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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역사

이름:김장수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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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7월 <엘리자베트>

1848 독일 혁명

국내 서양사학계, 특히 독일사학계는 독일권의 통합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3월 혁명에 그리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러한 연구 성향에서 확인되는 것은 3월 혁명이 독일 근대사 서술에서 서너 쪽으로 제한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렇게 국내 독일사학계에서 간단히 취급되는 3월 혁명은 19세기 독일 및 유럽 근대사에서 적지 않은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독일의 통합 과정을 객관적이고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3월 혁명을 도외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3월 혁명 기간 중 제시된 일련의 정치개혁과 독일의 통합 방안이 독일권의 실세였던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에 의해 거부되었지만 이들 양국 역시 개혁 및 통합의 필요성을 인지하면서 그것의 실현에 필요한 여러 정책도 본격적으로 추진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필자는 3월 혁명에 대한 체계적인 서술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하게 되었고 그동안 가지고 있던 자료들과 최근에 구매한 전문서들을 토대로 이 혁명을 다룬 단행본의 집필도 계획했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을 통해 필자는 그동안 등한시된 3월 혁명과 이 혁명 이후 구축된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의 양강 구도 및 거기서 파생된 양국 간의 전쟁과 그것에 따른 독일 통합에 관한 연구가 보다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 본서에서는 우선 메테르니히 체제가 정립된 이후 시작된 독일의 통합운동을 개괄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이어 1848년 메테르니히 체제가 붕괴한 이후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을 비롯한 독일 여러 국가에서 진행된 혁명적 상황을 거론하도록 한다. 아울러 1848년 5월 18일 개원한 프랑크푸르트 국민의회의 활동과 업적에 대해서도 언급하도록 한다. 끝으로 3월 혁명이 실패하게 된 제 이유에 관해서도 확인하도록 한다. - 책머리에

독일제국의 탄생

오토 대제 이후 약 천 년 동안 국가의 명맥을 유지하던 신성로마제국은 1806년 10월 14일 예나-아우어슈테트 전투에서 나폴레옹군에 격파됨에 따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후 제국의 영토는 나폴레옹의 보호국이 된 라인연방, 호엔촐레른의 프로이센, 그리고 합스부르크의 오스트리아로 분할되었다. 1815년 빈 회의 결정에 따라 등장한 독일연방은 독일 민족의 기대와 달리 35개의 대소 국가와 4개의 자유시(Freistadt)로 구성된 엉성한 정치 체제여서 독일의 지식인 계층과 대학생들의 불만을 샀다. 1830년 프랑스에서 발생한 7월혁명의 영향으로 통일의 필요성은 독일인의 관심사로 대두되었고, 1848년 3월 혁명 이후에는 독일 전역에서 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시위까지 일어났다. 1848년 5월 18일 프랑크푸르트의 성 파울 교회에서 활동을 시작한 국민의회의 주된 과제는 독일연방을 하나의 통일국가로 변형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형성된 개별 연방 국가를 그대로 둔 채 강력한 중앙 권력을 창출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고, 통일 방안에 대한 의원들의 의견 역시 일치되지 않았다. 당시 국민의회에서 제시된 독일 통일 방안은 대독일주의와 소독일주의였다. 대독일주의는 독일연방에 가입한 국가들을 통일 독일에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고, 소독일주의는 프로이센 주도로 독일 통일을 구현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오스트리아를 배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기적으로 먼저 제시된 대독일주의는 오스트리아가 반대함에 따라 채택되지 못했고, 소독일주의 역시 오스트리아의 반대와 프로이센의 소극적인 자세로 실현되지 못했다. 당시 오스트리아는 자국 영역 모두가 통일독일에 포함되야 한다는 입장이었기에 통일보다는 연방 체제를 선호했다. 결국 3월혁명 기간 중 제시된 독일 통합안은 이해 당사국인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의 반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이것을 통해 독일 통일을 평화적 방법으로 구현한다는 것이 당시 상황에서 매우 어렵다는 것도 입증되었다. 그러다가 1850년대부터 일부 정치가들, 특히 보수주의 성향의 정치가들이 독일 통일을 다시 거론했는데, 거기서는 평화적 방법보다 무력을 통해 통일을 구현해야 한다는 의견이 강하게 제기되었다. 이러한 주장은 주로 프로이센의 정치가들로부터 제시되었다. 1861년 프로이센의 빌헬름 1세가 군비 증강 문제로 의회와 대립하면서 실세로 등장한 비스마르크는 독일 통일 실현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 책에서는 통일 쟁의 시발점이 된 덴마크 전쟁의 진행 과정과 결과 및 후유증, 그리고 이후 독일 통일의 걸림돌로 등장한 외부 세력, 특히 오스트리아와 프랑스와의 전쟁도 구체적으로 다루도록 한다. 아울러 통일전쟁 이후 등장한 독일제국에 대해서도 간단히 언급하도록 하겠다. - 책머리에

