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은사님의 강권으로 첫 수필집을 낸 지가 올해로 하마 15년째다. 그동안 여기저기 동인지에 발표한 수필들을 챙겨보니 한 권의 책으로 묶기에 양은 충분한데 글의 내용이 문제다. 15년이란 세월은 요즘의 시간으로 보면 천지가 개벽할 아득한 시간이다.
현대인들과 소통이나 될까 하는 두려움이 없지는 않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욕심, 내 삶의 궤적을 엮는다는 의미에서 싣기로 했다.
언젠가 라디오 인터뷰에서 글 쓰는 이유를 묻는 말에, ‘잘 살기 위해서’라고 했는데, 그 말은 지금도 변함없다. 나를 온전히 드러내는 수필이야말로 수신修身에 더없는 무기라고 생각한다. 지행합일知行合一에 이르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함은 내 삶의 의무다.
이순을 넘기고 보니 구름 한 조각, 바람에 묻어오는 풀꽃 향기, 음식물 쓰레기통의 악취, 흩어지는 낙엽, 발에 채는 돌멩이 하나, 죽은 개미를 물고 가는 개미 한 마리, 거미줄에 걸린 호랑나비, 여름밤 풀벌레 소리, 아이들의 웃음소리, 번다한 시장통의 싸움 소리…. 오감五感으로 느끼는 모든 것에 나의 육감六感을 가동하면 온갖 것들이 나의 스승이다.
세계일화世界一花라는 말을 요즘처럼 실감한 적이 없다. 삽시간에 세상을 점령한 바이러스는 내 생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상을 만들어버렸다. 만남을 금지하는 천형의 유배지에서, 더 많이 사색하고 궁구하여 삶의 비의秘意를 열어볼 수만 있다면…. - 머리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