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현대 사회를 진단하며 철학자나 사회학자들이 피로사회, 위험 사회, 분노 사회 등으로 부르는 데서 알 수 있듯, 현대 사회는 자본주의가 지닌 내재적 모순과 폐단이 그대로 드러나면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그로 인해 양극화와 불평등이 더욱 심화하고 있다. 아무리 문명이 발달해도 여전히 먹고사는 일이 시급히 해결해야 할 생존의 문제인 사람이 많다.
먹고사는 일의 어려움은 예술가도 피해 갈 수 없다. 『모비 딕』으로 유명한 허먼 멜빌도 예외는 아니다. 자신의 인생을 실패작이라고 생각했던 멜빌의 생애를 보면, 그가 작품 활동을 하든 다른 직업에 종사하든 내내 먹고사는 문제가 머릿속을 사로잡았던 것 같다. 생계에 보탬을 주고자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많은 작품을 썼지만 독자들에게 외면받기 일쑤였고, 평단의 평가가 좋은 경우에도 일반 독자들의 판단은 다른 듯 판매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쩌면 멜빌은 현실의 어려움을 경험하는 가운데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현실을 뛰어넘는, 현실을 초월하는 이상(理想)의 구도를 상상했는지도 모른다. 몸은 현실에 있지만, 머리는 각박한 세상을 치유하는, 모두가 어울려 사는 공동체로 향하는 험난한 길을 닦고 있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