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겨울에도 또 봄이 되어도 내내 내립니다. 우리는 늘 내리는 비를 맞고 삽니다. 비는 핑계입니다. 핑계까지 소용없습니다. 그냥 글을 씁니다. 비가 내리는 날에도, 갠 날에도 그냥 글을 씁니다. 누군가의 입을 빌려 글을 씁니다. 순간들에 집중하여, 어쩌면 영원으로 들어갈까 싶은 순간들에.
날마다 시작하고 날마다 미완성인 인생, 영원히 미완성인 인생에는 플롯이 없다. -그런 마음으로 쓰는 글이다 보니 소설에서 플롯을 기피하게 되고, 발단에서 결말에 이르는 구조를 외면하게 되어 소설쓰기의 공식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그러는 사이 내 손을 떠난 글들에 부끄러움은 더해만 갑니다. 쓰지 않을 수 없는 강박일까요, 아예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부족함을 잘 알지만, 고민을 해도 달리 더 어쩔 수도 없기에, 부족한 대로 글을 내보냅니다. 더 잘 할 수 없음을 고백하는 것은 용기가 아니라 겸손일까 합니다. - 창작노트
지금으로서는 이만큼 썼으므로 이만큼 썼노라고, 누구라도 필위 잘 쓸 수는 없노라고, 정직하면 되리라는 어설픈 변명으로 소설들을 더구나 감히 산문집을 내놓습니다. 어쩌면 무지가 용맹이 아니라, 부족을 인내한다는 의미에서 겸손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 산문집과 같은 시간에 세상을 맞닥뜨릴 장편소설 『날마다 시작』도 마찬가지 마음으로 떠나보냅니다. 언제나처럼 미술을 전공한 둘째가 그려주는 표지에 숨어, 느슨한 또는 된 말들, 묽은 아니면 진한 글들이 숨 쉬고 있기를 바라면서, 저는 숨을 죽입니다.
사족, 아니 본론입니다. 더 어설픈 이 산문집은 무슨 마음으로 무슨 권리로 내놓는가 부끄럽습니다. 소설가라고 불리기 시작하자 한국소설가협회를 시작으로 한국문인협회며 국제PEN한국본부 등 문학단체들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그러는 것이 상례인 줄 알았습니다. 몇 안 되는 그들 중 이대동창문인회에서는 회원들 등단 장르를 막론하고 매년 수필을 한 편씩 모았습니다. 수필을 쓴 경력이 전혀 없이도 수필이라고 하는 글을 쓰도록, 회원의 의무라고 하시는 선배들의 격려(?) 또한 엄중했습니다. 그렇게 수필 나이 스물셋에 모인 글들을 내놓습니다. 왜냐고 물으면 답을 얼버무릴밖에요. 속내는 발화되지 못하기도 합니다.
흠결 많았을 젊은 날들을 걱정하면서 어쩌면 더 많은 흠결을 쌓아가고 있는 오늘입니다. 무심한 이 사람과 몸과 맘으로 닿아 있는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이상한 것은 한 해동안 이들의 이야기를 쓰면서 왠지 이 가족이 실재하는 느낌이 드는 일이었다. 지독한 갈등이라고는 없는 그러나 (혹은 그래서) 행복도 불행도 가늠되지 않는 그저 그런 이야기는 어쩌면 또 다른 평범한 사람들에게 향하는 발신음이 되고자 해서일까. 안개 속 미래를 숨 막혀 어떻게 기다리나요? 순간을 어떻게 잡나요, 순간은 영원 속 한 저이 되어 멀어지려는데? 살아간 세월의 층에 더욱 왜소해진 당신이 비교되는 날 어떻게 하시나요? 더러 가슴 안쪽 허허로운 공터는 무엇으로 채우나요? 갓길에 개나리 흐드러지고 진달래 산을 덮어도 소용없이 여전히 추우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