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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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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저자 > 문학일반

이름:신익선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 충남 예산

직업:시인 소설가

최근작
2026년 6월 <한국충청문인연구 2>

기침의 역사

다시 오래된 묵언을 폐기한다. 너희는 속히 사라지거라 저 아마득한 어둠의 골짜기에 쑤셔박혀서 기쁘게 몸을 태우거라 피어나라, 암흑의 사탄아 2024. 1. 5. 신익선

삶에 관한 백 가지 팡세

내가 평소 즐겨하던 산고랑의 밀어를 듣는 일이 더 이상 아늑하지 않다. 집 주위를 둘러싼 수 십 미터의 나무 터널들이 내쏘는 무한한 신비의 정취도 감흥이 없다. 올해 3월 하순, 평생 내 곁에서 나를 바라보시며 걱정하시고, 자주 웃고 즐거워하시던 어머니를 여의었기 때문이다. 이 일이 왜 내게 이리 아리고 절망스러운지 나는 신록이 짙푸른 이 팔월에 이르도록 눈물을 달고 산다. 그런 까닭인가. 이즈음에 이르러 세상사가 다 부질없음을 절감한다. 건강이니, 돈이니, 명예니, 무슨 업적이니, 큰 집이니, 고급자동차니, 맛있는 음식이니, 심지어 분투의 집필까지, 허무만을 더친다. 이 와중에서 나는 은사의 가르침을 따라 올해 정월부터 써오는 한 줄 시 쓰기를 계속해 왔다. 이는 시적 세계가 갖는 정취인 시상詩想 즉, 포에지(poesie) 연마를 통한 포엠(poem)을 배워가는 시적 명상의 일환이다. 굳이 책 제목을 팡세라 이른 것은 이 책의 대부분이 명상에 닿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창작이야말로 이 혼란하고 혼탁한 땅에서 내가 붙잡고 가야할 마지막 나의 나무이다. 또 문학이야말로 내가 굳건히 견지해야 할, 지상地上의 어리석은 한 사내, 천상天上의 한 순결한 문인이 갖는 세상에의 마지막 순수이자 도전이며 꿈이다. 여름철, 함석지붕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유정하다. 유년기부터 나는 이 소리를 들었다. 늘 옆자리 계시던 그리운 어머니의 체온을 회상하며 이제 고요히 내 자리에 앉는다. 단지 그뿐, 비 젖은 산안개가 숲을 덮으며 쓸쓸히 나를 지워간다. 2013. 8. 10

시로 쓴 일대기 매헌 윤봉길 3

서문 갓 스물다섯 살에 운명한 연륜 탓이기도 할 것이다. 매헌 탄생 일백십오년에 이르렀는데도 매헌의 시문학과 종교, 철학과 사상 등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고 있다. 매헌 의거가 정신의 산물이란 점도 간과된다. 시인, 교육자, 농촌계몽운동가, 독립열사의 삶을 영위케 한 삶의 근저에는 오치서숙의 청년기에 다져진 시문학, 농촌계몽론, 자주독립론, 무력투쟁론, 자유평등론 등의 매헌정신이 있다. 그 원형질을 짚어보는 일, 이 시집은 그를 뼈대로 집필한 글이다. 실제로 홍구공원 의거라는 위업을 견인한 것은 매헌정신의 발현이다. 눈으로 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매헌의 발자취를 살피며 매헌이 추구한 정신의 궤적을 살피는 일을 매헌의 사상탐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십 대 후반과 이십 대 초반, 그 풋풋한 청년기에 펼친 야학과 시 창작, 농촌 계몽운동, 사상 정립 등은 깨어있는 혼과 불타는 이상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고향에서 매헌의 주된 일과는 농사일이었다. 목바리 농촌에서 매헌은 온종일 농사일을 하였다. 그러면서 쉴 새 없이 자신의 혁신을 도모했다. 청년 매헌은 생동하는 의식을 사상화하였다. 약관의 나이에 뜻을 세워 나아간 일대기는 비범한 인물이기에 가능하였다. 이 시편들을 써가면서 매헌의 위대성을 깨닫고 숙연했다. 밤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현관 밖을 잊고 글을 썼다. 특히 아직 연구되지 않았으나 삼백 편이 넘는 매헌의 시 창작은 놀랍다. 청년기에 이러한 시 창작은 한국 국문학사에서 전무후무한 일이다. 왕성한 창의성의 발로인 매헌 시 정신과 서로 어우러져 정립된 사생취의정신, 민족독립정신, 자유평화정신 등이야말로 매헌사상의 정수이다. 실로 단군 이래 초유의 국권 상실에 처하여 조국광복을 추구한 매헌의 상해 의거는 매헌 사상의 결과였다. 매헌의 민족독립 사상은 장차 분단된 조국의 통일로 귀결될 것이나 매헌의 삶은 그 자체로 한국 역사와 민족정신의 신비로운 창조였다. 매헌의 삶이 곧 한국의 근대사인 것이다. 하여 매헌은 그 자체로 민족의 고귀한 자산이다. 조국 통일의 미래를 담보하는 거룩한 동력이다. 그러한 관점 하에서 이 글을 썼다. 장차 이 글이 매헌을 기리는 데 쓰이길 빈다. 2023. 10.

