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대비 신정왕후를 고종의 ‘크리에이터’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그야말로 고종을 만들어 낸 사람이라는 뜻이다. 조대비가 없었으면 고종도 없었을 것이다. 조대비는 왜 고종을 선택했을까? 그 선택이 조대비에게는 어떤 이익을 가져왔을까? 또다시 아들이 생기고 두 번씩이나 왕의 어머니가 될 수 있는 기회. 왕의 어머니로서 왕을 선택할 수 있는 대비권은 대단히 특별한 권한이다. 한중일 3국 중 조선이 가장 강력해 보인다.
조대비가 경복궁 재건 합의를 이끌어 내는 장면에서는 통쾌함까지 느꼈다. 이제까지 대원군 위주였던 경복궁 재건 문제를 보기 좋게 사실은 그 주체가 조대비 신정왕후였다고 말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또 순원왕후가 왜 굳이 항렬까지 흔들면서 철종의 어머니가 되고자 했는지도 이해할 수 있었다.
결국 책 제목은 ‘왕비와 대비’가 됐다. 왕비를 의도했지만, 대비에 무게가 더 실렸다. 이 책이 대비의 역할을 새롭게 보여줄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더해야 할 것이 물론 많지만, 그것은 추후에 내가 혹은 누군가가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부족한 책이지만, 조선 여성사의 한 특징을 보여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이것이 사는 것이구나. 그리고 그것은 조정의 정치 상황 못지않게 의미 있는 역사가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왜 공자가 “밭을 갈아도 굶주림이 있지만, 할 것이니까 할 뿐이다(耕也?在其中 惟理可爲者 爲之而已矣)”라고 하고 영화 「물랭루주」는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Show must go on)”라고 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삶이란 굶주림이 있어도 유장하게 계속된다. 그 속에 있는 우리들은 얼핏 개별적인 삶을 사는 듯 보이지만, 역사로 남는다. 그리고 그 역사는 후대의 누군가의 공감으로 빛이 날 수 있다. 역사 때문에 우리의 삶은 미미해지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역사가 위로가 되는 이유이다. 부디 나에게 흥미로웠던 조선 사람들의 사연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재미있는 이야기이자 공감이나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