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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역사

이름:신복룡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 충북 괴산

최근작
2025년 6월 <한국분단사 자료집 세트 - 전6권>

전봉준 평전

나는 왜 이 책에 애정을 갖는가? 나는 『전봉준 평전』을 내가 이 세상을 살다 간 흔적으로 남기고 싶고, 혹시라도 나의 책들을 읽은 사람이 있다면 나는 이 책의 저자로 기억되고 싶다. ……다른 책들은 세월이 흐르면 나보다 더 훌륭한 학자가 나타나 더 훌륭한 글을 남기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경우는 다르다. 후대의 역사학자들이 전봉준을 쓸 때 나를 밟고 넘어가지 않고서는 이보다 더 세밀한 글을 쓰기 어려울 것이다. 이는 내가 학자로서 대단한 인물이어서도 아니고, 문필이 대단해서도 아니다. 다만 딱 한 가지, 나는 시대적으로 갑오동학농민혁명을 몸소 겪었거나 전봉준을 만났던 인물의 증언을 들을 수 있는 마지막 세대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 책에서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망국의 아픔을 겪으면서 그 시대의 지도자들은 무슨 생각을 했고, 무슨 방략과 의지를 가지고 있었던가? 공부를 하면 할수록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궁색해진다. 그런 상황에서 그나마 조국을 지탱하려고 목숨을 바친 분들이 있었다. 그들 가운데 나는 전봉준을 주목했다. 그는 조국의 운명을 책임져야 할 지배층도 아닌 한낱 시골의 서생에 지나지 않았으나 춘추대의를 위해 죽었다. 나는 그의 삶을 증언하고 그 이야기를 후대에 들려주고 싶어 이 책을 썼다.

한국 분단 보고서 2

“만약 …… 했더라면”이라는 식의 논리 전개는 역사학을 공부하는 학자들로서는 수없이 부딪치는 가설이면서도 때로는 무의미하고 허망한 자문(自問)으로 그치는 경우가 흔히 있다. 특히 한국의 해방정국사를 공부하다 보면, 하필이면 그 여러 가지의 선택적 수순 가운데 유독 불행한 쪽으로만 흘러간 사실을 읽으면서 아쉬움, 회한, 그리고 끝내는 분노로 붓을 놓고 망연자실할 때도 있다. 예컨대, “분할선이 39°선이나 40°선이었더라면……,” “미국이 소련의 대일전 참전을 요구하지 않았더라면……,” “차라리 신탁통치를 수락했더라면……,”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되지 않았더라면……,” “한국전쟁 당시 북위 40°에서 북진을 멈췄더라면……,” 등등의 가정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가정들은 한낱 지난날의 아쉬움일 뿐, 역사는 어떤 면에서는 이미 그렇게 갈 수밖에 없도록 운명지워진 냉혹함이 있었다. 이 책에 실린 미국의 정책 보고서들은 위에서 제시된 역사적 가정에 대한 대답을 주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문서는 주로 미국연방문서보관소(NARA)에 보관된 한국 관계 문서 가운데 미군정 기에 미국이 실시한 대한 정책의 성격을 구명하는 자료로 구성되어 있다. (역자 서문 中)

한국정치사상사 - 상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억눌린 무리와 잊힌 무리에 대한 연민의 끈을 놓지 않았다. 무어Barrington Moore의 주장처럼, 나는 “역사의 패배자에 대한 연민”을 강렬하게 가지고 있다. 역사가를 배출하지 못한 계급은 그 공적에 관계 없이 역사의 주제가 되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나는 견딜 수 없었다. 그가 묘청妙淸이든, 신숙주申叔舟든, 김성일金誠一이든, 원균元均이든, 아니면 힘없는 소작농이든 간에, 역사의 패배자를 위해 변론해주는 것이 배운 값을 하는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나는 이 글을 쓰는 동안 선조들의 숨결을 피부로 느끼고 싶었다. 헤로도토스Herodotus가 그랬듯이, 나는 사상사를 발로도 써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역사가에게는 현장감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오래 전 ��전봉준평전��을 쓸 때부터였다. 나는 고려 불교의 숨결을 느끼고자 해인사海印寺 장경각藏經閣을 찾았고, 강화도의 마니산摩尼山 참성단塹星壇과 정제두鄭齊斗의 묘를 참배했고, 강진康津의 다산茶山 유배지를 돌아보았으며, 북경北京에서 마테오 리치Matteo Ricci의 유적을 찾아보았으며, 김옥균金玉均의 체취를 느끼고자 그의 옷과 머리가 묻혀 있는 일본 도쿄東京의 진조지眞淨寺를 참배했다. 나는 그곳들을 찾아볼 때마다 그분들의 도움[陰佑]을 빌었다. - 서문중에서

한국정치사상사 - 하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억눌린 무리와 잊힌 무리에 대한 연민의 끈을 놓지 않았다. 무어Barrington Moore의 주장처럼, 나는 “역사의 패배자에 대한 연민”을 강렬하게 가지고 있다. 역사가를 배출하지 못한 계급은 그 공적에 관계 없이 역사의 주제가 되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나는 견딜 수 없었다. 그가 묘청妙淸이든, 신숙주申叔舟든, 김성일金誠一이든, 원균元均이든, 아니면 힘없는 소작농이든 간에, 역사의 패배자를 위해 변론해주는 것이 배운 값을 하는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나는 이 글을 쓰는 동안 선조들의 숨결을 피부로 느끼고 싶었다. 헤로도토스Herodotus가 그랬듯이, 나는 사상사를 발로도 써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역사가에게는 현장감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오래 전 ��전봉준평전��을 쓸 때부터였다. 나는 고려 불교의 숨결을 느끼고자 해인사海印寺 장경각藏經閣을 찾았고, 강화도의 마니산摩尼山 참성단塹星壇과 정제두鄭齊斗의 묘를 참배했고, 강진康津의 다산茶山 유배지를 돌아보았으며, 북경北京에서 마테오 리치Matteo Ricci의 유적을 찾아보았으며, 김옥균金玉均의 체취를 느끼고자 그의 옷과 머리가 묻혀 있는 일본 도쿄東京의 진조지眞淨寺를 참배했다. 나는 그곳들을 찾아볼 때마다 그분들의 도움[陰佑]을 빌었다. -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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