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 지방에 밤새 봄눈이 내린 다음 날 느닷없이 날아든 행운을 기쁘게 받아 들었습니다. 도대체 지난겨울 어디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제게 이렇게 신나는 봄이 오는지요.
박재삼 시인은 생전에 꼭 한번 뵈었더라면 하고 꼽는 시인 중에 한 분이지요. 선생의 작품들은 대개가 쉽고 친근한 말로 되어 있으나, 그 중심에 가 닿자면 둘레를 한참씩 서성여야 하는 멋과 은근함이 있습니다. 집안 아저씨처럼 너그러울 것 같은 분위기도 그렇습니다.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처럼 꿈에라도 한번 양양(揚揚)해보지는 못하고 제 시는 늘 저 세간의 번잡 속에 과다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게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시가 사람을 궁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궁한 사람의 시가 공교롭다”고 한 선인들의 말처럼 손바닥만 한 그늘조차 잃어버리고는 했습니다.
누구는 제 시가 세상에 이겼기보다 그 반대쪽의 우수가 절실해 보인다는 평을 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선생 같은 절창의 울타리에다 저를 비끄러매는 것은 또 무슨 영광인지요. 누가 어느 시절엔들 기뻐서 시를 쓰겠습니까. 생이 대게 그러하듯 시 또한 그리움과 유랑이 그 근본이 되는 것이겠지요.
수상 소식을 접하고 새삼스럽게 꺼내 든 선생의 작품에서 물그림자처럼 일렁거리는 남도 서정의 정감을 음미하며 선생의 생애와 시가 갑자기 제 몸속으로 흘러들어오는 황홀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그 막대한 지원과 격려로 제 시의 곤고함을 물리치며 엄동의 지푸라기를 헤치고 올라오는 마늘 싹처럼 환한 하늘을 바라보겠습니다.
갈 수 없는 북쪽 정주(定州)가 소월과 백석으로 더 그리운 땅이듯 아름다운 삼천포는 저 같은 사람에게는 오직 시인의 고향으로만 기억되고, 저는 아직 그곳에 가본 적이 없습니다. 거기서 육신과 정신을 받은 선배 시인의 이름으로 주어지는 이 상을 받으며, 언젠가 제 노래도 우리 땅 어느 한 자락을 울릴 수 있게 되기를 염원해봅니다.
그리고 어딘지는 모르지만 그곳에 있을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늘 그리워하겠습니다. - 수상소감
등단 30년 만에 첫 선집을 묶는다. 그것이 육필이어서 의미 있기는 하나 부담스럽기도 하다.
그간 다섯 권의 시집을 내놓았으나 그중 마흔 편 정도를 추리기에는 새삼 나의 농사가 빈약했다는 걸 실감한다. 누가 인정사정 보지 않고 고른다면 서너 편도 많다라는 생각에 등에서 식은땀이 날 지경이다.
선을 하면서 그냥 지나가거나 다시 내놓고 싶지 않은 것도 없잖은 건 아니나 내 삶과 문학의 역정이 그러하니 가릴 필요가 없는 작품과 함께 독자들에게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작품들을 주로 선했다.
내가 바다에서 한 30년 고기를 잡았거나 대장간에서 그만큼 쇠를 두드렸다면 나는 세계와의 관계에 있어서나 나를 세우는 일에 지금보다 훨씬 단단했을 것 같다.
이 시집에 실린 시편은 대부분 내가 아무 일도 없이 생애의 가장 한가로운 시기에 쓴 것들인데 나를 따라 시도 무사하기만 한 게 싫어서 틈만 나면 낯선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거나 새벽에 일어나 비를 바라보기도 하고 천변에서 새들과 놀기도 했다.
세상에 아무런 공덕도 없는데 좋은 일들이 자꾸 생긴다. 가을과 헤어지고 나면 눈을 이고 겨울이 찾아오는 것도 그렇고 많은 이들의 살핌과 찬을 받아 시집을 묶는 일도 그렇다. 그리고 그것들이 갚을 수 없는 것들이어서 더없이 즐겁기만 하다.
2025년 12월
거의 십여년 미시령을 넘어다녔다.
그곳의 사람 사는 마을들과 풍광, 길이 지니고 가는 스스로의 치열함과 고립을 나는 충분히 사랑하고 즐겼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스쳐지나간 많은 사람들, 타락을 모르는 나무들과 늘 같이 걸었다.
나는 마치 아침에 산속으로 들어갔다가 저녁에 바닷가로 나오는 바람과 같았다.
길 하나가 집으로 돌아가고 시 몇편이 남았다.
2012년 2월
설악산 자락에서
네 번째 시집에서 다섯 번째까지 일곱 해가 걸렸다.
그동안 혼자 있는 시간과 술이 늘었다.
시는 재미로 만나거나 어울려 즐겨야 좋은데 그것에다 내 존재와 세계를 다 싣고자 하니 서로 힘들다. 그러나 그 일마저 없었더라면 무엇으로 이 썰렁한 세상을 건넜을까 생각하면 시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또 고맙다.
겨울이 설악처럼 깊다.
어쩌다보니 생이 바람 든 무처럼 허술해지고 가까스로 시만 남았다. 서로 무능하고 미안한 일이다. 그래도 아직 가보지 못한 미지의 나라가 있고 그곳에서 나를 만나려고 줄을 서 기다리고 있는 말들을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시는 나에게 사물의 배후나 삶의 은밀한 거처가 되어주었으면 한다. 하지만 나는 늘 길 위에 있거나 말 속에 말을 숨길 줄 모른다. 그러다보니 나 자신도 가리기가 쉽지 않다. 여기저기 나무도 심고 집을 늘리고 싶다.
2021년 3월
미시령 아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