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을 공부하다 보면 묘한 인연으로 만나게 되는 작품들이 있다. 그 연분이 깊어지면 마치 사랑하는 이를 만나고 싶은 것처럼, 꼭 실제로 작품을 감상하고픈 마음이 부풀어 오르기 마련이다. 연애편지에 동봉해온 사진만으로 짙은 그리움이 채워질 리가 있겠는가? 게다가 그림은 눈으로 감상하는 예술이기에 그림을 사진으로 보는 것과 일대 일로 눈앞에 두고 만나는 것은 사뭇 다를 수밖에 없다.
마음을 크게 울리는 작품과 마주칠 때마다 그렇게 시작되는 사랑의 열병은, 마음을 송두리 뺏겨버린 이를 이곳저곳으로 떠나게 만든다. 그리하여 이 책의 주인공인 여섯 점의 그림은 모두 글쓴이가 좋아하여 직접 만난 작품이다. 그리고 거기서 어떤 결정체를 얻게 된 것들이다.
1장 「추락」은 역사가 시작될 때, 그 어둠을 밝혀주는 신화를 주제로 하였다. 2장 「증인」은 인간의 삶이 끊임없이 쌓여 이루어진 역사를 거울에 비춘 모습이다. 3장 「낙원」은 인간의 운명과 내면을 예술로 승화시켜야 하는 예술가의 고뇌를 담았다.
4장 「심판」은 인간의 본능이며 필요인 종교를 선과 악의 이름으로 노래 부른다. 5장 「빛」에서는 인간을 만든 자연과 인간에게서 생겨난 신앙이 어우러진 모습을 그렸다. 끝으로 6장 「그늘」에서는 인간이 모여 있는 사회와 그 속에 사는 인간의 밝음과 어두움을 드러냈다.
일찍부터 둥지를 떠나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처음에는 멋도 모르고 떠난 길이었다. 미세한 가루가 차츰 앙금을 이루듯이, 어느덧 여행에서 만난 것들과 기억 속에 가라앉았다 다시 떠오르는 추억들이 어느 교과서보다 더 절실한 덩어리가 되어 가슴 속에 차 들어왔다. 그렇게 발길이 닿았던 곳의 한 곳이 시칠리아다. (여행을 시작하며_'달콤한 문명의 향기가 감도는 신화의 섬을 찾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