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번째 시집을 내면서
늦은 나이에 시작한 내 글쓰기는 내 속의 나를 찾은 과정이었다. 대부분 그것은 내 속의 우울함을 찾는 행위였다. 내 속에 우울한 언어가 그렇게 많은 줄은 시를 쓰기 전에는 정말 몰랐다. 형체 없이 숨어 있는 욕망덩어리의 작업이었다. 이렇듯 나의 시는 내 눈물이었다.
내 삶은 다망하고도 다망한 가장의 자리와 아버지의 자리뿐이었다. 내 생활의 진폭은 매우 좁았다. 평범한 생활 속에 일상이 문학작품이 되지 못한다면 나의 시는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긴 시간 동안 마음속의 갈증을 자기표현의 방법으로 발견하면서부터, 나는 항상 뭔가를 쓰고 있었다. 그것도 자연스러운 내 생활의 일부였다.
나의 시는 가슴속의 동경과 고뇌와 갈등을 호소하는 연약한 목소리였다 그것이 자연스럽게 리듬을 찾았을 때 심부에 도사리고 있는 진실도 찾아낼 수 있었다.
죽은 듯이 죽지도 않은 듯이 텅 빈 것들, 다리 없는 다리가 나왔다 들어갔다, 머리 없는 머리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는 괴이한 상상이나 생각들도 모두 자연 속에서는 순환의 리듬과 원리를 가지고 있었다. 내 상상이나 의식은 아주 자연스럽게 나무속에 들어가 가지 따라 솟구치고 햇볕에 몸 비비며 잎으로 팔랑거리게 하는 일이었다 바람의 말과 햇살의 눈으로 세상과 마주하는 일, 오래 바라보고 오래 관찰하면 사랑하지 못할 대상이 없었다. 자연 속의 세계는 평등하고 풀벌레 한 마리 돌멩이 한 개도 소중하고 눈물겹도록 진지했다. 나는 보송보송 마른 마음으로는 시가 나오지 않았고 무언가 아련하고 아릿한 것, 나는 그것이 오랜 세월 동안 내가 펼쳐내는 우울이라는 것을 안다.
눈부신 날개를 팔랑이며 나비가 봄꽃 주위를 팔랑이며 날고 벌이 잉잉거리며 꿀을 빠는 아침, 내 마음도 따라 환해져 내 속에 깊이 박힌 우울까지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아 꿀 같은 애인을 찾아 나섰다. 그것이 오늘의 내 할 일 같다.
여덟 번째 시집을 내면서
이 세대의 시는 쓸모가 있는가 없는가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쓸모가 있다 없다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
도달하게 된다. 왜란 단서를 붙여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속에 내 마음이 있고 없고의 어리석은 질문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있는 한, 내가 있는 한 쓸모가 있다는 점이 시의
정체성이고 나의 정체성이다. 시는 내 마음속에 노래고 내
마음속에 들풀 같은 존재라고 조심스럽게 고백해본다.
여기 이 글들은 내 여덟 번째 시집이다.
시도 서사구조를 가지고 있어 장문인데 제목조차 항상
긴 시 집을 냈다. 이번에는 제목만이라도 짧은 시집을 내고
싶었다. 고민할 것도 없이 ‘풀’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나는 혼자 수많은 숲길을 걸으면서 느낀 것을 시로 쓰고
싶었다. 내 속에 느낌만 가지고 작품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가을 야산의 희디흰 구절초꽃, 그리고 겨울 숲의 수많은
낙엽들. 온 천지에 하얗게 내리는 눈송이들 대자연 속에
나만 혼탁한 영혼으로 살고 있다는 마음의 위기의식에서
자연을 더 깊이 관찰하고 자연의 향기를 더 깊이 느끼기 위해
조용한 밤에도 낮에도 흙길을 맨발로 걸어보았다.
삶의 비린 냄새가 폴폴 풍기는 야생의 무한한 생명력과
땅에 떨어져 뒹구는 스산한 낙엽과 마른 풀잎들의 구수한
향기는 자연의 작고 하찮은 일부라 여길 수 있지만, 이
지구의 미래의 생명력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았다. 자연
사랑이 시의 첫걸음이라는 것을 부끄럽게 고백해본다.
시의 존재는 곧 자연 속에 나의 존재라는 것이리라.
나는 풀이고 바람. 내 눈도 코도 입도 혀도 마음도 흙냄새
나고 풀향기 나면 좋겠다. 땅에는 끝없이 풀이 자라나고 내
마음에는 끝없이 시가 자라난다. 풀이 소생하거나 죽거나
시가 소생하거나 죽거나 하는 것은 별다른 의미가 없다.
흰 구름 붉은 햇빛 속의 날이나 검은 구름 비 오는 날이나
하늘 밑에 땅 위의 날이기는 똑같다.
인간은 자연의 무한한 힘 속의 나약한 존재.
나는 나를 버릴 때 자연에 더 가까이 갈 수 있지 않을까
나를 버리지 못해 시를 또 쓰고 있지나 않은지.
호박돌에서 하늘 낚아라
우체국 집배원의 시
나는 집배 일을 하면서도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들고 눈길을 걸어서 깊은 소나무 숲에 들어가, 눈을 맨손으로 걷어내고 축축한 낙엽 위에 두 무릎을 쪼그리고 앉아, 호호 손을 불어가며 밥을 먹은 일이 더러 있었다. 그런 시간이 시를 만나는 내 가슴 속 장소다.
닳아버린 신발 밑창에서 해가 뜨고 지는 나날들, 피곤에 지친 말들을 보듬고 다듬고 위로하며 너덜너덜한 신발 밑창에서 발갛게 해가 뜨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작년에 이어 올해 또 독자들의 칼날 같은 평에 맞서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