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두 번 조석으로 십 리 길을 걸었다.
여학교에서 퇴직 후 십 년 넘게 같은 길을 걸으며 자유의 게으름을 열심히 피웠다.
말하자면 무위(無爲)의 시간을 갖는 셈인데 다행히도 길에서 시를 만났다. 웃음을 만났고 울음을 만났다.
시와 만남이 빈번하면서 나름 분망한 생활을 했다.
이번 시집은 죽음에 관련된 시가 꽤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가까운 혈육들이 이런저런 지병으로, 혹은 급작스러운 병으로 내 곁을 떠나 하늘 먼 곳에 둥지를 튼 것이기도 하거니와 내 주변에서 낡고 삭아 소멸해 가는 물상(物象)에 대한 연민이기도 하다.
그런 탓에 슬픔의 농도가 짙고 눈물이 제법 많다. 내 심신의 일탈과 함께 한동안 고단한 일상이 이어졌다.
기도의 마음이 크다.
인생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시에 대한 열정은 큰데 비해 시적 긴장과 감수성은 자꾸 떨어진다. 총명함보다 어눌함 쪽으로 기울어가는 심신의 변화를 곳곳에서 느낀다. 그 변화를 거부할 생각은 없지만 왠지 쓸쓸하다.
지금은 순응의 시간이다.
시를 꽤 오랫동안 써 온 것 같은 데 이루어낸 시업(詩業)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서 68편의 시로 아홉 번째 시집을 묶는다.
옥상옥(屋上屋)이 될까 두렵다.
내 시의 무탈한 여행을 빈다.
2026년 5월 어느 날
누실(陋室)에서 저자
천분을 타고났든 안 났든 우리에게 문학의 길이 결정적인 것이라면 인생의 방향은 어쩔 수 없이 정해진 거나 다름이 없다.
문학의 길에 빠져 허우적대던 젊은 날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 길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걸 보면, 그래서 그 길을 걸을 도리밖에 없고 그 길에서만 인생의 보람을 느끼며 전전긍긍해온 일밖에 없다면 그 성과에 상관없이 우린 문학에 대해 최선을 다한 것이다.
시를 열심히 진지하게 살았다.
내가 심는 모든 꽃나무는 꽃이 피리라, 는 믿음 하나가 나를 여기까지 끌고 온 것이다.
꽃이 피었는지 안 피었는지 그것은 여전히 나의 숙제다.
이번 상재하는 일곱 번째 시집은 총 67편의 시를 4부로 나누어 구성하였다. 곳곳마다 만지면 터질 것 같은 슬픔이 참 많이 들어있다. 나의 삶이 그다지 실하지 못했음을 의미한 말이다.
그래도 등단 이래 밥 세 끼를 건사하며 가난한 붓을 놓지 않고 꽤 오랜 세월을 잘도 버텨 준 게 고마울 따름이다.
때가 맞지 않아 더디게 얼굴을 내미는 것들이 많다.
더는 미룰 수 없어 급한 마음에 서둘러 묶어 세상에 내보내긴 하지만 제대로 된 노릇과 행세를 할지 걱정이다.
먼길 떠나는 나의 시들의 무탈을 빈다.
2022년 5월 어느 날
지리산 아래 우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