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를 만났다기보다는 윤동주가 나를 찾아왔다고 말하고 싶다. 학생시절 윤동주는 우등생이기보다는 열등했고, 또래집단의 중심부라기보다는 주변부에서 성장했던 청년이었다. 그렇게 늘 비교열위에 있었던 윤동주는 ‘출세’가 아니라 ‘시인’이 되고자 했고, 시대를 앞서간 ‘성공한 인텔리’가 아니라 불의 앞에서 ‘부끄러운 청년’이 되고자 했던 ‘심약한 열사’였다.
나는 그런 윤동주가 좋았다. 심약해서 좋았고, 심약한데 제가 사랑하는 문학을 지키고, 문학 안에서 자신이 더 나약해지더라도 그 나약함을 믿고, 자신의 온몸을 쏟아 부어, 겨우 ‘시인’이 되려고 했던 그 작은 거인의 모습이 좋았다. 문학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시로 해결할 수도, 화해할 수도 없는 시대를 횡단하면서도, 남들보다 더 아파하고 남들보다 더 부끄러워할 줄 아는 ‘참된 지성’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그 ‘청년 정신’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