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마시면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를 만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목마와 숙녀를 찾다가 술병과 함께 쓰러질 때도 있었습니다. 쓰러진 나에게 목마는 와서 울어주지 않고 방울 소리만 울리곤 떠납니다. 숙녀 대신 주인아주머니가 나를 일으켜 세워준 적도 있었습니다.
나는 왜 그토록 술에 취해 있었는가
그것은 삶에 대한 갈증 때문이었습니다. 내 안과 밖에서 직접 겪고
목격한 분노와 화, 다툼과 갈등, 온갖 종류의 불화는 끊임없이 물음표를 만들어냅니다.
삶이 힘든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정말 인간답게 사는 길은 없는 걸까
무엇 때문에 우리는 돈에 집착하며 삶을 희생시키고 있는가
정령 조화롭고 균형 잡힌 삶은 불가능한 일일까
삶이 그렇고 그렇다면 살아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술병 속에서 목마와 숙녀를 불러내며 해답을 찾아 방황 했습니다. 비록 목마와 숙녀는 어떠한 구원의 메시지도 주지 않았지만 나는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아야 했습니다.
술에서 깨어 눈을 떠보면 발아래 낭떠러지가 놓여 있었습니다. 나는 삶의 벼랑 끝에 서서 주변을 살폈습니다. 놀랍게도 수많은 사람이 벼랑 위에서 풀잎처럼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우선 나 자신부터 구원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더 이상 삶의 골조가 무너져 내리기 전에 일어서야 했습니다. 안개가 가득한 낭떠러지 위에 서서 위태로운 순간을 경험할 때마다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해갈의 순간을 기대하며 쓰고 또 썼습니다. 흐린 날이 오면 슬픈 시
와 수필을 쓰고 맑은 날이 오면 기쁘게 글을 썼습니다. 그러나 글을
쓴다고 해서 삶에 대한 갈증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습니다. 뭔가 스스로 존재할 수 있는 삶의 주제(테마)가 필요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목마와 숙녀는 술병에서 나와 ‘가치’를 선물하고 갔습니다. 정말 반가운 일입니다. ‘가치’로 삶을 엮으니 해갈되기 시작했습니다. 우습게도 술병 속에 해답이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술병에서 목마와 숙녀를 만났다면 이 책을 펼친 분은 책 속에
서 목마의 방울 소리를 들으셨으리라 믿습니다. 삶이 버거워 벼랑이 보일 때 목마와 숙녀를 찾아 나서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목마와 숙녀가 있습니다. 목마를 탄 숙녀로부터 구원의 메시지를 전달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삶의 의미를 준다면 충분합니다.
삶은 영원한 숙제이며 우리는 그 미궁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럼
에도 우리는 어제까지 살아왔고 오늘을 살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내일을 살 수 있다면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았을 때입니다.
우리 모두는 오늘이 힘들어도 내일의 나를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이 책이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데 도움이 되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