시로 쓴 조선의 레전드 추사 김정희 1

추사 김정희 선생 출생 시 조선의 내외정세는 이미 불꽃 튀는 격동기였다. 서구열강이 쉴 새 없이 개화의 깃발을 펄럭이는데도 오로지 왕만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고 있던 때였다. 이른 봄철 산비둘기 울음 길동무 삼아 화전민으로 전락한 백성들이 귀엽고 예쁜 그들의 어린 것들을 생으로 굶겨 죽이고는 반실성하여 헛소리하다 뒤따라 죽기 예사인 시절이었다. 그나마 제왕다운 풍모가 강하던 정조가 급서하자 국운이 쇠퇴 일변도로 기울기 시작했다. 나라를 움직이는 조정신료들은 당쟁에 급급한 나머지 국가의 근본인 백성들 살림살이를 걱정할 겨를이 없었다. 순조 등극 후부터 대왕대비가 수렴청정하는 조선왕조의 부귀는 온통 권신權臣들 차지였다. 왕실과 세도문중, 양반, 심지어 고을 아전들까지 합세하여 백성 고혈 빨아먹으면서도 소득 산업인 상업을 가장 천시하여 실질을 저버렸다. 반상班常이 극심한 양반사회에서 신분제도는 엄격하였고 형벌은 무거웠다. 사회지도층은 소득 없이 공리공론을 일삼아 하루도 끊일 날 없는 당쟁의 폐해로 날로 텅 빈 국고의 한숨이 퍼져나갔다. 이 글은 당리당략에 치우쳐 변화와 개방, 개혁을 등한시하여 혼란하였던 조선후기를 시대상으로 하여 정치가와 예술인으로서 한 시대를 풍미하였던 추사를 주인공으로 쓴 시집이다. 예산에서 태어나 한양 월성위 문중을 이어받은 추사의 삶을 조망한 글이다. 운명이라 해야 하나? 추사는 스스로를 죄인이라 불렀지만 추사는 윤상도 상소와 관련이 없었다. 그 어떤 죄도 없었다. 죄가 있다면 세도정치였다. 추사를 고문하며 36대의 곤장을 친 형장과 제주도 위리안치 및 북청 유배는 당시 권력층의 몫이어야 옳다. 그러나 이는 끝내 혁파되지 않았다. 이 폐단의 지속은 결국 일제의 조선침략으로 귀결되었지만, 세도정치는 당대 조선국에서 이미 학예의 최고 경지에 이르렀던 추사에게 엄청난 불운이었다. 허나 불후의 업적인 세한도와 추사체 정립 등의 빛나는 예술세계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불운이 모태가 되었다. 이 시집은 그러한 추사의 궤적만을 살펴 쓴 시집이다. 다음권에서 추사의 진면목에 해당하는 학문의 위대한 성취 및 추사체와 추사의 예술세계를 살펴 완결지을 것임을 밝힌다. 모쪼록 작은 이 시집이 불요불굴의 정신으로 시, 서, 화, 경학, 감상, 금석학, 고증학, 불교학의 새 역사를 개척한 추사 김정희 선생을 기리게 되길 빈다. 더하여 일대의 통유通儒, 우리 온 겨레의 혼불이신 추사 김정희 선생을 만나 뵙는 글이 되길 염원한다. 2024. 5. 산정 신익선 識

