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서쪽에서 지내면서 아침마다 강정보에 가서 달린 지 꽤 오래됐다. 낙동강을 끼고 달리는 길 한쪽 편에는 너른 밭이 있는데, 밭과 그 위에서 자라는 작물들을 바라보면 내가 없는 사이 스쳐간 농부의 손길을, 그리고 항상 밭과 작물을 향해 있는 그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그 풍경을 볼 때마다 내가 쓰고 있는 글과 그 글을 대하는 나 자신의 태도와 마음을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 텍스트는 기억 속에 묻혀 있던 예전의 자아를 이끌어내 지금의 ‘나’와 연결시켜주었다. 그리하여 이번 평론집에는 소통이나 교류와는 별도로 반추를 지향하는 성향이 나타나 있다. 제목의 ‘밤의 학교’ 또한, 이 책에도 실려 있는, 황순원 소설을 읽던 사춘기 시절을 되돌아본 글로부터 가져온 것이다. 내가 문학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삼십 년 가까이 평론활동을 하면서 이십 년 넘게 문예창작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된 기원을 거기에서 찾을 수 있다.
2025년 6월
손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