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고타 크리스토프의 희곡은 그가 쓴 소설보다 훨씬 더 상징적입니다. 또 전쟁과 문명, 자본주의, 페미니즘 같은 동시대적 이슈가 고스란히 담겨 있지요. 소설의 내레이션 구조가 사라진 자리에는 인간의 깊고 어두운 내면이 더욱 도드라집니다. 그의 희곡들은 날카로운 칼을 품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칼이 향하는 방향은 모호합니다. 머리를 노리는 듯하다가 어느 순간 심장으로 바로 치고 들어옵니다. 우리는 무방비 상태에서 그의 칼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후유증이 오래 남습니다.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희곡이 지닌 매력에 푹 빠져 무작정 번역을 시작했고, 오랜 기다림 끝에 국내 독자들에게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그가 남긴 여덟 편의 희곡으로, 위대한 소설가뿐 아니라 위대한 극작가로서의 아고타 크리스토프와 만나길 바랍니다. - 역자 서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