고 싶어지는지도 모르겠어요.
1961년 12월, 나치 친위대 대령으로 독일이 점령한 유럽 여러 지역의 유대인들을 체포하여 강제로 이주시키는 일을 한 아돌프 아이히만이 이스라엘 법정에 세워졌어요. 600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로 내몰았던 아이히만이 괴물처럼 생겼으리라 믿었던 사람들은, 옆집 아저씨처럼 지극히 평범한 그의 모습에 깜짝 놀라게 되지요.
“나는 명령에 따랐을 뿐이오. 나는 무죄예요.”
“나는 유대인에 대한 증오나 연민 등 사사로운 감정이나 판단으로 행동한 것이 아니오. 오직 국가의 명령에 따랐을 뿐이오. 당시의 보편적인 기준에 충실히 행동했던 것이오.”
이어지는 아이히만의 주장에 다시 한번 놀라게 돼요. 731부대의 총책임자였던 이시이 시로 중장 역시 전범 재판에 세워졌지만, 무죄 선고를 받았지요.
그러자 정치 철학자이자 유대인이었던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유죄임을 주장해요. 비록 상부의 명령이 있었지만, 자신으로 인해 죽어 갈 600 만 명의 유대인(타인)들의 입장에 대해서는 생각지 못하는 무능함, 즉 ‘사유의 불능성’의 죄를 지었다는 것이지요.
저는 한나 아렌트 주장에 공감해요.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는 마음이 평화의 마음이기 때문이지요. 진정한 평화는 전쟁이 멈춘 상태만이 아니라, 인종 · 종교 · 국가 · 이념 · 빈부에 따라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격과 존엄이 무시되거나 차별받지 않는 상태예요. 인간이 참으로 값진 존재임을 온몸으로 느끼는 순간이 바로 ‘평화’ 이지요 .
이 이야기를 쓰기 위해 자료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제가 맞닥뜨리게 된 건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가장 본질적인 물음이었어요.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 순간까지도 전 ‘인간이란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여러분과 만나게 되었어요.
그러나 지독히 제가 아픈 역사를 품는 이유는 여러분과 함께 기억하기 위해서예요. 기억한다는 건 응답하는 일이에요.
응답은 행동하게 하지요. 전범 기업인 미쓰비시로부터 자동차 모델 제의를 받은 배우 송혜교가 모델 제의를 단칼에 거절할 수 있었던 건 일제 강점기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였기 때문이에요.
오늘, 여러분이 만나게 될 《검은 태양》이 저의 응답이자, 여러분의 응답이 되길 바라요.
10년 전 여름, 사할린을 다녀왔어요. 사할린의 여름은 변덕이 죽 끓듯 했지요.
햇발이 짱짱하다가 후두둑 비를 뿌렸고, 금세 쨍쨍해졌거든요. 변덕스러웠지만 싱그러웠어요.
자작나무 숲을 거닐던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미소가 지어져요.
그곳에서 미화(하나)와 마쓰야마를 만났기 때문이죠.
미화는 자작나무 껍질에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어요.
마쓰야마는 그런 미화를 좋아했지요.
미화와 마쓰야마가 사는 미즈호 마을은 조선인과 일본인이 아주 친하게 지냈어요.
서로서로 결혼을 할 만큼 다정한 사이였죠.
그러나 한 순간에 평화는 깨져 버렸어요.
“하나짱, 미안해. 정말 미안해.”
마쓰야마는 왜 눈물을 흘려야 했을까요?
그 여름 사할린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자작나무 꽃말은 ‘당신을 기다립니다.’라고 해요.
“당신을 기다릴게요.”
미화와 마쓰야마의 속삭임이 들리나요? 살며시 눈을 감고 귀 기울여 보셔요.
