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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승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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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8월 <기후 협치>

중요한 몸

‘물질’이자 ‘사건’인 몸 주디스 버틀러의 대표작 『Bodies That Matter』를 23년 만에 새로운 번역으로 내놓으며, 가장 오랫동안 고민했던 지점은 다름 아닌 ‘제목’이었습니다. 원제에 쓰인 ‘Matter’라는 단어가 품은 중층적인 의미를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은 그 자체로 버틀러의 철학을 탐구하는 여정이었습니다. 이 제목은 크게 세 가지 결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첫째, ‘Matter’를 ‘문제를 일으키다’ 혹은 ‘트러블이 되다’로 해석하여 『문제가 되는 몸』 혹은 『몸이 문제다』로 읽는 것입니다. 둘째, ‘That’을 동격으로 보아 『몸, 즉 물질』 혹은 『몸은 물질이다』라고 직해하는 것입니다. 셋째, ‘중요하다’는 뜻을 살려 『몸은 중요하다』 혹은 『중요한 몸』으로 번역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중에서 세 번째, 즉 **『중요한 몸』**이 버틀러의 의도에 가장 가까운 번역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물론 23년 전 출간된 초역본의 제목인 『의미를 체현하는 육체』를 기억하는 독자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해, 이는 버틀러의 핵심 논지를 빗겨난 오역에 가깝습니다. 버틀러는 ‘Body’가 사회적 의미를 체현할 수도 있지만, 체현하지 않을(못할) 수도 있다는 점을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버틀러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성공적으로 규범을 체현한 몸이 아니라, 오히려 의미를 체현하지 못한 몸, 규범에서 미끄러진 몸입니다. 버틀러는 이를 ‘비체(abject)’ 혹은 ‘비체화(abjection)’로 개념화합니다. 우리 사회의 ‘정상성’은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 비체들을 금지하고 배제하며 차별하는 과정을 통해서만 비로소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초역본의 논리를 따른다면, 책 제목은 오히려 『의미를 체현하지 못한 몸』 혹은 『의미를 체현하거나 체현하지 못하는 몸』이 되어야 마땅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중요한 몸』인가? 몸은 규범을 체현하느냐 체현하지 못하느냐의 갈림길에서 끊임없이 ‘문제(matter)’가 되고, 그렇기에 ‘중요하게(matter)’ 다뤄지기 때문입니다. 권력의 입장에서 몸은 중요합니다. 권력은 몸을 통해 자신의 의미를 관철하며, 몸을 훈육하여 자신의 경제에 부합하도록 조율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개체의 입장에서도 몸은 중요합니다. 내 몸이 사회적으로 승인받는 몸이 되느냐, 아니면 비체화되어 지워지느냐는 곧 생존의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담론의 입장에서도 몸은 중요합니다. 언어와 담론은 몸이라는 물질적 토대가 있어야 실존을 담보할 수 있으며, 그래야만 흩어지는 말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가 주목해야 할 ‘무게’를 지니게 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본문에서 ‘materialization’을 ‘신체화’ 혹은 ‘체현’으로 옮기며, 몸이 의미를 각인함과 동시에 형성된다는 점을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이 책이 독자 여러분께 단순한 텍스트를 넘어, 당신의 몸이 지닌 가능성과 ‘중요함’을 다시 묻는 치열한 사유의 현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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