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는 기억 속에만 머무는 게 아니라 몸과 정신의 일부분으로 생생하게 영향을 주고, 함께 성장하고 변화하는 존재입니다. 이러한 트라우마가 보이기도 하고, 말도 걸어오는, 살아있는 캐릭터로 만들어지면 어떨까 상상하면서 이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토끼와 표범입니다. 표범이 바로 주인공 토끼의 유년시절 속에 어떤 기억들이 만들어 낸 ‘트라우마’입니다. 토끼는 일상과 꿈속에서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는 표범을 두려워하고 미워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가면서 토끼의 인생에서 새로운 만남들이 찾아오면서, 표범에 대한 시선이 점점 변화하게 됩니다.
《내 어깨 위 두 친구》는 이 둘이 유년시절부터 같이 성장하는 이야기입니다. 표범을 만난 적이 있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어쩌면 여전히 그 존재를 끊임없이 부정하며 사느라 한쪽 어깨가 무거운 모든 사람들에게 연대와 위로를 건네는 책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이 그림책이 세상에 나오다니.
순수하게 즐거워하며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무엇인지 잊을 때마다
14년 전의 습작을 엮은 이 책을 책장에서 꺼내야지.
어떻게 보면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말들.
어린 시절에 빗속을 뛰어다녔다거나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 내가 좋아했던 나무가 쪼개져 버렸다던가,
약해 보이지만 약하지 않은 새를 좋아한다거나 그런 것들.
그리고 눈을 빛내며 내 말을 듣고 있는 이에게서
어릴 때부터 가지고 있는 이상한 고집들,
어른들이 하지 말라고 했는데 하고 싶었던 것들,
그 사람의 나무는 무엇이었는지,
지금 숲을 등지고 떠나서 어떤 어른이 된 것 같은지,
이제는 무엇이 새롭게 무섭고, 무엇이 시시해졌는지,
어떨 때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는지와 같은 이야기가 듣고 싶다.
그런 하나도 쓸모없어 보이는 이야기를 몇 시간이고 나누었으면.
쏟아지는 비를 막을 수는 없다.
비가 내린 후 성큼 자라는 들풀처럼
눈에 빗물이 들어가도
휘휘 돌아가는 검은 하늘을 똑바로 바라보고,
담벼락의 벌어진 틈새로 무릎이 지저분해져도 씩씩하게 파고들어 가는,
그렇게 호기심 많고 용감한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고릴라의 손가락이 사람과 많이 닮아 있었다.
일부러 양손을 더 사람같이 그렸다. 닮은 것은 손가락만이 아닐 것이다.
고릴라의 얼굴을 가까이 두고 그리면서 그 천진난만한 표정을 보며 함께 웃었다.
숲에서 친구들과 함께 누워 있는 고릴라를 그릴 때는 조금도 서두르지 않았고,
붓털이 완전히 사라져도 눈치채지 못하고 빈 막대기로 계속 물감을 채웠다.
한쪽 무릎에 아이를 앉혀두고 한 페이지를 몇 시간씩 그렸다. 즐거웠다.
늘 동물을 위한 책을 만들고 싶었는데 이 노래가 운명처럼 찾아와 주었다.
이 모든 우연과 시간에 기쁘고 감사하다.
‘트라우마’는 기억 속에만 머무는 게 아니라 몸과 정신의 일부분으로 생생하게 영향을 주고, 함께 성장하고 변화하는 존재입니다. 이러한 트라우마가 보이기도 하고, 말도 걸어오는, 살아있는 캐릭터로 만들어지면 어떨까 상상하면서 이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토끼와 표범입니다. 표범이 바로 주인공 토끼의 유년시절 속에 어떤 기억들이 만들어 낸 ‘트라우마’입니다. 토끼는 일상과 꿈속에서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는 표범을 두려워하고 미워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가면서 토끼의 인생에서 새로운 만남들이 찾아오면서, 표범에 대한 시선이 점점 변화하게 됩니다.
《내 어깨 위 두 친구》는 이 둘이 유년시절부터 같이 성장하는 이야기입니다. 표범을 만난 적이 있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어쩌면 여전히 그 존재를 끊임없이 부정하며 사느라 한쪽 어깨가 무거운 모든 사람들에게 연대와 위로를 건네는 책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우연히 보게 된 기사 속 한 학생의 마지막 편지가 이 책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십 대 시절, 토끼였고 곰이었고 고양이였던 나에게,
이 책을 만들 수 있게 해 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고등학교 3년간, 반이 바뀌어도 쉬는 시간마다 자리로 찾아와서
어젯밤 보았던 영화와 책 이야기를 열심히 해 주었던 토끼에게
네가 해 주었던 이야기는 모두 상상력을 자극하는 근사한 이야기였다고,
넌 정말 특별한 친구였다고 말해 주고 싶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고독 속에 갇혀 있는 많은 아이들에게
그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귀한 존재인지,
진실한 마음으로 쌓아 가는 관계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제가 할 수 있는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저에게 용기를 주신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이 그림책이 세상에 나오다니.