‘그 여름의 사할린’을 향해 자박자박 걸어올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을게요. - 머리말
『제암리를 아십니까』를 시작으로 저는 오랫동안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역사동화와 청소년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가까이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이야기부터 멀게는 아르메니아 대학살과 보스니아 내전, 폴란드의 홀로코스트까지. 우리나라든 다른 나라든 아픈 역사에 더 마음이 가고 눈이 갔습니다. 아픈 역사는 대부분 진상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채 세월에 묻히고 잊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과거의 영혼들은 지금의 우리를 부르나 봅니다. 내 얘기를 들어줄래요? 내 얘기를 세상에 알려줄래요? 하고 말이죠.
『단단한 역사를 만드는 내 아이의 책들』은 동학농민혁명부터 1987년 6월 항쟁까지의 이야기입니다. 1부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해 일어서는 사람들>에서는 동학농민혁명과 의병운동 관련 작품(12권)을, 2부 <어둠 속에서도 일상은 피어나고>에서는 일제강점기 작품(21권)을, 3부 <처절한 아픔을 딛고>에서는 해방에서 한국전쟁까지 작품(9권)을, 4부 <민주주의를 향하여>에서는 4·19 혁명에서 6월 항쟁까지 작품(8권)을, 모두 50권을 실었습니다. 이외에도 좋은 작품이 많았지만 여러 상황을 고려해 50권만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실린 책들의 목록은 어떤 면에서는 지극히 주관적이고 편파적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목록이 여러 사람들에 의해 다시 수정되고 더 확대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이 책을 쓴 선생님들이 읽는 역사동화나 청소년소설은 동학농민혁명부터 1987년 6월 항쟁까지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즐겁고 유쾌한 이야기보다는 아픈 이야기가 더 많습니다. 그렇지만 어둠 속에서도 꽃은 피어나듯이 우리들의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아픈 역사 속에서도 꿋꿋하게 일상을 살아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이 우리의 미래인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또 그들의 거울이 되어 주는 부모님과 선생님들 그리고 지금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고 읽히길 바랍니다. - 머리말
전쟁은 소중한 생명을 빼앗습니다. 전쟁은 슬픔과 고통과 분노를 가져옵니다. 하지만 평화는 상처 난 마음을 토닥토닥 어루만져 줍니다. 평화는 생명을 자라게 합니다. 평화의 마음을 담아 쓴 한국 전쟁 역사동화집 『소년과 늑대』가 전쟁으로 억울하게 죽어간 죄 없는 영혼들에게 건네는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부디 국가의 책임 있는 반성과 보상, 억울하게 희생된 민간인들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또한, 이 책이 어린이 여러분 가슴에 평화의 꽃씨로 심어지기를 희망합니다. 샬롬!
“엄마! 우리, 부대 만들었어요.”
어느 날, 초등학교 2학년인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와 말했어요.
“부대? 무슨 부대?”
“남자 부대.”
“그럼, 여자 부대도 만들었겠네?”
“당연하죠. 여자아이들 물리칠 부대를 만든 거예요.”
그러면서 여자아이들 흉을 보기 시작했어요.
급기야는 짝꿍인 여자아이가 냄새나고 더럽다는 둥, 끝도 없이 여자 친구 흉을 보는 거예요. 그러더니 놀이터에서 남자 부대랑 여자 부대랑 만나 싸우기로 했다며 쪼르르 밖으로 뛰어나갔지요.
부대끼리 만나 싸운다니,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듯해 슬쩍 놀이터로 나가 봤어요. 처음에는 남자아이들과 여자아이들이 말싸움을 시작하더라고요. 그러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남자아이들은 남자아이들끼리 여자아이들은 여자아이들끼리 놀지 뭐예요. 그런데 어느 순간 저희들끼리 쫓고 쫓기며 잡기 놀이를 하더니, 잡힌 남자아이를 여자아이가 막 때렸어요. 남자아이는 악악 소리를 지르면서도 웃고, 여자아이는 숨이 차 씩씩거리면서도 웃고, 그걸 구경하는 다른 아이들도 모두 웃고요.
‘쳇, 괜히 걱정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