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는 지난 수십 년간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며 세계 영화 담론의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성취의 이면에는 언제나 서사의 출발점이자 구조의 토대를 마련해온 시나리오 작가의 존재가 자리하고 있었음에도, 이들에 대한 비평적 혹은 학문적 조명은 놀라울 만큼 드물었다. 본서는 바로 그 ‘이야기의 기원’을 창출해온 시나리오 작가들을 중심으로 한국 영화의 또 다른 지형을 탐색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본서는 지난 십여 년간 필자가 발표해온 시나리오 관련 연구 논문들을 중심으로 재구성되었으며, 이를 단행본으로 정리함으로써 연구자로서의 마지막 작업이자, 이 분야 연구의 초석으로 남기고자 한다. 영화는 공동 창작물임에도 불구하고, 학계에서의 연구는 감독 중심의 작가론이나 완성된 텍스트에 대한 분석으로 치우친 경향이 있다. 특히 시나리오라는 독립된 매체나 작가 집단에 대한 체계적 분석은 아직 학문적 영역 내에서 충분히 확보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시나리오가 단지 영화 제작의 ‘중간 단계’로 간주되어온 산업적 위상뿐 아니라, 시나리오 작가의 창작 노동이 가시화되기 어려운 구조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한국 시나리오 작가에 대한 학술적 연구는 현재까지도 극히 제한적이다. 영화 텍스트나 장르, 내러티브 구조에 대한 분석은 일정 부분 축적되어왔으나, 그 서사의 출발점이자 생산 주체인 작가에 주목하는 연구는 거의 부재하다시피 하다. 이러한 공백은 한국 영화의 형성과 전개, 그리고 문화적 맥락 속에서 시나리오 작가가 수행해온 역할을 충분히 조명하지 못하게 만든다. 이 연구서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시나리오 작가를 중심으로 한 서사 생산의 조건, 미학적 실천, 그리고 산업 내 위치를 복합적으로 사유하고자 한다.
이 책은 시나리오 작가를 단지 ‘글을 쓰는 기술자’로 환원하는 관점을 넘어, 그들이 구성한 서사가 한국 사회와 대중문화 안에서 어떤 의미 작용을 수행했는지를 추적하는 비평적 실천의 일환이다. 이 연구가 영화학 내에서 시나리오와 작가에 대한 학문적 논의의 확대를 촉진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나아가 후속 연구들이 이 분야의 이론화와 자료 축적을 통해 더욱 심화되기를 희망한다. - 책머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