시로 쓴 조선의 레전드 추사 김정희 2

추사 선생은 먼 시대 인물이 아니다. 불과 이백삼십여 년 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나 정치가로 입신하여 두 차례 유배를 당하셨으나 특유의 기품으로 추사체를 정립하셨다. 이 글은 선생의 학문과 예술세계의 극히 일부분을 살펴 쓴 시집이다. 천단淺短하기 그지없다. 추사 예술세계의 특장은 학예일치學藝一致의 예술관과 법고창신法古創新의 기저에 다져진 추사의 고매한 인격에 있다. 추사의 경이로운 예술일체는 각고의 노력과 함께 추사의 고결한 인격이 빚어낸 산물이라는 점이다. 가혹한 역경과 환란에 결코 굴하지 않은 투혼의 결과이기도 하다. 추사, 진실로 추사야말로 그 누구와도 비견키 어려운 참된 인격자, 참된 예술인으로서의 선경의 모본, 그 자체이다. 현재 경기도 과천이나 제주도 대정마을, 고향 예산에서 추사를 기리는 행사가 다채롭다. 세 곳 모두 웅장한 박물관이 서 있다. 특히 추사에 관한 작품집들이 무수히 많다. 면구하다. 예산, 나의 향리에서 늘 뵙는 선생의 생애를 경홀히 지나쳤다는 생각이다. 부족한 이 글은 그에의 결과물이다. 이 시집을 쓰면서 절감한 사실이 있다. 우리 한민족 역사에서 선생처럼 시, 서, 화, 금석문, 경학, 고증학, 불교학, 감상, 등등에 있어 당대에 이미 청나라를 압도하고 학예의 최고경지를 개척한 예술인은 없다는 심혼의 공명이다. 너무나 놀라운 일이다. 그러한 일대의 통유通儒, 추사의 삶과 예술과 사상을 살펴 시편으로 쓰기란 두려운 일이다. 나같이 무른 독필禿筆이 어찌 한 민족 오천년 역사에서 최고 걸출한 예술인을 조망한단 말인가. 심히 부끄러운 일이지만 동향同鄕아닌가. 오로지 이에 빗대어 떨며 펜을 잡는다. 고택 근처에 주택을 마련하곤 수없이 고택엘 간다. 갈 때마다 선생 묘소에 절 올린다. 그건 수시로 내가 공公께 올리는 제사다. 무릎 꿇고 삼가 절 올리며 반야般若의 업을 닦으신 추사 예술혼의 분기奮起를 빌고 빌면서 한 없이 미흡한 이 시편들을 썼다. 원컨대 선생이시여, 부디 시간층위 뚫고 무덤에서 일어나시라. 예전처럼 다시 붓 잡으시고 꼿꼿한 지조와 기개, 불요불굴의 정신력과 불타는 예술혼으로 오시라. 오셔서 영혼의 새벽 등불 밝혀 혼돈의 이 나라와 아름다운 우리 예산을 비추시라. 추사여, 겨레의 혼불이시여! 2024. 5. - 서문

시로 쓴 조선의 레전드 추사 김정희 3

| 서문 | 추사께서 추구한 예술의 궁극은 법고창신法古創新이다. 이는 철저한 학습과 오랜 수련을 통하여 전통적인 법식을 체득한 후 자신의 인격적 성취가 내화된 문자향·서권기의 정신성을 발현시킨 새로운 형태의 예술방식을 의미한다. 추사는 우리 역사에서 처음으로 학예일치를 주창하셨다. 예술작품 창작을 성학聖學의 격물치지格物致知와 같이 마음을 전일하게 하여 도(학문)를 수행하고 실천하는 통일체라 보았다. 기존의 예술관과는 다르다. 이러한 추사의 예술관은 한 마디로 그 어떤 창검보다 예리하고 그 어떤 역사보다 극적인 서사를 품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이루시기까지 죽음에 필적할 좌절은 새로운 출발점이었다. 차마 형용 못 할 고뇌가 있었기에 시도, 서도, 화도의 예도禮道를 일신하여 독특한 예술적 성취를 이루셨다. 이로써 존엄을 세우셨다. 예술, 예술작품이란 결국 자연스러운 흥취와 고도의 정신세계가 합일하여 그 기세와 생명력의 분기奮起로 감동을 주는 일임을 몸소 보여주신 것이다. 이 시집은 추사의 예술작품인 시·서·화를 읽고 감상하여서 얻은 영감靈感을 ‘시’로 재구성하여 추사 작품이 울리는 공명共鳴을 ‘시’라는 용기에 담은 것이다. 추사 글을 읽고, 추사 서화를 본 느낌을 작시作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도 극히 일부분의 추사 작품에 국한된다. 재론하면 추사의 예술작품에 의거하여 미미하게나마 추사의 예술세계를 살펴본 졸고拙稿인 것이다. 또 이 시집이 추사의 시 한 편, 붓 한 획에도 못 미침이야 굳이 말하여 무엇 하겠는가. 그렇더라도 미흡한 이 시집이 추사예술의 위대한 가치를 널리 알리는 데 조금이나마 소용되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2024. 5. - 서문

