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년이 걸려 완성한 이야기이다.
연우, 유신. 두 주인공처럼 내 속의 가장 어둡고 깊은 곳에서
끌어올린 기억이기도 하다.
우리는 괴로웠던 기억을 잊기 위해 애쓰며 살아간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쉬이 잊지 못해 고통스러워한다.
이야기 속 두 소녀는 기억으로부터 ‘살아남은 자’들이다.
나는 그들의 목소리를 빌려 말하고자 한다.
‘지지 않기를. 그 모든 힘겨웠던 기억으로부터.’
이야기를 만들며 ‘진’이 부럽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자신의 믿음을 의심하지 않고 저돌적으로 행동하는 그녀가 몹시 부러웠어요.
그래서 저는 ‘진’과 함께 하는 시간 동안만이라도, 끊임없이 질문하고, 솔직하게 말하고, 남들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고,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변화를 꿈꿔 보려 노력했습니다. 이 책을 읽는 분들도 ‘진’처럼 스스로의 삶을 바꾸는 히어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나이가 들면서 주위에 할머니가 살아 계신 경우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아이가 어른이 되어 가는 속도에 맞춰 세상의 할머니들은 사라지고 있는 것일까.
할머니를 떠나보낸 어느 날, 문득, 예전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함께 티브이를 보며 할머니와 나눴던 대화였다.
“할매는 사랑이 뭔지 몰라.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사랑 사랑 캐싸면 아, 저게 사랑인갑다 하는 기제.
동생이랑 나물 따다가 니 신랑 왔다 캐서 쫓아 내려갔다 아이가.
그래가 신랑 얼굴 딱 한 번 보고 시집 갔제.
전쟁이 나가꼬 시집 안 간 처자들은 싹 다 잡아 간다 캐가꼬.
할매는 공부하고 싶어도 몬 했는데. 동생들 밥 믹인다고 노상 시장 가가 장사했거든.
배추 장사 아지매 씨래기 버린 거 주어다 팔고.
양장 가게 아재 일 받아가 밤낮으로 바느질하고.
할매 꿈? 할매는 슨생님 되는 거였제.“
그날의 대화가 깊게 남았다.
할머니는 그냥 할머니였는데, 할머니도 되고 싶은 것이 있었고 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는 사실 이 놀라웠다. 할머니에게도 엄마였을 시절이, 아가씨였을 시절이, 아이였을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 새삼스러웠다. 그리고 그런 시절들을 온전히 개인의 의지로 살아낼 수 없었던 당시의 시대상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우리네 할머니가 살아온 인생사. 그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서글픈 현대사이고, 그중에서도 힘겨웠던 여인들의 삶 아니었을까.
이 책은 그런 애잔한 마음을 담아 세상의 모든 할머니들과 그들의 ‘똥강생이’들에게 보내는 연서이다.
세상 모든 불행이 나를 위해 준비된 것처럼 느껴지던 때가 있었다.
하나의 불행이 일어나면 그 불행이 마중물처럼 다음의 불행을 끌어 올릴 거라는 망상까지.
그러던 어느 날 자연계에 질량 보존의 법칙이 존재하듯이,
살면서 ‘불행과 행운도 질량 보존의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면?’이란 생각이 들었다.
삶에서 일정량의 불행이 있다면 그것을 소진하고 난 뒤
딱 그 정도의 행운도 내 삶 어느 공간에 존재하고 있지 않을까,
단지 드라마틱하게 등장할 적당한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을 뿐.
그렇게 언젠가는 불행의 마중물 덕으로 행운이 이끌려 올 거라 믿는다.
앞과 뒤가 딱 들어맞는 논리적인 사건이나 대단한 계기가 아닌
어이없고 사소한 실수 한 번으로도 모든 것이 어그러질 때가 있다.
길을 잃었다거나 시간을 잘못 봤다거나 택배를 늦게 받았다거나 하는 일로
있었던 일이 없었던 일이 되고
손가락 걸고 맹세했던 약속이 물거품이 되거나
평생 함께 하자던 사람이 눈앞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
삶은, 그토록이나 허술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허술하기 짝이 없는 것이 아마도 사랑이리라.
하지만 누군가는 그 어떤 경우에도 변함없는 것을 찾아 헤맨다.
살과 가죽이 사라져도 영원히 남아 있는 뼈처럼.
수십, 수백, 수천 년이 지나도 영원한 무언가가 존재할 거라고.
그렇게라도 믿지 않으면 이 깊고 깊은 허무함을 견딜 수가 없기에…….
거의 매일 꿈을 꾼다. 그날의 꿈에 따라 하루의 컨디션이 달라질 만큼, 꿈은 내 일상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흔히 꿈은 무의식의 발현이라 한다. 꿈속 상황이나 감정을 통해 내면의 생각을 깨닫고, 무의식 깊이 감춰둔 본심을 알게 되어 놀랄 때도 있다. 그 탓에 나는 늘 무의식의 실체가 궁금했다. 이 소설은 바로 그 의문에서 출발했다.
주인공 재욱은 타인의 무의식을 넘나들며 스스로 외면해왔던 과거의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한계에 부딪혀 낙담하기도, 때로는 한계를 넘어서는 경험을 하며 나아간다.
이처럼 이 소설은 ‘무의식세계로의 탐험’을 통해 한계 앞에 선 인간의 분투를 그리고 있다.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은 인간의 본질적인 한계이며, 우리는 그것을 의식하는 순간 때때로 허무에 빠진다. 하지만 어둡고 습한 감정들은 무의식 속에 묻어둔 채, 어떻게든 빛을 향해 나아가려는 의지야말로 인간이 지닌 가장 큰 힘일지 모른다.
오늘도 의식과 무의식, 비밀과 진실, 생과 사를 오가며 한참을 헤매더라도, 사랑하는 이들과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묵묵히 하루를 살아내는 모든 이에게 이 글로 존경의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