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경업을 색다른 눈으로 보아 장군보다는 인간다움을 글로 지어 남기고 싶었습니다. 책을 많이 읽은 시인이자 의리를 지키는 무사였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왕조실록에도 이름을 남기고 호위무사이자 책사인 정인 매환을 함께 그리고자 하였습니다. 장군과 여장부는 난세에 전통무예를 되살렸습니다. 두 사람은 전장에서 참된 용기로 앞장서자 믿는 병사들이 죽기로 따랐습니다. 임경업과 매환은 가슴에 애국 충심으로 가득한 충북이 낳은 호국영웅입니다.
나는 참으로 늦깎이다. 공부도 그렇지만 사과밭 일도 그랬다. 소설등단도 마찬가지였다. 거기에다 장편소설을 여러 권 출간하고 나서야 중^단편을 묶어 소설집으로 선보여서 하는 소리다. 그렇지만 찬찬히 돌이켜보면 문학창작의 시작은 반세기가 훌쩍 지났다. 역설적으로 올깎이라고나 할까. 그동안 냉동저장고에 차곡차곡 쌓여 보관 중인 많은 작품들이 해동을 기다리고 있으니 후회하지는 않는다. 또한 늦깎이라도 한 점 부끄러울 것도 없다.
문학을 따로 배운 적은 없었다. 자연이 스승이었다. 정미소 별채에 야학당을 열어 글과 인성을 가르치며 시조와 가사를 즐기시던 아버지의 가정학습이 있었다. 또한 일제 암흑기에 간호사를 지낸 어머니의 숨은 손길이 뻗쳤다. 독일의 라인리히 뵐의 노벨상 수상작인 <여인과 군상>을 탐독하고 소설가의 꿈을 키웠다. 뵐의 방송극 <결산>과 희곡 <판돈>은 대화체를 선호하는 나의 문체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한편으로 우포늪이 가까워 자연을 벗 삼을 수 있었다. 그 무렵의 감성과 정서가 가슴을 적시며 삶의 전반을 관통하여 흘렀다. 고향에서는 우포늪을 ‘소벌’이라 불렀다.
소벌은 내 몸의 고향이자 마음의 안식처다. 어릴 때 소벌은 가보지 못한 바다였다. ‘소벌바다’에 한없이 펼쳐져 구름과 맞닿은 물길은 소년에게 꿈과 영감을 선사하였다. 또한 호기심과 모험심은 상상력의 확장으로 날개를 달아 정중동을 깨닫게 하는 오감을 호사시켜 주었다.
소벌은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읽고 검은 안대를 두르고 나선 ‘허크파’의 뗏배 사이로 물안개와 함께 피어오르는 민물의 비린내마저도 싫지 않았다.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철새들이 비상하며 울부짖는 아우성은 자연이 불러주던 최초의 노래였다. 지는 해를 붙잡으려다 놓치고 등진 처연한 갈대와 물억새의 몸부림은 은빛 역광의 미학을 고스란히 가슴에 안겨주던 햇빛과 바람의 향연이었다. 가까이서 사물 보는 눈을 뜨게 하고 몸의 모든 감각을 흔들어 일깨웠다. 소벌 둑방에 앉아 자연에 귀를 기울이면 시간가는 줄을 몰랐다. 등 시린 달빛이 벗이었다. 이것들은 힘을 모아 허크파의 대장에게 글쓰기를 북돋아 주었다. 소벌은 문학 아동과 문학 소년에게는 첫 스승이었다.
중단편 소설집 <포 리프 클로버>를 묶으며 오랜만에 소벌을 찾았다. 오래전 개척해 둔 물둑에 올랐다.
개굴~개굴, 맹~꽁 맹~꽁, 꺼억 꺼억.
발자국 소리에 뒤죽박죽 리허설이 한순간에 뚝 멈췄다. 물옥잠 사이로 솟아난 가시연꽃이 내려다보이는 자운영 꽃밭에 자리를 잡고 숨을 죽였다. 석양이 조명처럼 잔잔한 붉은 물결을 만들었다. 물위를 스치든 잠자리 떼도 붉게 물들었다. 이때였다.
맹~
꽁~
맹꽁이 혼성 듀엣이 목청을 가다듬어 주고받았다. 이어 두꺼비도 나섰다.
꺼억 꺼억
따라서 귀에 익은 울음이 한꺼번에 터졌다.
개굴~개굴~개굴
한 뼘 남은 해가 서러운 듯 합창단의 울음보가 봇물처럼 터졌다. 시샘하든 한줄기 바람이 물결을 흔들며 둑방으로 넘어갔다.
동행한 후배가 말했다.
“행님요. 저번에 부탁드린 고향마을 재능기부는 준비해 왔습니꺼?
“그래. 자, 네가 한번 읽어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