시로 쓴 조선의 얼 면암 최익현

면암勉菴의 특성은 상소上訴다. 고종께 올리는 상소는 무려 40여 년간 지속 했다. 조선 조정에 대하여 자기 개혁을 요구하는 상소였다. 둘째 특성은 호남 의병을 일으켜 민족운동의 선봉에 섰다는 점이다. 거병 열흘 만에 체포 되어 일본으로 압송되었으나 후회하지 않았다. 세 번째는 평생 견지한 절의와 기개였다. 이는 훗날 한 말의 항일 의병 운동과 일제 강점기 민족 운동, 독립운동의 지도 이념으로 계승된다. 더하여, 평생 배우고 터득한 학문을 의병 운동이라는 실제 행동으로 실행한 면암의 면모는 조선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면암의 사상과 이념은 훗날 구국애국 사상 및 민족주의 사상으로 승화되어 상해 임시 정부를 이끌던 김구 주석을 비롯한 독립지사들의 정신적 지주로 존경과 흠모를 받기에 이르렀다. 특히 면암의 일본 대마도 순국이야말로 민족을 위한 순교殉敎였다. 죽음으로써 면암은 자신의 생애 자체를 조선 역사로 바꾸었다. 놀라운 반전이었다. 모쪼록 이 작은 시집이 구한말 불멸의 위인偉人이자 지금도 살아 숨 쉬는 면암을 널리, 오래, 기리는 계기가 되길 소망한다.

얼굴 없는 자화상

하나 같이 숨기고 싶은 부끄러운 나의 고백들이다. 더구나 거기엔 얼굴이 없다. 이를테면 얼굴 없이 살아온 나의 자화상인 셈이다. 거듭 나의 삶 속에 내가 없음을 발견하곤 놀란다. 속상한 일이다. 이쯤 되면 이름 없는 산골짜기에서 눈물에 짓무른 눈가를 부비며 살아가는 것보다 아름다운 삶이 어디 있으랴. 여전히 타오르는 동백의 불꽃 때문일까. 눈을 들어 바라보는 칠월의 아침이 유정하고 신비롭다.

예산아리랑

이정이란 말 자체 단어 자체를 터부시 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것은 역사를 역사로 바로 보지 못하는 맹목의 우화일 수 있다. 좌, 우익의 이데올로기는 여울목 역사의 한 단면이 아닌가 한다. 이 역사의 거울에 제 현상들과 스스로를 비춰보는 일은 누구나 가능하다. 나는 이정이 태어난 예산에서 태어나 살아가고 있는 인연으로 무익하나마 부득불 시詩라는 그릇에 이정을 그려 보았다. 이는 이정의 삶의 자취를 근저로 기술된 치졸한 글이지만 장차 도래할 해방공동체의 실체적 현실을 염두에 두었음도 밝힌다. 서술 일변도의 행태가 많은 것은 시적 소양의 미숙함 탓이다. 고달파도 무릇 시인의 대지엔 이미 통일이 온지 오래라고 생각하며 이 땅의 민중들이 통일의 대지에서 훨훨 날고뛰는 날을 그려본다.

한국충청문인연구 2

글은 개인이 쓰는 것이지만 그것이 역사적인 인물 묘사나 시대적 사건을 기술하기 시작하면 그 순간부터 작품의 성향은 공적인 질료로 변환한다. 이 부분에서 특히 시 창작의 전문성이나 시심의 창의성이 요구됨은 상식이다. 책의 서두, 첫머리에 왜 이런 서사를 먼저 거론하는가 하면 지금 한국 시단에 아무렇지 않게 기술되는 함량 미달의 시집발간이 난무하는 까닭이다. 개인의 예술적 서사가 아닌 역사적 인물의 서사가 완전히 오독, 오판, 오류임에도 이런 작품을 평하는 해설이나 표4의 글에는 온통 휘황찬란한 수사가 비단 장식처럼 반짝인다. <중략> 도무지 시 공부하지 않고 용감하게 저질의 시집발간에 혈안이 된 문학판에서 성실하고 진실하며 치열하게 글 밭을 일궈온 일군의 충청 시인 그룹을 강호에 선보인다. 서울을 거점으로 한 중앙문단에서 눈길 주지 않은 충청지역의 빛나는 시인들이다. 인물, 플롯, 시점, 배경은 비단 소설에서만 소용되는 분야가 아니다. 시 창작에도 유익한 덕목이다. 우리 충청 문인들이, 장르 파괴, 하이브리드(Hybrid) 시 창작, 소설 같은 짧은 시, 시일 수밖에 없는 소설을 구상하고 쓰는, 과감한 문학 프레임 탈피를 염두에 두고 오로지 전문적 지식을 갖춘 시 창작에만 매진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가나다별 l l l l l l l l l l l l l l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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