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글을 쓸 때 어떤 주제를 분명하게 정해 놓고 시작한 적은 없다. 이야기의 출발점이 되는 것은 언제나 머릿속에 문득 떠오르는 한 인물이다. 그 인물은 내 손을 덥석 잡고 이야기 속으로 나를 끌고 간다. 《레나의 비밀일기》은 그렇게 쓰게 되었다. 혼자 있기 좋아하고, 내성적이며, 부모의 정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친구가 없어서 괴로워하는 이 소녀에게 나는 단숨에 빠져들었다.
스스로 옳고 그름을 가릴 줄 알고 당연히 누려야 할 행복을 열심히 찾아가는 레나, 그런 레나와 함께 하는 일은 내게는 한없는 기쁨이었다. 나는 레나가 가는 길 곳곳에 덫을 숨겨 놓았지만, 레나가 반드시 뛰어넘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작가는 다소 위장을해서라도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작품 속에 풀어 놓는다. 그래서나도 망설이지 않고 고등학교 시절 마지막 2년 동안 보냈던, 청소년기에서 가장 빛나는 추억이 담긴 기숙사 생활을 이야기 속에반영했다. 물론 나는 레나와 달리 기숙사 생활에 어려움은 없었다. 마린 역시 하나부터 열까지 꾸며 쓴 인물은 아니다. 안티고네는 고등학교 때 배운 장 아누이(20세기 중엽의 프랑스 극작가-옮긴이)의 희곡이고, 그 여주인공의 이름인데, 난 그녀의 성격, 정신력, 당당한 태도에 반해 몇 년 동안 나의 우상으로 삼았었다. 그래서 안티고네를 본보기로 삼아 레나를 그려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