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에게
이 책의 제목인 곡산谷山은 산골짜기라는 말이다. 과거에 한센병에 걸리면 부모형제, 일가친척에게 버림을 받거나 그들을 떠나야 했다. 갈 곳이 없는 이들이 유랑하며 아프고 불편한 몸으로 모여든 곳이 인적이 드문 산골짜기였다. 그곳에서 그들은 움막을 짓고 모여 살면서 함께 생활하던 이들끼리 서로를 곡산이로 부르던 것에서 이 이름이 유래되었다.
이 책의 이야기는 1930년대에 실제로 있었던 일들이 담겨 있다. 즉 지금으로부터 80여 년 전의 일이니 독자들은 이해가 다소 어려울지 모른다.
과거의 나는 자의든 타의든 성공이라는 외줄만을 바라보고 살았다. 그렇게 내 모든 힘을 다 바쳐 성공줄을 오르고 오르다 보니 내가 그리도 바라던 길이 보이는가 싶었다. 그러나 곧 불행이라는 운명의 칼날이 찾아와 예고도 없이 나의 성공줄을 끊어버렸다. 그렇게 앞만 보고 달려온 나는 천 길 낭떠러지 수렁에 추락하고 말았다. 나는 가뿐 숨을 헐떡이면서 절망과 좌절 속에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어디를 보아도 꿈같던 지난 일들은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고 나는 허무와 공허를 느끼며 사망의 포로가 되어 죽음의 기로에 서 있었다.
그런데 그때, 나는 비로소 새 생명의 줄을 찾았다. 주님이 나에게 주신 생명줄! 그리고 나는 그 생명줄을 꽉 움켜쥐었다. 이 얼마나 기쁜 일이었던가.
꿈도, 희망도, 재물도, 모든 것이 사라졌다. 깨어진 거울이 되어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나의 모습만이 남았고 성공이란 노예의 속박도 없어졌다. 세상에 알몸과 같은 상태로 남겨진 나에게 내려진 생명줄은 참으로 생각할수록 귀하고 묘한 것이었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한센병에 걸렸기에 이곳 소록도로 오게 되었고, 동료들을 만나 주님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만난 주님의 은혜 가운데 구원의 길을 찾게 된 것이다. 육신의 고통과 좌절을 통해 내 영혼이 구원을 받았고, 내 삶이 기쁨과 소망으로 바뀌어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의 은혜를 깨달았다.
이제는 나를 풍성하게 채워주신 주님의 생명줄만 바라보고 살게 되었다. 그런데 그 삶 가운데 내가 꼭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니 그것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인간으로 태어나면 대개 사람들은 사랑으로 시작해 사랑으로 끝나는 삶을 산다. 우리 인간의 본질은 빛이요, 생명이요, 사랑 그 자체이다. 우리가 태어나면서 가지고 나온 그 생명, 그것이 바로 사랑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생존하는데 숨을 쉬게 하는 공기가 필요하고, 우리 몸에 70% 이상의 물이 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에 사랑이 없으면 태어날 수도, 살아갈 수도, 장례를 치를 수도 없다는 것이 불변의 진리이다.
이처럼 삶의 기본이면서 귀하고 소중한 사랑이건만, 사랑은 저버리고 물질 만능과 향락에 도취되어 그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사실 요즘 사회와 가정에서 남녀노소 모두에게 보여지는 잘못된 사랑의 유형이 얼마나 많은가?
사랑은 어떠한 형태이든 정상적인 상태에서 변질되어 가고 있다. 사랑을 하기는 쉬워도,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지키고 실천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그러나 사랑을 책임지고 지켜나가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 아니겠는가.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전 13:4-7, 13
위의 구절과 같이 모든 것 중에 사랑이 가장 중요하고 으뜸이다. 그렇게 소중한 사랑을 잘 지키고 실천하라고 하였다.
그렇게 운명적으로 이루어져서 실천한 진실한 사랑, 얼마든지 자기 혼자만의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모든 조건을 포기하고 그 사랑의 약속을 지키려고 버려진 그 섬으로 자진해 들어가 희생적인 사랑을 실천한 사건! 바로 그런 사랑의 일말을 독자들이 느끼기를 소망하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