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대간 9정맥의 종점에 섰습니다. 태안 안흥진 바닷가 백사장이 아름답네요.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한지 꼭 7년만에,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하루도 틀리지 않고 7년만에 마치게 되었습니다. 처음 백두대간을 시작할 때보다 산행에 대한 두려움은 많이 없어졌지만, 자연에 대한 두려움이 더 많이 생겼다면 억측일까요.
1대간 9정맥 종주를 저와 같이 한 많은 대원들,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 아름다운 산을 다니는 즐거움을 같이 하면서 힘들 때 서로 위로하고 함께 즐거워하며, 생사고락을 같이 한 동지들입니다. 너무나도 커다란 인연이 있었습니다. 특히, 누가정형외과 강 원장님에게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저를 종주산행으로 처음 안내한 서재철 대장과 김태영 대장께도 감사드립니다. 또 산행 준비에 열심이었던 원주의 산도깨비 내외분께도 특별히 감사드립니다. 여러분들의 격려와 도움이 없었다면 종주산행을 마치기가 무척 곤란했을 겁니다.
지난 7년 동안 밤 12시, 또는 새벽 2~4시에 나가는 저를 아무 불평없이 도와 준 아내에게도 고마움을 표합니다. 아내는 지금 산에 가게 되면 준족을 자랑할 정도로 산꾼이 되었습니다. 가끔 저를 따라 나서는 산행이지만 다리에 힘이 붙는 모양입니다.
6년 전, 백두대간 종주를 마치면서 이제 다시는 종주산행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1년을 쉰 뒤 결국 또 다른 종주산행에 나섰습니다. 백두대간 종주를 마쳤을 때 한국산악회 원주지부 김재철 대장이 “형님, 이제 큰병 걸렸습니다. 일반 산행을 가면 산행한 것 같지도 않고 이제 큰 산만 찾아다니는 병이 단단히 걸렸습니다”라고 말할 때만 해도 “종주산행은 너무 지겨워!”라고 답했지요. 종주산행은 상상 그 이상으로 고된 작업이었습니다.
우리의 산을 다니면서 확인한 것은 산을 망치는 원인이 묘지와 쓰레기, 송전탑, 절개지라는 것입니다. 쓰레기를 제외하고는 인간의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 놓은 것들 입니다. 이 자연환경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잠깐 이 자연 속에 세들어 살고 있는 것입니다. 세들어 있는 사람이 주인의 물건을 마음 내키는 대로 부수고 망가뜨려 놓는다면 주인이 좋아할까요. 이 자연은 우리가 구경만 하다가 그대로 후손에게 물려줘야 합니다.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하면서 김정호 선생님이 살던 시대하고 지금은 전혀 틀리니까, 저 혼자의 힘으로도 대동여지도를 그릴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허무맹랑한 꿈이었습니다.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그런 도전이었습니다. 만약 조금 더 노력해서 대동여지도처럼 그릴 수 있었다면 앞으로도 계속 산을 다녔을 겁니다. 그러나 그것이 꿈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제가 할 수 있는 몫은 여기까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루동안 가야 하는 목표가 정해진 산행은 이제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지금까지 산을 걸으면서 남긴 기록들은, 우리 후배들이 2000년대 초반 한반도 산하의 현실을 상상으로나마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거라고 판단했습니다. 앞으로 저에게 산행이란 그저 무작정 걷는 행위일 뿐입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어서 혼자 노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합니다. 지난 10년 동안 지도를 보면서 길을 찾아 다녔기에, 앞으로 남은 인생 혼자 노는 방법은 잘 배워 놓은 것 같습니다. 노년의 준비 하나는 잘 했다고 해도 자랑이 될까요.
앞으로 저의 인생은 사람들과 어울리며 사람들 속에서 봉사하는 삶을 살고자 합니다. 지금까지 제가 살아오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던 사람과 어울리며 살겠습니다.
지난 10년 가까운 세월 1대간 9정맥 완주를 마칠 수 있도록 가까이에서 지켜 준 아내, 같이 산행을 했던 동료 대원들, 그리고 성원을 해 준 주변의 모든 분들에게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백두대간 종주기인 <백두산 가는 길>과 낙동정맥, 낙낙정맥 종주기인 <영남의 발자취를 찾아서>를 출판하고, 이번에 나머지 7정맥 종주기를 발간해 준 도서출판 정상 호경필 사장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2010년 9월 3일