마리아 테레지아

마리아 테레지아는 1740년부터 1780년까지?첫 25년은 단독으로, 나머지 15년은 장남인 요제프 2세와 함께?40년 동안 오스트리아 왕국을 통치했다. 여자였기 때문에 선제후(Kurf?rst)들에 의해 선출되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등극할 수 없었지만 합스부르크-로트링엔 가문의 수장으로서 유럽에서 황제와 대등한 역할을 수행했고 또한 그것에 걸맞은 대우도 받았다. 40년 동안 오스트리아를 통치하면서 마리아 테레지아는 강한 결단력과 여성성을 겸비하고 위정자로서의 의무 수행 및 성실성을 중요한 덕목으로 간주했기 때문에 그녀는 아직까지도 오스트리아인들로부터 국모로 추앙받고 있다. 이렇게 마리아 테레지아 및 그녀가 통치한 오스트리아가 유럽 근대사에서 적지 않은 위상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이 부분에 대한 연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데 이것은 특정 국가, 즉 프로이센과 그것을 토대로 등장한 독일제국 연구에 치중한 데서 비롯된 것 같다. 이러한 연구 성향에 따라 프로이센의 국가적 위상을 크게 증대시킨 프리드리히 2세와 독일제국을 탄생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비스마르크(Otto v. Bismarck)에 대한 연구는 비교적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독일권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서술하기 위해서는 프로이센의 역사와 더불어 당시 독일권에서 적지 않은 역할을 한 오스트리아의 역사도 동시에 연구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한 국가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서술하기 위해서는 그 국가와 연계된 주변 국가들의 역사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겠다. 필자 역시 이러한 관점에 동의하기 때문에 이 책을 쓰게 되었고 이것을 통해 그동안 등한시되었던 마리아 테레지아를 비롯한 오스트리아 왕국에 대한 연구 역시 보다 활성화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우선 마리아 테레지아에게 왕위계승권을 부여한 국사조칙의 제정 원인과 그 진행 과정을 다루도록 한다. 이어 마리아 테레지아의 탄생 및 성장 과정, 프란츠 슈테판과의 결혼, 그리고 자녀들의 양육, 특히 장남인 요제프의 양육 및 결혼에 대해 살펴보도록 한다. 또한 마리아 테레지아의 왕위 계승과 그것에 따라 발생한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1740~1763)의 진행 과정 및 결과를 취급하도록 한다. 그리고 이 전쟁이 진행되는 기간에 본격화되기 시작한 제 개혁정책, 즉 절대왕정 구축을 위해 시행된 정책들도 언급하도록 한다. 마지막으로 마리아 테레지아의 남편 프란츠 1세가 갑자기 서거한 후 본격화된 요제프 2세와의 갈등과 말년의 마리아 테레지아가 펼친 제 활동을 다루도록 하겠다.

엘리자베트

‘책머리에’ 중에서 역사가들의 관점에 따라 상이한 평가를 받는 황후 엘리자베트(Elisabeth Amalie Eugenie v. Wittelsbach)는 지금까지 국내 서양사학계, 특히 독일과 오스트리아 사학계에서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국내에서는 그녀에 대한 저서나 논문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그렇지만 오스트리아 근현대사에서, 특히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말기 이 제국에서 그녀가 차지하던 위상과 역할은 생각보다 훨씬 높아 황후에 관한 체계적인 연구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필자는 최근에 구매한 신간 전문서를 토대로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엘리자베트의 삶과 행적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이 책을 쓰게 되었다. 이 책에서는 스위스에서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엘리자베트 황후의 삶을 중점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이를 위해 우선 황후의 부모인 막시밀리안 요제프 공작과 루도비카 빌헬미네 공작 부인의 성장과 결혼을 간략히 언급한 후, 엘리자베트의 탄생과 성장 과정, 평생 반려자인 프란츠 요제프 1세와의 결혼, 그리고 자녀들의 양육에 대해 살펴보도록 한다. 그 과정에서 장녀인 조피의 비극적 죽음도 다루도록 한다. 이어 시어머니인 조피 프리데리케 도로테아 빌헬미네 대공비와의 불편한 관계와 거기서 비롯된 대립적 상황도 언급하도록 한다. 그뿐만 아니라 그러한 불편한 상황에서 유발된 건강 악화와 치유 과정도 살펴보도록 한다. 또한 정치와 외교 문제에 간헐적으로 개입한 엘리자베트의 행보를 다루면서 제기된 개입의 한계성과 실제적 영향력에 대해서도 취급하도록 한다. 마지막으로 외아들 루돌프 황태자의 자살 이후 방황하던 말년의 생활과 제네바에서의 비극적 사건으로 생을 마감하는 과정도 거론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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