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문학을 대표하는 서사시의 <18자역>은 귀로 재미있게 들을 수 있는 글을 짓는 걸 목표로 한다. 그러자면 운문이어야 했는데, 로마 서사시 고유의 여섯 걸음 운율은 우리에게 낯선 운율이지만, 이를 우리말에서 살려 우리에게는 없는 음수율을 만들어 보게 되었다. 아무도 하지 않은 새로운 시도와 도전이었다.
충분한 시간을 갖고 공을 들여 작업한 덕분에 베르길리우스를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기원전 1세기 시인 베르길리우스가 살아가던 때의 역사를 몸젠을 통해 배우고, 또 베르길리우스가 접한 로마 철학을 키케로 중심으로 연구하고, 생소하던 로마법도 기웃거리며 주워들었다. 번역은 물방울로 바위를 뚫는 듯 더디게 진행되었지만, 그만큼 『아이네이스』의 구절마다 마디마다 깊은 이해를 얻는다고 느꼈다.
선량한 시민은 기필코 자유와 법을 되찾는다. 키케로는 로마 공화정을 다시 세우고자 목숨 바쳐 싸운 선량한 시민들의 대표자였다. 정치적 격랑 속에 죽음을 예감한 키케로는 마지막 순간 선량함과 바름의 지침을 또 다른 키케로에게 남겼고 그의 아들처럼 우리도 『의무론』을 물려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