순수하게 즐거워하며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무엇인지 잊을 때마다
14년 전의 습작을 엮은 이 책을 책장에서 꺼내야지.
어떻게 보면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말들.
어린 시절에 빗속을 뛰어다녔다거나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 내가 좋아했던 나무가 쪼개져 버렸다던가,
약해 보이지만 약하지 않은 새를 좋아한다거나 그런 것들.
그리고 눈을 빛내며 내 말을 듣고 있는 이에게서
어릴 때부터 가지고 있는 이상한 고집들,
어른들이 하지 말라고 했는데 하고 싶었던 것들,
그 사람의 나무는 무엇이었는지,
지금 숲을 등지고 떠나서 어떤 어른이 된 것 같은지,
이제는 무엇이 새롭게 무섭고, 무엇이 시시해졌는지,
어떨 때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는지와 같은 이야기가 듣고 싶다.
그런 하나도 쓸모없어 보이는 이야기를 몇 시간이고 나누었으면.
쏟아지는 비를 막을 수는 없다.
비가 내린 후 성큼 자라는 들풀처럼
눈에 빗물이 들어가도
휘휘 돌아가는 검은 하늘을 똑바로 바라보고,
담벼락의 벌어진 틈새로 무릎이 지저분해져도 씩씩하게 파고들어 가는,
그렇게 호기심 많고 용감한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가진다는 것'
많은 것을 가지고 싶다.
이미 많은 것을 가지고 있지만,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것을 온전하게 누리지는 못한다.
많은 것을 품고 아끼느라 더 많은 애를 쓴다.
'마음'은 어떨까?
무언가를 원하고 좋아지게 되는 것은 억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원하는 것을 찾았고 좋아하게 되었다면,
그런 마음이 생긴 그 자체로 감사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영원히 망가뜨리지 않고
소유하기만을 바라기 시작하면 걱정과 불안이 찾아온다.
그런 것은 시간이 지나고 보면, 항상 가장 중요한 일들은 아니었는데.
자리에서 일어나 옷장 문을 열자.
아끼는 예쁜 옷을 꺼내서 입고 나가
그 옷을 바람에 흔들리게 하고 비에 젖도록 내버려두자.
사랑하는 것을 아끼지 말고 마음껏 온전히 누리고 안아 주는 순간.
그 순간만이 시간이 지나도 영원히 내 안에 깊게 사라지지 않고 머무른다.
어쩌면 그 기억만이 내가 진짜로 가질 수 있는 전부가 아닐까?
몇 년 전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장례식 내내 울지 않았다. 감정이 메말랐던 건지,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때 내가 보인 행동들이 스스로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장례식 며칠 후 꿈을 꿨는데, 꿈속에서 아빠가 침대에 누워있다가 일어나서 식사를 했다.
꿈속에서 나는 걱정이 됐다. ‘저렇게 기력이 다 회복되면 어떡하지?
아빠는 이미 화장했는데, 돌아갈 몸이 없을텐데….’ 깨어나면서 나는 깨달았다.
나는 아직 현실로 아빠가 진짜 세상에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다.
작년에 버스에서 아빠가 자주 입던 주머니 많은 나일론 조끼를 입은 어르신이 내 앞에 섰을 때,
나도 모르게 그 넓적한 어깨에서 눈이 떨어지지 않았다. 뒤태가 너무 닮아 있었다.
그 어르신이 내 앞에서 문으로 내려가는 뒷모습을 쫓다가 갑자기 눈물이 난 것이 시작이었다.
‘아빠가 보고 싶다’라는 말이 이따금씩 생각도 하기 전에 무심코 혼잣말로 튀어나오기 시작한 것은.
어렸을 때부터 들었던 아빠의 돌 이야기를 나이가 들고 다시 생각해 보니 안쓰러웠다.
그 강물 속에서 어린 아빠는 앞이 잘 보이기는 했을까. 얼마나 무서웠을까.
하지만 그 무거운 돌 덕분일 것이다. 그 돌 덕분에 아빠도 나도 강물에 휩쓸리지 않았다.
내 어깨를 짓누르는 어떤 것들이 결국은 나를 단단하게 땅에 서 있도록 지탱해 주고 있다.
한없이 크고 강해 보이는 사람도 단단한 바윗돌 사이에 숨겨져 있는 부드러운 흙처럼,
마음속에 여리고 반짝거리는 어린아이를 숨겨 둔다.
아버지가 말보다 삶으로 보여주신 것처럼, 내 마음속에 굳어 가는 땅이 있다면 솎아 내고
그 자리에 부지런히 물을 줄 것이다. 그렇게 오래오래 천천히 자라나는 나무로 살고 싶다.
왜 쓰는지 모르는 채, 지난해 용기에 관한 글을 짤막하게 계속 쓰고 있는 나를 보았다.
아빠와 나눈 대화들이 돌아가시고 난 후 이렇게 글에서 책으로 엮어질 줄은 몰랐다.
그 글들이 모여서 무엇이 되었는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다만, 어떤 날은 조금은 덜 무겁기를.
마치 새것 같은 아침을 더 자주 맞이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